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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스라엘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 의미와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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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8-05-15 14:32
■ 박현도 /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앵커

미국 정부가 이른바 중동의 화약고에 다시 불을 붙인 양상인데요.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국제사회가 지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관련 내용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동문제 전문가 연결했는데요.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의 박현도 교수님 전화로 연결이 돼 있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2월이었습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대사관을 예루살렘 쪽으로 옮기겠다고 했는데 대사관 이전이 5개월 만에 아주 빠르게 이뤄진 거라고 볼 수 있죠?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번은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유예를 했다가 두 번째 기간이 됐을 때 작년 12월에 옮긴다고 선언을 했고 약속을 지킨다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아주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앵커

대사관 이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데요. 우선 왜 그런지 역사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배경 설명이 있으면 저희 시청자분들이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인터뷰]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이라는 곳이 원래 유대교에서 아주 중요한 성지고요. 성전이 있었던 곳이고요.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곳이고. 그런데 로마인들에게 쫓겨나서 지난 기원후 70년 이후부터는 사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살 수가 없게 됐거든요. 두 번째 135년에 다시 한 번 쫓겨나서 완전하게 거의 2000년 동안 유대인들이 방랑 생활을 하던 곳이고. 이슬람교에서는 이곳을 637년에 정복합니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 메카, 메디나와 함께 세 번째로 중요한 성지가 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서는 모두 다 아시다시피 예수의 마지막, 생애 마지막 부분이 있던 곳이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에서 세 곳이 모두 다 중요한 곳인데 사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이 아랍인들이 유대인들이 없어진 다음에 이들이 떠난 다음에 아랍인들이 계속 살아왔다는 거죠. 살아왔는데 이곳을 1948년에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가 성립이 되면서 이스라엘의 땅으로 이스라엘인들은 계속 요구를 했었고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의 수도로 계속적으로, 국가를 세울 때 이곳에서 국가를 세우겠다는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만 부딪치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계속 부딪치는 그러한 곳입니다.

앵커

이게 지금까지는 국제법상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지역으로 구분이 돼 있었는데요. 역시 말씀하셨지만 팔레스타인 쪽에서도 예루살렘을 나중에 장기적으로 수도로 삼으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이것이 국제법상으로는 예루살렘이라는 곳이 워낙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곳이기 때문에 단 한 번도 여기를 정확하게 어느 누구 땅이라고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걸 전문 용어로 하면 라틴어로 orpus Separatum 이렇게 해서 분리개체다, 국제적으로는 이곳을 어느 나라의 소유로도 인정하지 않고 국제공동관리구역으로 생각하고 있었고요.

특별히 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사회는 인정하지 않았고 80년 7월달에 이스라엘 의회가 동서로 나뉘지 않은 완전한 예루살렘이 영원한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하는 예루살렘 기본법을 통과했습니다마는 UN 안보리가 바로 여기에 반박을 하면서 결의안을 내서 정면으로 비판했거든요. 그래서 UN 결의안에 따라서 당시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약 13개국이 대사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철수했습니다.

이 정도로 국제적으로는 이곳을 어느 특정한 나라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지금 미국 대사관이 들어가면서 문제가 복잡해지기 시작한 거죠.

앵커

문제가 복잡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보도에 따르면 60명 가까이 지금 목숨을 잃은 걸로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 상황이 심각할 거라고 분명히 알았을 것 같은데 트럼프 대통령, 여기에 대사관을 이전한 진짜 이유가 뭘까요?

[인터뷰]
사실은 이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사관을 옮긴 건 대통령의 혼자 결정은 아니고요. 원래 1995년에 미국 의회에서 결정한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따른 겁니다. 95년에 미국 의회에서는 예루살렘 대사관법을 만들면서 당시 공화당 대표였던 밥 돌 상원의원이 주도를 해서 만든 건데요. 99년 5월 31일까지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고 예루살렘을 영원한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것을 인정하는 그러한 법이거든요.

그런데 다만 이게 국가안보에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될 때는 6개월마다 이걸 유예할 수 있게 됐었습니다. 그래서 빌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 계속 지난 20년 동안 유예를 해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유예하지 않고 작년 12월달에 이전을 하겠다고 결정을 했고 법안을 지키겠다고 나온 거죠.

그런데 이렇게 나온 이유를 보면 사실 법이 만들어졌던 1995년 당시와 지금 상황이 굉장히 다릅니다. 오히려 95년 이러한 예루살렘 대사관법이 만들어졌을 때는 당시 이스라엘의 여당이었던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이끄는 여당에서는 오히려 이 대사관법을 좀 불편하게 생각했어요. 당시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해야 될 이스라엘 쪽에서는 별로 안 좋아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이 굉장히 좋아하고 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이 상황에서 옮긴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보면 앞으로 향후 중동 정책을 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바리아를 포함해서 같이 가겠다라는 의도가 굉장히 강하고요. 그리고 국내 정치적으로 보면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 그리고 자기 지지층이 굉장히 복음적인 기독교 신자들이거든요. 이 신자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으로서 사실 잃을 건 없는 그러한 승부수입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적인 여파가 문제인데 그런데 생각보다도 예를 들면 95년의 팔레스타인 문제와 지금 2018년의 팔레스타인 문제는 상당히 다릅니다. 더 이상 팔레스타인 문제가 아랍권에서도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의제가 되지 않고 있어요.

그 이유로는 이란이 강력하게 부상을 했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해서 이란을 막는 게 먼저이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약간 양보하는 그러한 형태를 보이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국제정세도 같이 읽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대사관 이전을 한 것 같고요.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이러한 과감한 정책을 통해서 정말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종식시키는 세기의 협상을 성사시키겠다는 그런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간단하지만 두 가지 질문을 더 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지금 이미 50명 이상이 희생됐는데요. 팔레스타인인들의 분노,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른바 3차 인티파타 봉기로 이어질 가능성 있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봉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히, 모든 분위기는 그런 분위기인데요. 그런데 그게 아마도 큰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팔레스타인 쪽에서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는 한데 지금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정세라든지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보는 그동안 지지를 해왔던 여러 아랍 국가들의 모습들이 언론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지도층과 국민들층이 나눠져 있어요.

그러니까 가슴은 뜨겁게 반 이스라엘을 외치지만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지금 현재 머리는 차갑게 친 이스라엘 쪽으로 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인티파다가 과연 예전처럼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이번 사태가 우리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있을까요?

[인터뷰]
우리에게는 제가 봤을 때는 그렇게 큰 영향이 있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데요. 다만 이러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미국이 계속적으로 이스라엘 정책을 취하고 문제를 일으켜서 미국이 오히려 한반도에 집중할 수 있는 역량이 분산될까 봐 저는 조금 걱정은 되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의 박현도 교수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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