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2018.02.25.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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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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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가 한국 사회를 강타했을 때가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들에게 가끔씩 '잠시 멈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시의 삶은 각박하고, 치열하고, 불안하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는 삶은 일상이다. 경쟁에 치이고 성과를 강요받는다. 이때 '한 끼'의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 인기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감독 임순례, 제작 영화사 수박)로 4년 만에 돌아온 임순례 감독은 지하철에서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 똑같은 모습이 아닌 다르게 사는 삶을 통해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연출 제안을 수락했다.

[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어느 날 혜원(김태리)이 배낭 하나를 맨 채 귀향했다. 그가 오자마자 한 것은 텃밭에 얼어있는 배추를 뽑아 배추된장국을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혜원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취업준비생이다. 시험, 연애, 취업... 무엇하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도시에서의 버거운 일상을 뒤로하고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자존심 강한 혜원은 친구 은숙(진기주)에게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고 말한다. 물론 이 역시 사실이다. 편의점의 차가운 도시락과 인스턴트 음식은 혜원의 허기를 채우지 못했다.

혜원은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은숙 재하(류준열)를 다시 만나 그곳에서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을 거치며 직접 재배한 작물들로 정성껏 한 끼를 해먹는다. 고모의 농사일을 돕고, 은숙 재하와 재잘재잘 떠들고, 어린 시절 엄마(문소리)가 해준 음식을 떠올리며 요리를 한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1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리틀 포레스트'는 자신만의 '작은 숲'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잠시 쉬었다가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돌아온 혜원이지만 여전히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와 따뜻함을 안기는 건 '리틀 포레스트'의 힘이다.

영화는 '극적 전개'라고 할 것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렇지만 영화는 정성스럽다. 일본 영화가 여름과 가을, 겨울과 봄 2편으로 나눠 제작된 것과 다르게 한국판은 한 편의 영화에 사계절을 모두 담았다. 이를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4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거듭했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또렷한 사계절이 영화 속에 잘 담겼다. 싱그러운 새소리로 가득한 봄, 쨍쨍한 햇빛으로 땀을 내게 하는 여름, 황금빛 들녘으로 가득 찬 가을, 뽀드득 소리가 귓가에 기분 좋게 들리는 하얀 겨울이 말이다. 봄의 사과꽃, 여름의 토마토와 옥수수, 가을의 논, 겨울의 설원 등 계절별 특성을 놓치지 않은 제작진의 정성 또한 오롯이 느껴진다.

[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음식은 중요한 매개체다. 혜원에게 요리는 허기를 채우는 수단임과 동시에 불쑥 떠나버린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수제비, 시루떡, 막걸리, 파스타, 양배추 샌드위치, 떡볶이, 밤조림, 크림 브륄레, 곶감, 아카시아꽃 튀김, 콩국수 등을 엄마가 가르쳐준 방식으로 혹은 자신만의 레시피로 '뚝딱' 만들어내는 혜원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입맛을 돋운다. 정성 가득한 '한 끼'의 가치를 일깨운다.

배우들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을 연기한 김태리는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삶을 찾아가는 혜원을 이질감 없이 그렸다. 꾸밈없는 모습에도 상큼한 매력은 덤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도시 직장 생활을 접고 귀농한 재하 역의 류준열은 특유의 자연스러운 면모로 극 속에 녹아들었다. 진기주는 고향을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는 은숙 역으로 친근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김태리와 호흡을 맞추는 진돗개 오구는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Y리뷰] '리틀 포레스트', 잠시 멈춤이 필요할 때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오는 28일 개봉.

YTN Star 조현주 기자 (jhjdhe@ytnplus.co.kr)
[사진출처 = 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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