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변산', 정면을 마주볼 용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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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오전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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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변산', 정면을 마주볼 용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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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똑바로 쳐다보면 아프기 때문이다. 잊으려 발버둥을 치는데 자꾸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영화 '변산'(감독 이준익, 제작 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은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가 가득한 고향을 외면해버린 한 청년의 몸부림이다. 랩으로 분노와 울분을 풀어내는 가난한 청춘, 그가 갈등을 빚은 부모와 화해하고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동주' '박열' 등 최근 역사 속 인물들을 데려와 관객들을 만났던 이준익 감독이 이 시대 평범한 청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 감독은 따뜻하면서도 유쾌하게, 인간미 넘치는 작품으로 '변산' 속 인물들을 빚어냈다. "값나게 살진 못해도, 후지게 살진 마라"라는, 무심한 듯 툭 뱉어놓는 대사 속 메시지도 새겨들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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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발렛 파킹,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학수(박정민)의 밤은 꿈으로 반짝인다. 가사를 쓰고, 몇 명 없는 관객 앞에서 랩을 한다. a.k.a 심뻑으로 활동하는 무명 래퍼 학수는 엠넷 '쇼미더머니' 6년 개근을 자랑할 정도로 랩에 대한 열정이 크다. 1평짜리 고시원에서 미친듯이 가사를 구상하고 리듬을 탄다. 하지만 래퍼의 꿈은 멀고도 험하다. 잊고 지냈던 과거의 단면은 때때로 그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때 고향인 전북 변산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뇌졸중에 걸려 쓰러졌다는 것. 학수는 노름 때문에 경찰에 쫓겨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10년 가까이 연락을 끊고 살았다.

고심 끝에 고향에 내려간 학수는 병상에 초라하게 누운 아버지(장항선), 자신을 고향으로 불러낸 동창 선미(김고은), 어린 시절 괴롭혔지만 상황이 역전된 건달 용대(고준), 첫사랑 미경(신현빈), 자신의 시를 몰래 훔쳐 등단한 원준(김준한) 등을 통해 애써 잊고 살았던 과거와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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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변산'의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꿈을 꾸지만 그 꿈에 다가가지 못하는 청춘의 모습은 낯익다. 친구, 부모와의 갈등과 봉합 등도 기존에 봐왔던 이야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변산'은 단순한 청춘예찬 영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학수를 쫓아가지만 그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를 따라간다. 감추고, 숨겼던 감정을 터뜨리고 폭발시키는 학수의 모습을 통해 본인에게 닥친 문제를 똑바로 쳐다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주인공이 래퍼인 설정은 탁월한 듯 보였다. 학수는 내려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 땅을 밟았을 때, 아버지한테 모진 말을 던졌을 때,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는 자신의 상황을 랩으로 표현한다. 극 중간중간 한을 토해내듯 뱉어내는 그의 랩은 극을 단단하게 조인다. 학수는 지우고 싶고, 부끄러웠던 변산에서의 과거와 정면 돌파하고 그만큼 성숙한다. "살아있는 순간이 다 청춘"이라며 "젊어서 청춘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청춘이 존재한다고 보여주고 싶었다"던 이준익 감독의 철학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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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이 쏠쏠하다. 전작인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한 박정민이 이번에는 래퍼 역을 맡아 수준 높은 랩 실력을 과시하다. 학수의 심정을 담아내기 위해 직접 가사도 썼다.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의 매력의 끝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다음에 더 뽑아먹어야겠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풋풋한 고등학생을 연기했던 김고은은 역할을 위해 8kg을 찌우며 학수를 짝사랑하는 평범한 면모를 보였다.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유머의 상당 부분을 책임진다.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는 장항선은 답답하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해온 아버지 역으로 박정민과 깊은 호흡을 주고받는다. 고향 친구 역을 맡은 고준, 신현빈과 얄미운 교생 역의 김준한 등도 앙상블을 이룬다.

오는 7월 4일 개봉. 러닝타임 123분. 15세 관람가.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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