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이슈] "인생이 영화"...故최은희, 파란만장한 인생史

[Y이슈] "인생이 영화"...故최은희, 파란만장한 인생史

2018.04.17. 오전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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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이슈] "인생이 영화"...故최은희, 파란만장한 인생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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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영화' '영화보다 영화 같은 삶'

지난 16일 92세로 세상을 떠난 故최은희(본명 최경순)의 삶을 말할 때 이런 표현이 많이 사용된다. 한국 영화를 이끈 배우이자 납북과 탈출이라는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온 고인이었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로 데뷔했다. 주로 연극 무대에 섰던 그는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 활동을 시작했다.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을 연이어 내놓으며 스타로 떠올랐다.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원조 트로이카로 군림했다.

첫 결혼의 실패를 뒤로하고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사랑에 빠졌고, 1954년 결혼했다. 이후 두 사람은 신필름을 함께 이끌며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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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무려 13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은막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상록수'(1962)로 제 1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시상식을 휩쓸었다. 고인은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고,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대한민국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 감독의 스캔들의 여파로 1977년 그와 이혼한 고인은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했고,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서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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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북한에서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엔 극단 신협 대표로 취임, 뮤지컬을 제작하는 등 활동을 이어왔다. 2006년 신 감독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고인은 허리 수술 등으로 건강이 악화됐고, 임종 직전까지도 신장 투석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장지는 안성천주교공원묘지다.

YTN Star 조현주 기자(jhjdhe@ytnplus.co.kr)
[사진제공=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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