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햄릿을 꿈꾸는, 이순재를 리스펙트하는 이유

[Y터뷰] 햄릿을 꿈꾸는, 이순재를 리스펙트하는 이유

2018.04.22. 오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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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햄릿을 꿈꾸는, 이순재를 리스펙트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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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데뷔했다. 올해로 62년째 한 길을 걷고 있다. 영화, 드라마, 연극은 물론 사극, 코미디, 멜로, 휴먼 등 장르를 넘나든다. 배우 이순재(83)는 여전히 현역이다. 7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 '덕구'(감독 방수인)로 25만이 훌쩍 넘는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순제작비 5억원의 작은 영화로 이순재는 '노 개런티'로 출연, 90% 이상의 분량을 소화했다. "오랜 만에 좋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를 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힘들지 않았어. 신났어"라고 말하는 이순재는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흐름이 자연스러웠어. 억지가 없다는 걸 느꼈지. 손주를 잘 키워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할아버지인데, 내가 찾고 있었던 얘기기도 했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좋은 성과도 기대했지. 그동안 심금을 울리는 영화는 많이 없었던 것 같거든. 많은 분들이 정적인 감성을 공감해주지 않을까 싶은 거지."

[Y터뷰] 햄릿을 꿈꾸는, 이순재를 리스펙트하는 이유

지난해 본 매체는 한 분야에 존경할만한 인물을 조망하는 '리스펙트 프로젝트'(http://respect.ytn.co.kr/)를 기획했다. 그 1탄의 주인공은 이순재였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하게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집념을 불태운 그의 신념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간이 흘러도 강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그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나영석 PD는 이순재에 대해 "어떤 일을 60년 동안 할 수 있다는 건 단순히 일에 대한 재능을 넘어선 것이다. 일에 대한 자세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점이 존경스럽고, 배우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이순재는 '뛰어남'을 넘어선 '성실함'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는 "자기 관리만 잘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 이상 오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이 정도 나이 됐으니까 적당히 왔다 갔다 하면서 용돈이나 얻으면 된다는 마음은 안 되는 거지.(웃음) 현장에서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면 안 돼. 밤을 새우면 같이 새우는 거지. 나이가 있다고 빠지게 되면 아예 빠져버린다고. 더 잘 적응하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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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조명 받지 못할 때인 1950년대, 이순재는 영화 마니아였다. 대학교 재학시절 '영화에 대한 정보는 이순재에게 물어봐라'고 할 정도로 박학다식했다. 아카데미 수상작부터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꿰고 있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처음부터 어려움은 각오했다"고 말하는 그다.

"우리 직종은 예술로 인정을 안 해줬어. 일종의 딴따라인거지. 역사적으로 공연예술의 역사가 없잖아. 난 이 직종에서 훌륭한 창조적 예술을 봤거든. 각 대학마다 연기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모여서 경연대회를 열었어. 우승하면 상금도 줬고. 내가 여기서 마지막 공연을 했어."

그렇게 1956년, 대학생 시절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기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은 그는 1961년 KBS 개국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TV에 처음 출연했고, 1964년 개국한 TBC의 전속 탤런트 1기로 스카우트되면서 본격 데뷔했다. 그 이후 쉬지 않고 드라마, 영화, 연극 등에 출연했다. 1964년 이래 연기를 쉬었던 한 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빼곡히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이순재는 '살아있는 역사'라는 표현에 대해 "시작부터 빛났던 건 아니었다"고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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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너머'에서 60살 먹은 노역을 연기했어. 젊었을 때 주인공을 한 것도 아냐. 나도 그렇고 당시 동료들도 역할의 경중을 따지지 않았어. 역할이 작어도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였고."

아직도 하고 싶은 역할이 있냐고 물었다. 이순재는 망설임 없이 '햄릿'을 외쳤다.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들이 선망하는 역이 바로 햄릿이거든. 타이밍을 놓쳤지. 키도 적고, 처음부터 노역을 하다보니까 빠진 거 같아. 최불암씨도 했는데 나만 못했어. 하하. 내가 하면 해석을 달리 하지 않았을까. '시라노 드베르주라크'의 시라노 역도 다시 할 수 있으면 좋지. 그런데 이젠 주인공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을 거야. 한 신(scen), 한 컷(cut)이 나와도 존재의 의미만 살면 된다고. '내가 왜 나왔지?'라고 생각되지 않는 작품을 해야지. 그 의미만 산다면 지나가는 단역도 존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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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다"고 말했지만 연기자에 대해 "불효직종"이라고 표현했다. 이순재는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곁을 지키지 못했던 때를 떠올렸다.

"공교롭게 아버지랑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일이 있었어. 관객과의 약속이 중요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무대에 섰지. 아버지 때는 다행히 내 아우가 있었는데, 어머니의 곁에는 아우도 세상을 떠나서 없었거든. 아마 우리 아버지랑 어머니도 이해했을 거야.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말이야."

그렇게 남다른 책임의식과 역량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이순재는 "연기에는 완성이 없다"는 소신으로 자신의 길을 창조해왔다.

"세상에는 작품만큼 하는 배우, 작품보다 못하는 배우, 작품보다 잘하는 배우가 있어. 경지에 올라서야 돼. 그래야지 연기에 창조력이 생기고 예술성이 성립된다고. 그런데 연기에는 끝이 없거든. 잘할 순 있지만 경지를 뚫을 순 없어. 그러니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 영화사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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