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①] 무명배우 김남희, '미션'의 조커 타카시 되다

[Y터뷰①] 무명배우 김남희, '미션'의 조커 타카시 되다

2018.09.24.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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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①] 무명배우 김남희, '미션'의 조커 타카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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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이런 악역은 없었다. 적어도 국내 드라마에서는 본 적 없던 강렬함이었다.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전 국민의 분노를 차오르게 하고 주먹을 불끈 쥐게 한 사람. tvN 토일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극본 김은숙, 연출 이응복)의 일본군 대좌 모리 타카시를 연기한 배우 김남희다.

유창한 일본어는 차치하고 어눌한 한국어에 시청자 사이에선 그의 국적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을 정도다. 정작 김남희가 일본어를 한 번도 접한 적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들었던 충격이란. 여기엔 2013년 영화 '청춘예찬'으로 데뷔했지만 워낙 대중에 생소한 얼굴이기도 했고 연극과 독립 영화계에서 활동한 무명 배우라는 점도 한몫했다.

[Y터뷰①] 무명배우 김남희, '미션'의 조커 타카시 되다

타카시는 동경에서 일왕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집안이자 정한론('조선을 정벌해 일본 내부의 혼란을 잠재우자')을 따르는 모리 가문의 후손이다. 역사와 맞닿은 설정만큼 딱 붙는 5:5 가르마에 동그란 안경, 마치 구한말 역사 속에서 툭 튀어나온 것만 같다. 특히 "조선의 정신을 훼손해야지. 민족성을 말살해야 한다고"라고 차원이 다른 야욕을 드러낼 땐 섬뜩하기까지 하다.

성격도 악행만 저지르는 일반적인 악인과 달랐다.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상대가 감정적으로 약점을 보이는 순간을 노리는, 악랄함을 지녔다. 여기에 한쪽 입꼬리만 올리는 비열한 미소와 이죽거리는 말투는 덤. 안방극장엔 분노를 몰고왔지만 바꿔 말하면 김남희의 빼어난 연기가 통했다는 뜻이다.

인터뷰차 김남희를 만났다. 애청자로서 감정이 앞섰을까. 마주한 순간 왠지 모르게 울컥했지만 그것도 잠시. 사진 촬영 전 "제가 아직 카메라 앞에만 서면 좀 어색해요"라며 쑥스럽게 웃는 얼굴에서 모리 타카시 아닌 '사람 김남희'가 보였다. 대답 중간 섞인 '타카시 말투'에서 그가 배역을 위해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발자국 찍듯 꾹꾹 눌러 말하는 답변은 화려한 미사어구 없이도 진정성을 증명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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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남희와 나눈 일문일답.

Q. 21화를 마지막으로 강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본 방송은 챙겨 봤나?
김남희(이하 김): 챙겨봤다. 집에서 봤는데, 연기가 생각보다 마음에 안 들더라. 진짜 열심히 했는데 단점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이후 든 생각은 너무 일찍 죽었다는 거?(웃음) 작가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는 개인 욕심이다. 할 때는 너무 힘들고 정신없었는데 하고 나니 '더 나왔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Q. 많은 시청자가 김남희를 '미스터 션샤인'으로 처음 알게 됐다. 어떻게 합류했나?

김: 내부 스태프 중에 지인이 있어서 오디션을 보게 됐다. 분명한 건 타카시 역할을 하려고 부르진 않았다는 거다. '그때 그 친구가 나쁘지 않았으니 오디션 기회를 주자' 이렇게 된 거지. 이응복 감독님이 원래 무명 배우라도 좋게 보면 믿고 기회를 준다.

오디션장에서 감독님이 '그동안 했던 연기 중 가장 괜찮은 연기가 뭐냐'고 묻길래 연극 '햄릿'을 말했다. 사실 '햄릿'을 했다는 건 남자 배우에겐 상당한 자부심이거든. (웃음) 그러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대사가 너무 궁금하다 하더라고. 그 연기를 보고 '얘 괜찮네'라고 생각했다고 들었다. 그 이후 타카시 대본을 주고 읽어보라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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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비중은 물론 존재감도 큰 역할이었다. 드라마로는 '도깨비'에 이어 두번째 작품인데 이응복 감독의 믿음이 대단했나보다.
김: 이름있는 배우들이 리스트에 많이 있었다더라. 오디션도 많이 보고 갔지만 감독님 마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내게 무슨 천운이 따랐는지, 원. 궁금해서 술자리에서 '저를 왜 쓰셨냐' 여쭤봤다. '우리가 만날 인연이었던 같은데?' 한마디 하고 말더라.

평소 살가운 분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들으면 '이런 감독 없다'고들 한다. 캐스팅 관련 내·외부적 압력이 높지 않나. 이응복 감독은 아니다. '(연기로) 믿는 배우는 데리고 간다' 주의다. 덕분에 나 같은 무명 배우에게도 기회가 온 게 아닌가 싶다. 배우의 진심을 봐주려 노력하는 분이다.

Q. 그 믿음을 연기로 충족한 건 김남희다. 방송 직후 시청자 사이에선 배우의 국적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을 정도다.
김: 하하, 그런가? 사실 내가 일본어를 하나도 못 한다. 배워본 적도 없고. 학원을 갈까 과외를 할까 고민을 했는데. 먼저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아야겠더라. 캐스팅되자마자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고, 가서 한달을 살았다. 역사적으로도 한국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반일 감정이 있지 않나. 아무리 연기지만 그걸 좀 내려놓지 않으면 이 역할을 소화하기 어렵겠더라고.

타카시는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일본을 사랑하는 제국주의자다. 나라에 대한 사랑이 엇나가고 무척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된 거지. 그래서 일본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해 타카시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식으로 풀어갔다. 연기 할 때 메소드에 집착하진 않는데 이번 역할은 단순히 일본어만 한다고 해서 되지 않을 거 같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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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독특한 말투도 화제를 모았다. 어떻게 만들었나?
김: 우리는 이를 '한본어'(한글+일본어)라고 부른다. 대본에 "유진, 이거 니꺼 잖아"라는 대사가 표준어로 쓰여 있으면 일본어 선생님과 밤새 그걸 "유지느, 이고 니꼬 자나"로 바꾼다. 우리의 순수창작물인 셈이다. 작가님이 변형까지는 해주실 순 없으니.(웃음)

이 설정도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본 속 타카시 비중은 점점 커지는 데 내가 일어를 못하니 제작진도 난감한거다. 그때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냈다. '타카시는 영특한 친구니,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 한국어도 마스터 했을 거다. 다만 완벽하면 그것도 이상하니 어눌하게 해보자' 이렇게 간 거다. 타카시가 한국어를 쓰는 회차가 방송되기 전까지 걱정도 많았다. 잘하면 소름 돋지만 못하면 바보처럼 보일 수 있는 양날의 검과 같았으니까.

Q. 드라마 촬영이 굉장히 촉박한데 시간상 가능하냐?
김: 가능은 한데 1-2시간씩 자고 해야한다. 일단 대본이 나오면 일어를 외운다. 한국어하는 부분은 한본어로 바꾼 다음 다시 외운다. 여기서 연기를 할 수 있도록 표정, 행동과 함께 다시 마스터 하기까지 또 한번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니 몸이 못 버티더라. 체력이 정말 좋은 편인데 촬영 중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스트레스 받으니 염증지수가 올라 열이 나고 장염까지 걸렸다. 와, 지금 생각하니 나 진짜 힘들었다. (웃음)

Q. 외모도 남다르다. 5:5 가르마, 동그란 안경은 누구 아이디어냐?
김: 분장 실장님이 그 시대를 연구한 다음 이 때 사람들은 '동그란 안경에 5:5나 2:8 가르마를 했던데?'라며 제안하셨다. 가르마는 나 역시 처음에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외모냐, 지금 외모 따질 때냐' 하고 포기했다. GQ, 아레나 옴므에서 많이 나오는 스타일이라고 유혹하시더라. (웃음)

[Y터뷰①] 무명배우 김남희, '미션'의 조커 타카시 되다

Q. 방송 이후 사람들이 좀 알아보나?
김: 글쎄, 걷고 산책하는 게 취미라 많이 돌아다니는데 잘 모르시던데? 실물이 화면과 많이 다른가 보다. 가르마에 안경, '미스터 션샤인'에선 워낙 독보적이었지 않나.

Q. 그래도 온라인상에서는 관심이 정말 뜨겁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김: 전혀. 사실 정말 도박이다. 이렇게 연기한 배우가 없었으니 검증할 수 있는 기준도 없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대단할 뿐이다. 차라리 교포에 이 역할을 맡기지, 돈이 한두 푼 드는 드라마도 아니고. (웃음)

엄청 걱정했는데 촬영장에서 스태프들 반응을 들으면서 조금씩 희망을 갖게 됐다. '타카시 장난 아닌데, 신 잘 나오겠는데?'라는 말이 돌면서 조금씩 기대도 했고. 그럼에도 방송 나가기 전까지는 무척 불안했다. 그 긴장을 해소하는데 이병헌 선배가 옆에서 정말 도움을 많이 줬다.

[Y터뷰②]'미션' 김남희 "정신적 지주 이병헌, 옆집 누나 같은 김은숙"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 김태욱 기자(twk55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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