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 주길"

[Y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 주길"

2018.05.24.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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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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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전하거나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관객들이 영화를 느끼면서 질문하도록 하고 싶었다." (이창동 감독)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는 영화 '버닝'은 혼란스럽다. 불친절하다. 명확하지가 않다. 세 명의 주인공인 종수(유아인) 벤(스티븐 연) 해미(전종서)의 진실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가진 것 없는 청년인 종수의 폭주는 충격으로 다가온다. 해미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위대한 개츠비 같은 알쏭달쏭한 벤의 정체는 뭘까? 종수의 소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물음표가 꼬리를 잇는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그렇지만 그는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어떤 메시지나 의미도 넣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신 "관객들이 영화 속 감각과 정서를 따라가길 원했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Y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 주길"

'버닝'은 제7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유일한 한국 작품이다. 이 감독이 '시'(201)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아쉽게도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칸 소식지인 스크린데일리로부터 역대 최고 평점을 받고,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는 등 현지 반응은 뜨거웠다. 최근 100여 개국 수출 소식까지 전했다. 이 감독의 저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 감독은 '버닝'이 "청춘의 분노를 다룬 영화"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꼭 청춘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 현실이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될 건지 묻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종수와 벤, 그 어디 즈음에 있는 것 같다. 종수가 사는 파주는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없어져가는 공간이다. 그런 농촌공동체는 없어지고 있다. 창고나 공장, 가끔씩 전원주택이 들어선다. 그러나 과거와 연결돼 있고 분명히 우리 현실 중 한 부분이다. 벤은 서래마을에 살고, 세련되고 여유 있고 원하는 걸 누리고 사는 친구다. 많은 젊은이들이 벤 쪽에 가깝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 형편이 안 되는데도 말이다. 삶의 방식이 어떤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Y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 주길"

'버닝'에 정답은 없었다. 이 감독조차 미스터리한 정체의 벤을 연기한 스티븐 연에게 연쇄 살인범인지 아닌지 정해주지 않았단다. 스티븐 연이 이를 생각하고 연기하도록 열어뒀다. 이 감독은 평소에도 "뭘 설명하거나 주문하지 않는다. 뭔가 표현하면 '표현하지 말라'고 말한다"고 했다.

"배우는 내적 동기가 있어야지 연기를 할 때 뭘 해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해답을 가지고 있다면, 그건 다른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가 그 해답을 보여준다. 제가 전달하고 싶은 미스터리는 그것이 아니었다. 일상의 미스터리는 세상의 미스터리로 연결돼 있다. 미스터리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한다. 그러려면 벤은 누굴까? 라는 의문은 궁금증으로 남겨두는 것이 중요했다."

이 감독은 '버닝'이 '벤은 누굴까?'라는 단순한 미스터리에서 시작돼 더 많은 미스터리로 확산되거나 심화되는 걸 원했다. 그는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마지막에 터뜨리는 걸 관객들도 기대할 것이다. 그렇게 관성적인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걸 넘어서고 싶었다"면서 "그래야만 관객들이 그 미스터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봤다"고 강조했다.

"여러 미스터리가 겹을 쌓고 있다. 근본적으로 예술, 서사, 이야기, 영화 이런 것에 대한 미스터리가 이어지는 영화이고 싶었다.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영화는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하는 것인지. 최대한 그 요소들이 살아있게 하고 싶었다."

[Y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 미스터리 자체를 받아들여 주길"

극중 해미는 노을을 배경으로 옷을 벗은 채 춤을 춘다. 삶의 의미를 찾는 '그레이트 헝거'의 춤이다. 해미의 춤에 대해 이 감독은 "영화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구하고 있다. 누가 알겠느냐만 그 의미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던 그는 "그러려면 조금 더 본연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옷을 벗은 건 관음적인 게 아니다. 가렸던 것을 벗은 것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는 춤을 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을은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위한 것이라기보다 낮과 밤의 경계, 현실과 아닌 것의 경계, 진실과 거짓의 경계일 수 있다. 계산되지 않은 자유로움과 우연함이 중요했다. 우연하게 포착된 듯 나오게 하려고 했다. 원래 한 테이크로 갈 생각도 없었다. 어떻게 하다보니까 그렇게 담긴 것이 좋아서 오케이를 했다. 그녀가 구하는 자유로움이 원초적인 느낌으로 담기길 원했다. 음악에도 불길함이 있다. 제목은 '처형대로 가는 엘리베이터'다."

명확한 해답과 의미를 찾으려는 관객들에게 '버닝'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감독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조차 '어렵다'는 평가에 대해 "예상했던바"라며 오히려 칸 현지의 호평에 대해 "왜 이렇게 좋아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수많은 영화들이 있는데 비슷한 방식의 영화도 많지 않은가. 물론 뭔가 기대를 하면 그 기대는 배반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영화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한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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