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아픈 이름, 꼭 돌아와 !

아프고 아픈 이름, 꼭 돌아와 !

2017.03.22. 오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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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가라 앉은지 1,072일이 흘렀습니다.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고창석, 양승진,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아프고 아픈 이름,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은 1,072일 이 기간 동안 단 '하나' 하나만을 바랐습니다.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아 품에 꼭 안아 보는 것입니다.

가족들의 시간은 아직도 그날에 멈춰져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차디찬 물에서 떠오르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이들에게는 아직도 사랑하는 딸, 아들,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이금희 / 조은화 학생 어머니 : (딸이) 배에서 엄마한테 오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어서, 엄마인 저는 참아야죠. 내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우리 은화보다는 덜 힘듭니다.]

단원고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딸 '은화'는 항상 엄마를 생각해주는 살가운 딸이었습니다.

엄마 혼자 밥을 먹을 때면 앞에 앉아서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주고,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하굣길에 간식거리를 사와 건넸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꿈이었던 단원고 허다윤 양은 중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즐기고, 아이들을 좋아했던 여고생의 꿈은 세월호 사고와 함께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박은미 / 허다윤 학생 어머니 : (딸을 만나면) 용서해달라고. 엄마 곁으로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그리고 영원히 사랑한다고 내 딸 다윤이,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또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의 두 학생 박영인 군과 남현철 군, 어머니들은 사고 이후 팽목항에 '운동화'와 '기타'를 각각 가져다 놓았습니다.

평소에 축구와 음악을 사랑했던 아들이 간절히 돌아오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사고 이후, 단원고에는 슬픔만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이 남겨져 있습니다.

"선생님들 보고 싶어요, 이거 다 몰래카메라죠? 이거 꿈이잖아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뛰어다니던 고창석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도, 가족들에게 유난히 다정했던 양승진 선생님도 학생들과 함께 바다 속에 갇혀있습니다.

양승진, 고창석 두 교사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아이들을 대피시켰지만, 정작 자신들은 구명조끼를 제자들에게 벗어준 상태였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천생 선생님'이었습니다.

귀농을 위해 세월호에 올랐다 실종 된 '권재근, 권혁규' 부자를 기다리는 가족의 기억도 그날에 멈추어져 있습니다.

당시 6세였던 딸 지연 양은 오빠 혁규 군이 벗어준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됐습니다.

어머니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고 아버지와 오빠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오복 / 권재근·권혁규 부자 가족 : 일단은 뭍으로 올라와야 하고, 두 번째는 (시신을) 찾아야 한다는 거. 그렇게 해서 장례라도 치러주길 바라는 거죠.]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시간 아들과 떨어져 살다 모처럼 제주도에서 함께 살기로 했던 이영숙 씨 또한 아직 차가운 바다에 남아 있습니다.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월호 인양 시도는 미뤄지고 미뤄졌습니다.

그런데, 탄핵 선고가 결정된 미묘한 시기에 침몰한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인양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인양과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된 상황에서도 미수습자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여전히 단 하나고 그들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인양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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