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걸작선] '하얀 전쟁'

[한국영화 걸작선] '하얀 전쟁'

2018.12.07. 오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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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걸작선] '하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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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사건들이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는데요.

그 가운데 베트남전 참전을 우리 영화 최초로 성찰적인 시각으로 다룬 작품이 있습니다.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을 탁월한 연출력으로 형상화했습니다.

바로 정지영 감독이 1992년에 선보인 '하얀 전쟁'이라는 영화인데요.

지금 만나보시죠.

때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직후인 1979년 10월.

10년 전 베트남전에 파병됐다 돌아온 기주는 시시때때로 전쟁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그는 한 주간지에 베트남전에 대한 소설을 연재하기로 합니다.

주간지 간부: 야, 박통도 갔어. 지금이야말로 월남전을 샅샅이 파헤칠 좋은 찬스라고.

이 와중에 그와 베트남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로부터 연락이 옵니다.

기주: 변 일병? 변진수 일병?
진수: 한 병장님 살아 계셨군요.
기주: 그럼 물론이지 이 사람아, 귀국선까지 같이 타 놓고선.
진수: 월남전 얘기 쓴다는 거 우연히 잡지에서 보고요. 긴가민가 해서요. 반갑습니다.
기주: 그래 변 일병, 그래 요즘 어떻게…
진수: 안녕히 계세요.

석연찮게 전화를 끊어 버리는 변 일병.

그는 소포로 권총 한 자루를 기주에게 보내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기주를 직접 찾아오죠.

기주: 왜 나한테 이걸 보냈지?

변 일병은 말을 흐립니다.

진수: 그런데 사모님은 어디 가셨죠?

천둥이 치자 급히 몸을 숨기는 변 일병. 그 역시 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도대체 이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영화는 플래시백을 통해 베트남 전 당시의 상황으로 관객을 안내합니다.

민가에 대한 수색 작전에 나섰다가 처음으로 베트콩을 쏘아 죽인 기주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전쟁의 참혹함은 점점 더 병사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죠.

이런 가운데 양민들을 베트콩으로 오인 사살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진수: 양민들이잖아요, 이 사람들.
김 하사: 총이, 총이 어디 있을 거야.

변 일병은 이 사건 이후로 심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살아 남아 귀국한 뒤에도 전쟁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죠.

영화 '하얀 전쟁'은 안성기가 연기한 기주를 화자로 삼고, 그의 주변을 맴도는 변 일병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어떤 트라우마를 남기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도심에서 벌어진 학생들이 계엄령 반대 시위와 베트남전 당시의 상황을 교차해 보여주는 이 장면!

폭력과 시민의 희생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을 대단히 극적으로 묘사한 명장면입니다.

베트남전을 회고하는 시점을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선 상황으로 설정한 것 역시 되풀이되는 비극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정면으로 응시한 영화.

'하얀 전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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