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판사가 직접 답했다...'미스 함무라비' A to Z (일문일답)

문유석 판사가 직접 답했다...'미스 함무라비' A to Z (일문일답)

2018.06.18.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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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가 직접 답했다...'미스 함무라비' A to Z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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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통찰과 따뜻한 시선, 생생한 리얼리티로 호평을 얻은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이를 집필 중인 문유석 판사가 시청자의 질문에 직접 답했다.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연출 곽정환)는 현직 판사가 집필한 사실적이고 현실감 넘치는 에피소드와 사람 냄새 가득한 민사44부의 고뇌와 성장으로 가슴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여느 법정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았던 민사재판을 통해 '사건'이 아닌 '사람'을 담아내며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것은 물론 공감까지 얻어냈다.

작품성과 화제성 모두 잡는데 성공한 '미스 함무라비'에 대한 호평이 이어질수록 작가인 문유석 판사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졌다. 문유석 판사는 현직에 있어 인터뷰를 사양하고 있지만 궁금증을 해소하고 시청자와 소통하기 위해 서면으로 질의에 응답했다. 캐스팅 비하인드와 촬영 에피소드부터 드라마 집필 배경까지 꼼꼼하게 짚은 문유석 판사의 일문일답에는 드라마와 캐릭터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문유석 판사가 직접 답했다...'미스 함무라비' A to Z (일문일답)

다음은 문유석 판사와 일문일답.

Q. 많은 시청자들의 인생드라마로 꼽을 정도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문 판사가 생각하는 호평의 이유와 뜨거운 반응에 대한 소감이 궁금하다.

문유석 판사(이하 문): 소감은 '어리둥절'하다. 방송 전에 한번 여러 데이터를 토대로 1회 시청률을 치밀하게 예측해본 적이 있는데 1.8%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 두 배였다.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내 판단력에 대한 일말의 자괴감이 들더라.(웃음)

호평의 이유는 무엇보다 '개떡 같은 초보 대본을 찰떡 같이 살려 준 배우들' 덕분이다. 1부 지하철 신에서 고아라 배우가 '바우와우와우!' 대사를 차지게 살려준 순간이 결정적 모멘트 아니었을까 싶다.

Q. 시청자 반응을 모니터 하고 있나?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다면 말해달라.

문: 직접 보기도 하고, 주변에서 재밌는 반응을 보내주기도 한다. 한번은 고아라, 김명수 두 배우의 사진 밑에 '동족끼리 만난 안정감'이라는 댓글이 달린 걸 보고 두 배우에게 보내줬더니 재밌어 했다.

그걸 보고 생각해봤는데 '반지의 제왕' 세계관으로 '미스 함무라비'를 바라본다면? 44부는 리벤델? 성공충은 골룸? 그럼 사우론은 누구? 이런 생각도 했다. 하긴 5부 판사회의 신에서 판사들이 회의장에 나타나는 장면을 쓸 때, '반지의 제왕' 중 구원군이 여기저기서 극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을 상상하며 쓰긴 했다.

문유석 판사가 직접 답했다...'미스 함무라비' A to Z (일문일답)

Q. 배우들의 첫인상과 작중 인물들의 싱크로율은 어뗐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문: 우선 성동일의 경우 원작을 집필할 때부터 한세상을 생각하면 자동으로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이 떠오르곤 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고아라 역시 대책 없을 정도의 밝은 에너지에, 할 말은 거침없이 하는 솔직함을 겸비한, 살아있는 박차오름이다. 처음 보자마자 "오름이는 왜 이렇게 매번 화만 내요? 저 같으면 안 그럴 것 같아요" 했다. 그건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다. 사실 원작소설을 신문에 연재한 것은 2015년이었고, 그때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고통과 분노가 많은 이들에게 생생하던 때였지요. 박차오름이 1인 시위 할머니를 끌어안고 임바른에게 "자식 잃은 어미가 제정신이면, 그게 정상일까요?"라고 묻는 것도, 성공충 징계 서명운동을 막는 한세상과 임바른에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라구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걸?"하고 묻는 것도 박차오름이 그때의 고통과 분노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건 특정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시스템 자체에 대한 안타까움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새 시간은 흘렀고, 작중인물의 감정선은 드라마 자체 내에서 설득되어야한다. 그래서 고아라 자체가 갖고 있는 밝고, 때론 능청맞은 매력을 박차오름 캐릭터에 덧칠하는 방향으로 대본을 수정했고, 그 결과 훨씬 매력적인 인물이 됐다.

김명수를 임바른 역으로 캐스팅할 당시의 일도 인상적이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명수가 원작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얘기를 했다. 의례적인 인사말이겠거니 싶어서 슬쩍 어느 부분이 제일 좋았느냐고 물어보았다. 흔히 독자들이 좋다고들 하는 유쾌한 장면이나 훈훈한 장면을 꼽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뜻밖에도 가장 암울하고 현실적인 장면인 극빈층 거주 영구임대아파트를 찾아가는 장면을 꼽아서 놀랐다. 그 장면에서 받은 충격을 열심히 얘기하다가, 순간 쑥스러워졌는지 "근데 사실 저 평소에는 만화책만 봐요. 제가 읽을 수 있었다는 건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라고 덧붙이는 솔직함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류덕환 배우가 정보왕 역을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 분께서?' 하는 심정이었다. '믿고 보는' 주연 배우인데 작다면 작을 수도 있는 역에 흥미를 느끼곤 흔쾌히 맡아주었다. 주연들 리딩 할 때 한번 가보니 정보왕만 등장하면 공기가 달라지는 존재감, 그냥 날아다니더라. 그걸 보곤 바로 정보왕이 등장하는 신을 대폭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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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인주의자 임바른은 혹시 판사님의 젊은 시절을 투영한 캐릭터는 아닌지?

문: 몇 가지 비슷한 점도 있고, 스스로 경험을 재료로 써먹은 부분도 있지만, 당연히 모든 캐릭터와 사건들은 상상의 산물이다.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지루하게 있었던 일만 곧이곧대로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오히려 그 역을 맡은 배우의 개성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 임바른의 성실함, 예의바름, 순수함, 가끔 등장하는 의외의 허당끼는 모두 김명수를 관찰한 결과다.

Q. 매 회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명장면, 명대사가 쏟아지고 있다. 문 판사가 직접 고른 명장면, 명대사를 꼽아달라.

문: 개인적으로 3부 엔딩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법정에서 성희롱 사건을 응징한 후 뿌듯해하던 여성 법원경위 이단디가 밤거리에서 위험에 직면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라는 느낌으로 쓴 신인데, 주연들이 나오는 것도 아니어서 일반적으론 드라마 엔딩이 되기 어려운 신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의미가 모호하지 않느냐는 지적들도 있었다. 곽 감독이 취지에 공감하여 뚝심 있게 밀어붙여 주었고, 이예은과 함께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좌절, 분노를 소름 끼칠 정도로 보여주었다. 담담한 톤으로 쓴 대본보다 수십 배 더 생생하게. 감사할 따름이다.

인상적이었던 대사로는 먼저 한세상 부장이 성공충에게 "당신 배석한테는 가봤어?"라고 묻는 대사가 떠오른다. "당신 배석"으로만 썼는데, 성동일 배우가 마지막에는 "니 배석!"으로 바꾸어 묻더라. 그게 가슴에 팍 꽂히는데, 정말 좋았다. 그 사람의 살갗 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 말하는 배우들이야말로 최고의 작가가 아닐까? 2부 회식신에서 임바른이 술주정을 부리자 맹사성 계장 역의 이철민 배우가 황당해하며 "한 잔 드신 거 맞지?"하는 대사, 1부 정보왕 판사실에서 부속실 직원이 차를 주고 나가는데 옆에서 김동훈 판사 역의 남태부 배우가 소심하게 "제 꺼는..." 하는 대사도 대본에 없는 배우들의 애드리브인데, 정말 보면서 빵 터졌다.

Q. 법정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이 당하는 일에 과하게 몰입해서 흥분하는 박차오름이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문: 맞다. 그런 면이 있다. 그게 박차오름이라는 사람이고, 그는 더 성장할 것이다. 그런데, 궁금해지기도 하다. 한세상은 감정적이지 않은지?

눈물을 비치는 정도가 아니라 법정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배석판사들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그에 대해서 감정적이다, 불편하다는 지적은 별로 없는 것 같더라.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에는 '싸나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바로 불같이 폭발하는 터프가이들이 참 많이도 나온다. 왜 우리는 어떤 감정에는 관대하고 어떤 감정에는 불편해하는 걸까? 흥미로운 점이라 생각한다.

Q. 법정에서 사건이 해결될 때 눈물로 서로 화해하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문: 실제로는 더 한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조정을 할 때는 당사자들이 간증하듯 자기 속 얘기를 끝도 없이 털어놓다가 서로 눈물 흘리며 악수하고 가기도 한다.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는 과정을 축약해서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Q. 어떤 직종이 등장해도 결국은 연애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미스 함무라비' 역시 굳이 법정물에 로맨스 요소를 포함시켰느냐는 일각의 반응도 있다.

문: '연애'만 하고 직업적 고민은 포장에 불과한 드라마들에 대한 염증이라 본다. 그렇다고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성간의 감정은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리는 것도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진짜 그렇게 24시간 일만 하고 진지한 고민만 하는 사람이 존재하나? 만나보고 싶다.

미리 전체의 구성을 짜놓고 썼기 보다 우선 각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 다음에는 각 인물들에게 여러 익숙한 상황(이른바 로맨스물의 '클리셰')을 차례로 던져주고 이런 개성의 사람들이 판에 박힌 공식이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까 상상하니까 캐릭터들이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우리의 주인공들 같은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서로의 '다름' 때문에 부딪히고, 변화하면서 관계를 형성해 갈까 하는 상상은 무척 즐거운 것이었고 또 의미도 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제일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이에 관한 이야기를 더 깊게 풀어가려 노력했다.

문유석 판사가 직접 답했다...'미스 함무라비' A to Z (일문일답)

Q. 현직 판사가 집필한 드라마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사실적이고 리얼리티 넘치는 에피소드가 차별화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직접 드라마까지 집필하신 계기가 있나?

문: 워낙 어린 시절부터 만화, 소설, 영화 등을 좋아했고 끊임없이 황당한 이야기들을 상상하면서 걸어 다닐 만큼 이야기 중독자다. 지금도 지하철에서 멍하니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상상하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소설이나 드라마 작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이다. 그런 주제에 감히 무모한 용기를 낸 거다.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많은 작가님들과 작가 지망생 분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시고 계신 것을 생각하면 죄스러울 뿐이다. 제 경우는 이 이야기가 다루는 그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특혜를 받은 셈이니까.

Q. 드라마 대본은 처음이셨는데 소감이 궁금하다. 어려우신 점이나 극을 쓰면서 행복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문: 가장 좋았던 것은 '협업'의 즐거움이다. 감독, 제작사, 배우, 스태프 각자의 개성과 아이디어가 제 부족한 글을 훨씬 더 풍성하고 생생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행복했다. 초고를 비교적 빨리 써둔 편이어서, 캐스팅이 된 후에는 각 배우들의 개성과 매력, 말투에 맞게 대본을 이리저리 수정해보았는데, 그 과정에서 단순하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생생한 진짜 사람 같이 보이기 시작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저작권료가 워낙 비싸서 팝송이나 재즈곡 등 음악을 방송에 쓰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전 그것도 모르고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대본 각 장면마다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을 많이 써보았고, 음악과 장면이 연결되는 장면들도 써보았는데, 라벨의 볼레로 같은 클래식 음악을 제외하고는 사용할 수가 어렵더라. 그 대신 음악감독님이 훌륭한 오리지널 곡들을 작곡해주셔서 천만다행이다.

Q. '미스 함무라비'가 반환점을 돌아 본격적인 2막을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달라.

문: 후반부에는 주인공들의 속사정이 더 깊게 드러나고, 서로의 관계도 깊어지는 동시에 전관예우, 재벌에 관대한 양형 등 법원 입장에서는 뼈아픈 문제들도 정면으로 다루게 된다. 솔직히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푸르른 우리 젊은 판사님들이 희망이기에 절망하지 말고 함께 지켜봐주셨으면 한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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