[클래식 POINT]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경기, 누구도 웃지 못했다

[클래식 POINT]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경기, 누구도 웃지 못했다

2016.09.19. 오전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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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인천] 유지선 기자= "경기를 위해 준비해온 사이클이 무너졌다"

상주 상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전후로 양 팀 감독이 공통적으로 내뱉은 하소연 섞인 한마디다. 짧지만, 10년 만에 발생한 당일 경기 취소의 여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말이기도 하다.

상주와 인천은 18일 오후 6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30라운드 경기서 헛심 공방 끝에 0-0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경기는 17일 오후 4시 상주시민운동장에서 킥오프될 예정이었지만, 잔디 보식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하루 연기돼 인천에서 치러졌다.

상주는 휴식기를 맞아 지난달 말부터 추석 연휴까지 잔디 보식공사를 진행했다. 상주 구단이 운영 및 관리를 맡고 있는 상주시에 잔디 보수를 제안했고, 제안을 받아들인 상주시가 전문 업체에 잔디 보수 작업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추석 연휴가 지난 뒤에도 잔디 보수 작업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결국 경기 당일 프로축구연맹과 구단의 논의 끝에 경기 취소를 최종 결정했다.

잔디 문제로 경기가 취소된 것은 프로축구 33년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인천과 상주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16일 상주에 도착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인천은 경기를 강행하자는 입장을 내비쳤고, 반면 상주는 부상방지 차원에서라도 경기 강행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천의 이기형 감독대행은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 경기 취소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경기에 지장이 있지만 전혀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상주의 조진호 감독은 "(경기를 강행하려는) 인천의 심경도 이해가 되지만, 선수 보호차원에서라도 경기 중단이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기 취소는 인천과 상주, 어느 쪽에도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했다. 허탈함이 큰 쪽은 상주를 오가며 시간을 허비한 인천이었다. 추석 연휴가 겹친 탓에 이동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졌고, 경기 일정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며 각오를 다졌지만 킥오프를 앞두고 돌연 경기가 취소됐다는 소식에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취소가 결정된 뒤 부리나케 발길을 돌린 선수들은 오후 6시가 넘어서 인천에 도착했고, 저녁 식사 후 라이트를 켠 채 가볍게 야간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상주 선수단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원정길에 오르게 되면서 경기 전날인 17일 밤 11시가 돼서야 인천에 도착한 것이다. 숙소를 잡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으며, 한 끼를 거른 채 간식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피해는 오롯이 선수단의 몫이 된 것이다.

'약속한 시일 내에 마무리할 수 있다'고 한 담당업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상주 구단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일처리 과정은 분명 아쉬움을 남긴다. 1차적 책임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담당 업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떤 변명으로도 덮을 수 없다. 이기형 감독대행은 이를 두고 홈팀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고 표현했다.

이기형 감독대행은 경기를 마친 뒤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 지 묻는 질문에 "한 경기를 위해 모든 팀이 시간과 사이클을 맞춰 준비한다. 따라서 상주뿐만이 아니라, K리그 팀 모두가 자신의 홈에서 경기를 치를 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 시간에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경기를 치르겠단 의지가 있었다면, 장소를 이동하는 등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는 게 맞지 않았나 싶다"며 책임감 부족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물론 갑작스런 경기 일정 변동에도 팬들은 변함없이 경기장을 찾았다. 인천 서포터석에도 평소만큼의 인원이 찾아와 목소리를 높였고, 상주 팬들도 갑작스럽게 떠나게 된 원정길을 마다하지 않고 원정 서포터석에 자리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상주는 물론이며, K리그 타 구단에도 중요한 교훈을 남겼기 때문이다.

연맹 차원에서 재발을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도 분명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을 계기로 K리그 구단들이 너나할 것 없이 다시 한 번 '책임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90분 동안 온힘을 쏟아 붓기 위해 일주일간 담금질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선수들과, 이유 불문하고 경기장을 찾는 팬들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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