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터뷰] '흥부' 정진영 "악역이지만, 전형적인 얼굴 보이기 싫었다"

[Y터뷰] '흥부' 정진영 "악역이지만, 전형적인 얼굴 보이기 싫었다"

2018.03.01. 오전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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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터뷰] '흥부' 정진영 "악역이지만, 전형적인 얼굴 보이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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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게. 그리고 그 꿈을 사람들에게 전하게. 꿈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는가? 땅이 하늘이 되는 세상."

영화 '흥부' 속 조혁(김주혁 분)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조혁의 목소리로 꿈을 꾸라고 말하고 그 중요성을 역설하며 끝까지 달려나간다.

그래서일까. 그토록 꿈을 외치는 사람들 앞에 서 "꿈을 꾸는 것도 죄야"라고 응수하는 탐욕스러운 양반, 조항리의 말이 유독 야속하다. 백성의 고통에는 눈을 감고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는 조항리 모습에 누군가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교활하면서도 어째 좀 허술하기도 한 악역 조항리를 배우 정진영이 소화했다는 데 있다. 그간 선의 위치에서 사회 정의를 위해 희생하거나 부조리를 고발하는 엘리트 역할을 도맡아온 그였다.

[Y터뷰] '흥부' 정진영 "악역이지만, 전형적인 얼굴 보이기 싫었다"

동시에 그런 의외성이 영화 속 메시지를 더욱 호소력 있게 만들었다. 밟을수록 살아나는 민초처럼 조항리가 악독해 질수록 민중과 함께 하는 조혁의 목소리는 가슴 깊은 곳을 울린다.

시나리오 속 전형적인 악역은 정진영을 만나 입체적으로 스크린에 펼쳐졌다. 그렇게 정진영은 악역마저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기에 대한 칭찬은 어색하다"며 멋쩍은 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었다.

[Y터뷰] '흥부' 정진영 "악역이지만, 전형적인 얼굴 보이기 싫었다"

다음은 정진영과의 일문일답.

Q. 영화 본 소감은 어땠나?
정진영(이하 정): 재밌게 봤다. 맨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흥부'를 보고 사람들이 '이거 다 아는 얘긴데' 하면서 관심이 없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었다. 어제 보니 우리가 다 아는 주걱으로 뺨 때리기, 제비와 같은 요소들이 아주 설득력 있게 배치됐더라.

Q. 그전의 선하고 정의로운 역할에서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변신했다. 계기가 있다면?
정: 시나리오를 읽고 '캐릭터를 좀 다르게 그려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역이지만, 전형적으로 한 얼굴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단지 인상 쓰고 위압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복합적인 모습을 상상했고 이를 감독한테 제안했다. 감독도 마음에 들어했다.

Q. 특히 조항리를 천박한 권력가로 표현했는데?
정: 우리가 '흥부와 놀부'를 이야기 할 때 놀부를 보통 천박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조항리는 놀부의 또 다른 현신이라 앞뒤가 맞는 변주라는 생각이 들었지. 또 원작처럼 '흥부'에도 해학이 깔렸다. 이에 등장하는 악인 역시 무시무시하기보다 마당놀이 속 약간의 희화화된 양반의 모습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Q. 기자간담회 당시 현실의 권력자들을 모델로 '조항리'를 만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감옥에 간 ㄱ,ㅇ,ㅊ 등 이니셜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정: 연기를 할 때 그들을 참고한 건 사실이다. 복제하거나 모사한 건 아니지만, 이는 내가 연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현실과 영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극 중 조항리는 굉장히 정중하고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완전히 팔랑거리면서 뛰어다니기도 하고, 또 개인의 영달을 위해 짱구를 굴리기도 한다. 이런 부분에서 현실 권력자들의 면면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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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흥부'를 선택한 이유 역시 메시지 때문인가?
정: 메시지 때문에 했냐 많이들 묻는데 꼭 그렇진 않다. 이 영화가 묵직한 주제를 갖고 있지만, 또 정치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아니다. 예컨대 '강철비', '1987', '택시운전사'처럼, 메시지가 그 자체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다.

'흥부'는 우리 인류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뤘거든. 힘없고 핍박받는 민중과 그들의 안위에는 전혀 관심 없는 권력가들의 갈등. 고난을 이기고자 하는 민중의 노고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 개인적으로는 '흥부전'을 변주한 그 자체가 큰 힘이 되고, 서로 다른 두 형제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구조가 더 재미있는 영화라고 본다. 그런데 관객에겐 그게(정치적인 메시지가) 더 강하게 보이는가 보다. 같은 역사를 앞 전에 경험하다 보니 현실과 연결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Q. 정우, 김주혁 등 배우들과 호흡이 대부분 처음이었다. 어땠나?
정: 재밌었다. 정우는 에너지가 대단한 배우다. 음란소설 작가에서 혁명가로 변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는데도 말이다.

(김)주혁이야 말할 나위 없지. (정진영은 김주혁을 조혁이라고 고쳐 불렀다) 영화 속 조혁의 말이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기도 하다. (정)해인이 역시 자기 몫을 잘했다. 규모가 큰 영화는 아니지만 각 배우의 에너지가 쌓이고 모여 영화를 가득 채웠다.

Q. 이번 영화에서 모두 후배들과 합을 맞췄는데,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해줬나?
정: 선·후배가 어딨어, 같이 뛰는데…(웃음) 아역 배우한테도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내가 잘 못 생각할 수도 있잖아. 내 배역 위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 역할에 대해선 맡은 배우가 가장 열심히 준비해온다.

결국 상대방이 하고 싶은 대로, 가장 편한 상태로 하도록 만드는게 상대 배우, 선배로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게 조언하고 조정하는 사람은 감독이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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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올해 데뷔 31년 차다. 삽십 년을 넘게 배우로 살았는데 아직도 연기가 어렵나?
정: 당연히 하면 할수록 어렵고 완성이 없는 게 연기다. 다만 개인적으로 연기를 대하는 마음은 좀 편해졌다. 30대 중반부터 직업 배우로 살았는데 당시엔 뭔가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거든.

그래서일까. 굉장히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이 인물의 행동이 앞뒤가 맞아?"와 같이. 못났었지(웃음) 그리고 그런데 이게 한 2년 전부터 바뀌었다.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감정으로 하는 거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배우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인데 맞고 틀리고가 어딨나, 그저 감정을 느끼는데 충실해야지. 그럼에도 여전히 (연기가) 쉽지 않지만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나 한다.

Q. 그래서 오는 변화도 있나?
정: 연기하는 게 더 재밌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예로 들 수 있는데, 과거의 나라면 그 인물의 행동을 보고 "그게 말이 돼?"라고 되물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해당 인물이 사랑을 느낀다면 느끼는 거고 '어떻게 느낄까'로 가는 거다. 행동 자체에 의문을 가지기보다, 넘어서고 감정으로 설득시키는 게 배우의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니까 마음가짐도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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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 속 '꿈을 꾸는 것도 죄'라는 본인(조항리)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는데, 정진영에게 꿈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
정. 내 인생에 축복을 그리는 것이 꿈 아닐까. 꿈이라는 건 실현 여부보다 '갖는다, 안 갖는다'의 문제다. 꿈을 이룰 것만 생각하면 다들 꿈을 안 꿀거다. 우리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개개인에게 꿈은 정말 필요하다.

Q. 꿈조차 꾸기 힘든 현실과 대비돼, '흥부'가 주는 울림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 한편으로는 장애가 있기에 희망도 의미가 있다. 희망은, 또 꿈은 늘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꾸는게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 세상이, 특히 청년들에게 너무 각박하지.

내 아들도 스무 살인데 걔한테도 참 조언을 하기 어렵다. 우리가 살았던 세상은 그들의 것과 다르니까. 기껏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시행착오 줄여야 해' 따위의 얘기인데 이게 어떻게 조언이냐. 너무나 힘든 세상임이 분명하고 기성세대로서 많이 미안하다. 그렇지만 희망마저 버릴 수 없지 않나.

Q. 정진영의 꿈은 뭐냐?
정: 말하면 안 된다. 그럼 공약이 되니까.(웃음) 다만 꿈으로 가는 동력은 말할 수 있지. 무엇이든 새롭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내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익숙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다.

연기도 늘 새롭다. 내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익숙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다. 그만큼 어려우니까 하는거지, 눈 감고도 할 수 있으면 (연기) 관둬야 해. 그런 자극을 느낄 때 여전히 몸이 찌릿찌릿하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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