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전복될 때 침실에 머물렀던 박근혜

세월호 전복될 때 침실에 머물렀던 박근혜

2018.03.29. 오후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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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렬 / 용인대학교 교수, 김성완 / 시사평론가

[앵커]
지난해 이맘때쯤이었을 겁니다.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그보다도 더 1년이 더 걸렸습니다. 앞서 보신 것처럼 어제 검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는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는 각각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날로 되돌아가서 다시 한 번 맞춰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창렬 용인대학교 교수님 그리고 김성완 시사평론가님 나와 계십니다.

어제 검찰이 발표한 내용 우선 세세하게 들어가기 전에 크게 먼저 질문드리겠습니다. 검찰 발표 내용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인터뷰]
4년 전 얘기지만 지난해에도 계속 얘기가 나오고 있었고 세월호 인양 과정도 그렇고 지금도 현재 광화문에 가면 여전히 세월호에 관련된 그런 여러 가지 천막도 있고 그렇습니다마는 어제 검찰 발표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들 그러나 확정지을 수 없었던 것들이 어제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계속 얘기돼왔던 게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이었잖아요. 7시간이라는 게 10시 15분에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고 그리고 5시 15분에 중대본에 나올 때까지 그게 7시간이에요. 저녁 5시 15분까지 그때 뭘 했는가 이런 게 계속 제기가 돼왔단 말이에요. 그런 의혹들이.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번 설왕설래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쨌든 그 7시간 동안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는 10시 22분에 김장수 전 안보실장과 통화하고 그리고 10시 25분에 국가안보실, 그건 국가안보실이에요. 관계부처에다가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파했어요. 10시 30분에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전화해서 지시를 한 이런 것들이 있고 10시 41분에 간호장교에게 가글을 받았어요, 10시 41분에. 4월 16일 당일 얘기입니다, 이게. 2014년도. 그리고 2시 15분에 최순실 씨가 청와대 올 때까지 3시간 30여 분 동안 침실에 머물러 있었다, 이게 어제 검찰의 발표에 의한 팩트입니다, 그건. 검찰의 얘기에 의한 겁니다, 그러니까.

[앵커]
그동안은 소문이었고요.

[인터뷰]
그동안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던 것이 팩트로 봐야 되는 거죠, 검찰이 발표한 거니까. 여러 가지 조사 결과에 따라서. 그리고 중대본에 가서, 5시 15분에 중대본에 도착을 하고 잠깐 화면에 나왔습니다마는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다 입었는데 왜 이렇게 안 보이느냐는 전혀 상황과 맞지 않는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것이 계속 나왔던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난 다음에 6시에 청와대 관저로 복귀하는 이런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황들이 어제 쭉 얘기가 된 거죠. 검찰에 의해서 확인이 된 건데 과연 국가는 뭘 했을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인의 문제가 물론 아닌 거잖아요. 국가안보실은 당연히 컨트롤타워였고 컨트롤타워의 가장 위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는 거죠. 그때 국가안보실장이 김장수 전 안보실장이었고 이런 여러 가지 상황들, 앞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마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왜 그런 일을 보고를 늦게 받았다손치더라도 그 이후에 왜 침실에 머물러 있었는가.

그리고 안봉근 전 비서관이 달려가고 있는데 나중에 나온 사실들, 그리고 통화가 안 됐던 것. 김장수 안보실장이 2번이나 전화걸었다는 것 아닙니까? 통화가 안 됐잖아요. 그런 일들이 참 이해가 안 가는 여전히 그런 것들이 남습니다, 전체적으로요.

[앵커]
역시 크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어떤 걸 느끼셨습니까, 어제 들으시면서.

[인터뷰]
어제 엠바고 걸려 있다는 소식을 조금 일찍 접하고 아내하고 같이 얘기했는데 갑자기 다리의 힘이 확 풀리면서 밥이 안 넘어간다는 얘기를 아내가 하더라고요.

[앵커]
최순실 씨 이름 때문에 그랬나요?

[인터뷰]
박 전 대통령이 침실에 머물렀다는 사실도 놀랍고 최순실 씨가 겨우 등 떠밀어서 중대본을 간 것처럼 지금 되어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내용을 보면서 승객 400명이 넘게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 시각에 침대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허탈하다고 그래야 되나요.

맥이 많이 빠졌다는 생각이 들고요. 국가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라고 하는 것들을 다시 한 번 국민들한테 일깨워줬던 그런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앵커]
좀 전에 이른바 세월호 7시간이 어떤 시간인지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그동안에 소문으로 있었던 얘기가 있었죠. 세월호 7시간에 뭐 했다라는 것들이 기억나시는 게 있습니까?

[인터뷰]
그때 여러 가지가 있었죠. 방송에서 말하기 어려운 얘기도 많이 있었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었어요. 그건 잘못된 팩트가 아닌 것이고. 그리고 무엇을 치료받았다. 그리고 그 전에 치료를 받아서 그 자국이 남아서 흔적 때문에 못 나왔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보도도 많이 됐었고요. 그런데 그 부분은 여전히 알 수 없는 거죠. 왜냐하면 나중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습을 보였던 것, 그러니까 안봉근 전 비서관이 찾아가서 계속 불렀다는 거 아니에요, 대통령을. 불렀는데 나와서 김장수 안보실장이 통화를 원한다 이러니까 전화를 걸었단 말이에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리고 난 다음에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거였잖아요.

그런 것들이 여전히 그 시간에 침실에 있었던 거는 아는데 왜 침실에만 있었던가 여전히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그건 계속 보도되어 왔던 수술의 흔적을 보이기 싫어서 그랬을 수 있고, 알 수가 전혀 없는 겁니다. 검찰이 어제 그런 부분은 전혀 얘기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그 부분은 밝혀지지 않은 걸로 봐야 되겠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앵커]
참 아픈 기억이지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날 상황으로 잠시 되돌아가겠습니다. 저희가 시간대별로 지금 자세한 상황을 정리를 했는데요. 일단 되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119에 사고 신고된 것이 8시 54분으로 돼 있고요.

그다음에 목포해양경찰서 123정 출동 지시한 게 57분으로 돼 있고 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한 게 9시 30분입니다. 저희가 3개로 분류했는데요. 맨 왼쪽이 당시 상황이고요, 세월호 당시 현장에서 벌어진 상황을 하는 거고요. 그 가운데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무엇을 했느냐는 거고요. 맨 오른쪽이 어제 검찰수사 상황입니다.

실은 저도 4년 전 세월호 당시 관련 보도를 하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세월호 초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저희 YTN에서 상당히 보도를 초반에는 많이 주도를 했었기 때문에 그 기억들이 생생한데 정확하게 제가 당시 상황을 기억을 하면 그걸 보여주면서 했으면 좋겠는데요.

정확하게 사고 발생한 시각은 8시 48분으로 알려지고 있고요. 저게 신고된 게 8시 54분이고요. 청와대에서 지금 보면 9시 19분에 김기춘, 김장수, TV 속보로 사고 인지했다고 나와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게 지금 9시 19분이죠. 저게 정확하게 제가 기억하기로는 약간 내용이 다릅니다.

무슨 말이냐면 제가 정확하게 기억을 하는데요. 19분에 저희 YTN에서 맨 처음에 이른바 1보를 내보냈는데 침몰이라는 1보가 아니었고요. 당시 1보는 조난신고였습니다. 진도 부근 해상에서 500명이 탄 여객선이 조난신고가 됐다는 게 저희 전국부 기자를 통해서 맨 처음에 알려졌고요. 정확하게 세월호가 상황이 심각하구나라는 침몰이라는 자막이 나갔던 게 정확히 9시 24분입니다.

저기 검찰 수사 결과에서 9시 19분에 청와대에서 TV 속보로 사고를 인지했다는 거는 정확하게는 침몰이 아니고 조난이라는 겁니다. 이 다음 그래픽을 준비해 주실까요. 그리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10시에 박 대통령한테 서면보고를 받았다 이렇게 지금 돼 있는데 검찰 수사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지 않았습니까?

1보 보고서를 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한테 전화했는데 받지 않자 안봉근 비서관에게 전화했다는 게 10시예요. 그러면 저 시간부터 벌써 맞지 않지 않습니까?

[인터뷰]
10시 12분인가에 국가안보실 산하의 위기관리센터가 상황보고서를 일단 만든 거예요. 1보를. 배 명칭이라든지 거기에 몇 명이 탔다든지 기본적인 사실들. 그러고 나서 10시 15분 정도에 위기관리센터장이 이것을 보고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12분 정도. 여기 보시면 약간 안 나와 있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 이게 안 되니까 김장수 실장도 전화를 했던 거죠. 이 상황에 대해서. 1보가 완성이 됐으니까 그걸 대통령에게 보고하려고 전화를 걸었던 거예요.

김장수 전 안보실장이 두 번 걸었는데 두 번 다 통화가 안 됐던 거란 말이죠. 그래서 일단 김장수 실장이 얘기를 한 거죠. 이거를 빨리 보고를 할 테니까 조치를 취해달라라고 안봉근 비서관에게 얘기한 거예요. 안봉근 비서관은 또 이영선 전 행정관 차를 타고 간 거죠, 관저에. 가서 부른 거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이것도 검찰의 발표 내용이에요.

[앵커]
그러면 애초에 청와대에서 10시 15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장수 당시 안보실장에게 전화로 구조를 지시했다고 지금 나와 있죠. 당시 청와대 발표는.

[인터뷰]
10시에 서면보고를 받고, 청와대 발표에 의하면.

[앵커]
청와대 발표에 의하면 당시에는 그랬는데 검찰 조사에서는 이게 사실과 또 역시 달랐죠?

[인터뷰]
전체적으로 전부 다 조작했다는 게 검찰 수사결과로 드러났는데요. 지금 10시 17분을 기준으로 해서 모든 상황이 조작됐다고 하는 게 이번에 확인이 된 겁니다.

[앵커]
10시 17분을 기준으로 한 이유가 특별히 있었을까요?

[인터뷰]
10시 17분이 세월호가 100도 이상 기울어져서 더 이상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 거의 침몰이 확실한 상태였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때까지가 골든타임이었기 때문에 그 골든타임 전에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상황 보고 자체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번에 쭉 시간대별 상황들을 검찰에서 밝힌 내용들을 보면서 의문점이 아직도 굉장히 많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뭐냐하면 일단 침몰 소식, 조난신고가 접수가 되고 조난신고가 접수되면 정상적인 국가시스템이라면 곧바로 청와대로 보고가 올라가는 게 맞겠죠. 그러니까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보고를 제일 먼저 받았어야 하는데 어떻게 TV를 보고, 방송사 TV 자막을 보고 어떻게 사고 사실을 접할 수가 있습니까?

[앵커]
저희도 나중에 굉장히 의아했었습니다.

[인터뷰]
그리고 이것 자체가 사실은 말이 안 되고요. 국가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얘기를 의미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총리 우리가 예를 들지만 2016년 4월에 일본에서 지진이 크게 났을 때에도 26분 만에 모든 보고를 받고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건 보고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대통령 귀에 들어가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대통령이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위기관리센터에서 상황보고서 만드는 데 41분을 썼다는 겁니다.

지금 보고서 작성하는 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보고를 받는 게 중요합니까? 대통령이 보고를 빨리 받아야 지시를 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보고서 작성하는 데 41분씩이나 썼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조금만 더 덧붙여서 말씀드리면 만약에 우리가 연평도 포격사태 같은 것 그리고 천안함 침몰 사태 같은 게 났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대통령이 그 사실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지금 8시, 9시도 안 된 시각에 상황이 발생했는데 대통령 귀에 이 소식이 접해서 들어가는 시간까지가 10시 20분이었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가 국가가 멈춰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이런 국가시스템으로 어떻게 국민을 구조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 자체가 하나하나 다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 전체가 말이 안 되고요. 대통령한테 보고하는 것도 어떻게 상황병이 관저까지 헐레벌떡 뛰어가야지 보고가 되는 겁니까?

[앵커]
저도 청와대에서 예전에 출입기자할 때 가봤는데요. 그거 뛰어가면 상당히 오래걸려요.

[인터뷰]
자전거 타고 가기도 하고 그런 다고 하는데 유선보고조차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대통령이 침실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 잠을 잤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국민들한테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 것이고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다, 직무유기를 했다고 해서 처벌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또 하나가요. 그건 더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는 거고 중언부언할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당시 청와대 대변인도 거짓말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정영국 전 청와대 대변인인데 최순실 씨 아까 얘기하셨잖아요, 앵커께서. 최순실 씨가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얘기했어요, 발표는. 그게 2016년도 11월달입니다.

2016년도. 2014년도 말고. 2014년도는 세월호 참사가 2014년도 4월 16일이었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청와대 전 대변인의 발표가 2016년도 11월달이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났어요. 많이 지났는데도 여러 가지가 굉장히 석연치 않은 게 나오니까 나왔던 부분이란 말이죠.

[앵커]
그 부분에 대해서 잠깐 제가 질문드리면 혹시 그 대변인이 그 내용을 몰랐을까요, 왜냐하면 워낙 일부 소수들만 움직였다는 거라서. 몰라서 그랬는지.

[인터뷰]
대변인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죠. 제가 알 수 없는데.

[앵커]
아니면 조사가 제대로 안 됐는지 아니면 알고도 거짓말을 했는지. 지금 말씀은 거짓말을 했다고 그랬는데.

[인터뷰]
결과적으로 거짓말입니다. 정영국 전 대변인이 의도적으로 거짓말했다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된 거예요. 그러니까 외부인의 청와대 방문이 없었다라고 얘기했어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지금. 최순실 씨는 분명히 외부인이잖아요. 그런데 분명히 최순실 씨와 5명이 회의했다는 거 아닙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씨 그리고 이른바 문고리 3인방. 5명이 5인 회의를 하고 거기서 중대본에 가야 된다라는 비서관회의의 의견을 전달했다. 거기서 결정했다고 얘기가 나오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이걸 그 이후에도 청와대 대변인이 외부인은 그 당일날 방문한 사실이 없다라고 얘기할 수 있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앵커 지적처럼 그것이 정말 몰라서 그랬는지 계속 조사가 됐는데 알면서 이렇게 그 사실을 계속 덮기 위해서 그랬는지 그것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인터뷰]
방금 전에 최순실 씨 얘기를 하셨지만 박 전 대통령이 10시 22분에야 관련 상황보고를 받았다는 거잖아요, 일보를.

[앵커]
현재 검찰 수사 결과.

[인터뷰]
그 전에 식사를 준비하던 김 모 씨가 침실 탁자 위에 상황보고를 올려놨다는 거고 그래서 탁자보고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요. 어찌돼든 간에 박 전 대통령이 10시 25분에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보고받았다면 그 순간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했죠. 그런데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는커녕 집무실로 가지도 않고 위기관리센터로 가지도 않았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최순실 씨가 들어온 시각이 2시 15분인데 2시 15분까지 대통령이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전화통화만 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여러 차례 다 확인해서 전화통화한 게 아니라 한 차례 전화통화해서 구조하라 이렇게 지시했다는 것 한 번이었다는 건데요. 그리고 난 다음에 최순실 씨가 들어와서 문고리 3인방,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다섯 명이서 5인회의를 하고 난 다음에 그러면 중대본부로 갑시다, 이렇게 결정했다는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 하면 대통령이 대통령의 의지로서 뭔가 움직이는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최순실 씨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야 중대본 가는 결정을 내렸다는 겁니다.

[앵커]
그러니까 세월호에서도 비선실세 최순실이 등장을 하는 거네요, 정확하게.

[인터뷰]
그렇죠. 최순실 씨가 가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최순실 씨가 급히 들어와서 박 전 대통령과 회의하고 난 다음에야 중대본 가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하는 것은 이거는 이렇게 중대한 국가 사안에 대해서 결정을 최순실 씨한테 맡긴 거나 다름이 없다고 우리가 추정해 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앵커]
조금 전에 참 저도 답답한 얘기입니다마는 저도 세월호 참사 나중에 취재하는 과정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제가 들었던 얘기가 있었거든요. 모든 국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왜 대통령 책임으로 묻느냐라는 게 당시 여당의 얘기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떤 분들의 말이 이렇더라고요. 이게 왜 그러냐 하면 대통령의 출근과 관련이 있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 침실 얘기를 하는 건데요. 그래서 그렇다, 탄핵이라는 문제도 그렇고 세월호 때도 그렇고 모든 거를 대통령한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스타일에 있어서 그럴 만한 당연한 이유가 있다는 거였거든요, 그 사람들의 말이. 저는 침실을 보면서 그 생각을 했거든요.

아니, 대통령이라는 분이 물론 일정이 없으면 쉬고 할 수도 있지만 자주 출근을 안 하고 그냥 관저에 있다가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잠깐 나오고 이래도 되는 거예요?

[인터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국회운영위 국정감사에서 그 얘기를 했었어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그러니까 침실에 있건.

[앵커]
그 말은 맞죠. 근무시간이 따로 없는 건 맞죠.

[인터뷰]
맞는데 침실에 있건 관저에 있건 그곳이 바로 업무다라라고 얘기한단 말이죠. 그러니까 대통령이나 이런 공인들은 사생활이 없다, 모든 것이 공적으로 연관된 것이기는 한데 최소한도 그것이 침실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는 거죠,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 문제는 설령 그걸 백번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까 말씀드렸던 그러고 난 다음에 10시 41분에 간호장교에게 가글을 받고 그러고 난 다음에 2시 15분에 최순실 씨와 3인방 해서 다섯 명이서 5인회의를 가졌는데 그 사이도 시간이 꽤 길어요.

그때 최소한도 참모들 긴급회의라든지 국무회의라든지 이런 걸 소집 안 했느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10시 22분에 김장수 실장에게 지시를 했잖아요. 그리고 김석기 해경청장에게. 그런데 그 지시라는 게 뭔가 대통령으로서의 지시라기보다는 아주 상식적인 것이었어요. 의례적인 것. 잘 조치해라 이런 거였기 때문에 그것을 대통령의 이 위기에 대응하는 조치라고 보기에는 대단히 미흡했다는 얘기고 그렇다라면 순간적으로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아까 말씀드린 그 시간 동안 왜 아무 조치를 안 취했냐는 거예요.

국무회의 소집한다든지 참모회의 소집한다든지 그러면 무슨 대책이 나왔을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게 안 나왔다는 게 그런 점이 대단히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전히 7시간 동안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은 검찰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거겠죠.

[인터뷰]
세월호 유족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올림머리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잖아요. 그럴 때 방송 인터뷰할 때 제가 직접 생방송으로 들었었는데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 자식이 만약에 그 상황에 처해 있었다고 그러면 머리 올릴 시간이 있었겠느냐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 부분부분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고판단을 하고 또 정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면 만약에 말씀하신 것처럼 피곤해서 일정을 침실에 있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보고를 제대로 받았으면 깜빡하고 또 잠에 빠져서 나중에 보고를 받았다,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죠.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으면 그때부터 뛰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 급박한 상황에 미용사까지 불러서 올림머리 할 시간이 있습니까? 머리 질끈 묶고 나가면 되잖아요.

고무줄로 묶고 나가면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지금 비난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7시간의 비밀이라는 얘기가 나왔던 거고 그래서 온갖 소문이 국민들 사이에서 퍼졌던 것 아닙니까? 이게 바로 민심이었던 거어요 거든요. 그리고 11차례나 보고받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단 두 차례밖에 보고 안 받았다는 겁니다.

정호성 비서관이 다 보고 올라온 것 모아가지고 오전, 오후 한 차례씩 보고밖에 안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 중대본에 가서 대통령이 상황보고 받고 난 다음에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왜 구조를 못 합니까?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그런 거였었다는 거죠. 이게 이번 이날 하루 만의 문제가 아니라 관저하고 집무실 구분 없이 그냥 늘 어디 일상적으로 있었던 데가 집무실이라고 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말처럼 그냥 관저에 머무르면 제대로 보고 안 됐던 상황이었던 것 아닌가 싶어요, 제가 볼 때는. 박 전 대통령이 그냥 관저에 있으면 제대로 보고 안 하고 그냥 보고서 앞에 탁자에다 올려놓고 그것도 하세월이고. 나중에 대통령이 결재하고 난 다음에 겨우 보고받아가지고 그러고 난 다음에 승인하는 이런 절차들이 이전에도 반복됐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 당일날도 똑같은 행태가 반복됐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터뷰]
그런데 7시간의 상당부분이 윤전추 행정관이 정매주, 머리 하는 사람이죠, 정매주 씨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거예요. 출발하시면 문자 부탁드립니다. 출발 빨리 해야 되니까. 많이 급하십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거거든요.

그 정도로는 해석할 수 있죠. 그 시간에 뭘 했든 간에 올림머리를 했다라는 것이 밝혀지는 거죠. 이 사람들이 들어왔던 것들이 알려졌으니까. 그런 다음에 머리를 하고 난 다음에 4시 33분에, 오후 상황이에요. 오후 4시. 16시 33분에 처음으로 관저 밖으로 나왔다는 거거든요.

그런 다음에 5실 15분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가깝죠. 청와대에서 멀지 않잖아요. 거기 도착했다라는 거예요. 어느 정도 7시가의 행적은 풀리기는 풀리는 거예요. 올림머리 한 시간이니까. 그러니까 김성완 평론가 말씀처럼 거기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당연히 따라야 되겠고 저는 사실 지금 그런 비판도 너무 허탈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에 어떤 국가 지도자로서 할 업무를 방기했다 이런 차원은 너무 당연한 거고 이제 와서 그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공허하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왜 이랬을까라는 생각. 정말 굳이 헌법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말이죠.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최소한도 알았으면 그리고 대통령이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책임진다는 것을 안다면 대통령의 업무를 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참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이제 와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난해 봐야 뭔 의미가 있겠어요?

[앵커]
공허하다는 말씀 하셨는데 저도 공감을 하지만 저희가 오늘 이 공허한 주제를 설정하고 두 분을 부른 이유는 공허하려고 한 건 아니고요.

앞으로는 절대 이러지 말자, 이런 생각에서 저희가 취재를 했는데요. 박근혜 전 대통령 10시 22분, 뒤늦게라도 보고를 침실에서 받았다고 그러면 저도 좀 안타까운 게 당시 제가 또 기억을 되돌려보면 당시 상황이 급박하다는 거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사진 두 장이 정확하게 10시 26분하고 10시 27분에 방송으로 온에어가 됩니다.

주변에 지나가던 상선에서 찍어서 언론사 저희한테 보내줘서 했는데 당시에 제가 각도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본 저희 취재팀 그리고 시청자들의 모든 반응이 큰일 났구나 그랬거든요. 상황이 심각하구나. 굉장히 심각하구나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면 같이 본 청와대도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움직였냐는 거죠.

[인터뷰]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고 제가 말씀드린 건데요. 조난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을 자막으로 보고 그러고 난 다음에 사고 소식을 아는 이 정도 위기대처능력을 가지고.

[앵커]
그리고 거의 모든 방송이 특보방송을.

[인터뷰]
전부 다 다 생방으로 진행됐던 것들을 기억하고 저도 당일날 오후 2시에 라디오 인터뷰가 있었고 거기에서 긴급하게 속보들을 전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시간 동안에 그 이전까지 계속 TV를 주시하고 보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배가 넘어가는 상황들을 전부 다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긴박한 상황들이 청와대는 아예 다른 나라처럼 행동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시각에. 그게 국민들이 이해를 못 한다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를 모든 국민이 잊지 못하는 이유는요, 실시간으로 그 장면들을 다 봤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실시간으로 청와대에서도 충분히 그 상황들을 접할 수 있었고 거기에 대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게 엄청나게 많은 국민들한테 더 큰 상처로 다가왔던 거거든요.

그런데 청와대는 그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대처도 하지 못했죠, 그리고 구조자 파악도 제대로 못 했죠. 그리고 123정이라고 해경이 갔지만 나중에 가서 엉뚱한 것만 선원하고 선장 구조하는 것만 나중에 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었죠. 오히려 어민들이 가가지고 발 동동 구르면서 승객들을 구조하는 장면들을 우리가 나중에 확인할 수 있었던 거였다는 거죠. 이게 기본적으로 국가 시스템 자체가 아예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실은요.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국가 위기관리 현장에 있어야 되는 건 아닙니다. 국무총리도 있어야 하고요, 국가 안보실장이 총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나서는 것하고 국가안보실장이 나서는 것은 다른 거죠. 대통령이 그러니까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한테 무슨 일을 했습니까라고 국민들이 저는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대통령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게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대통령은요,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예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겁니다. 아까 어느 분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모든 걸 책임지냐. 이건 책임져야 되는 거죠, 다른 것들과 다르죠. 왜 책임을 지라는 얘기냐면요.

현장에 있으라는 얘기도 아니고 대통령이 그런 것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최소한도 관계부처라든지 참모라든지 이런 사람들 소집해서 제때제때 그 얘기를 들어야죠. 그리고 그때 최종 결정을 내려줘야죠.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왜 있습니까? 지휘관은 왜 있는 거예요?

국무위원회는 왜 있는 겁니까? 국무위원회는. 그리고 최순실 씨와 3인방하고 5명이서 얘기를 했다. 그건 도저히 국가라고 할 수 없는 거죠. 국가사회의 구분으로 볼 때. 그리고 그러고 난 다음에도 아까 앵커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일부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모르고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알 수는 없으나 그 이후에도 계속 뭔가를 바꾸려고 했잖아요. 위기관리지침도 바꿨고 10시 17분이 골든타임이니까 마지막 학생들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온 게 10시 17분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걸 10시 17분에 맞추다 보니까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됐다는 말이죠. 그런데 나중에도 말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 최고 책임자로서의 업무를 했다는 건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고 나중에도 청와대는 이런 것들을 숨기려고 급급했던 거예요.

국가의 공식 문서도 조작을 한 거란 말이죠. 그리고 결국은 컨트롤타워가 국가 잘못이 아닌 이런 쪽으로 조작하려고 했던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지나간 일이지만 우리가 지나간 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거죠. 아까 앵커님께서 잘 지적하신 것과 같이 뭔갸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지적하고 있는 거잖아요, 알려진 사실입니다마는. 박근혜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때 근무했던 사람들이 전부 숨기고 조작하려 했던 이런 것들은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인터뷰]
우리가 개헌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도 사용하고 청와대가 구중궁궐처럼 무슨 일을 함부로 벌이면 아무것도 국민이 알 수 없는 그런 얘기들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만약에 정상적인 시스템이 움직였다고 하면 대통령이 만약에 말씀하신 것처럼 업무를 해태하면 국가위기관리센터 자체적으로 움직여서 신속하게 뭔가 대처를 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했죠.

그리고 난 다음에 대통령이 업무를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대통령 비서실장부터 시작해서 지금 그 밑으로 있는 안보실장, 위기관리센터장, 거기에 파견돼 있는 공무원들까지 전부 입 꽉 닫고 상황들 조작하기에 바빴다는 겁니다.

마지막에 어떤 책임이 물어지면 대통령 1명을 보호하기 위한 나라로 바뀌었다는 거예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를 이거 과연 시스템의 문제로 봐야 되는지 아니면 자질이 안 되는 인사에 관한 문제로 봐야 되는 것인지 우리가 이번 기회에 개헌 문제도 논의할 때나 아니면 시스템을 바꿀 때.

[앵커]
아니면 그 두 가지가 겹쳤는지.

[인터뷰]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지금 당일로 저희가 돌아가서 대통령에 대한 비판, 국가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 하고 있는데요. 여러 번 말씀을 드려야 되지만 그날 와중에 언론의 책임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이른바 모두 구조가, 학생들이 구조된 것 아니냐. 전원 구조됐다는 저희도 책임이 있고 아까 말씀드렸 것처럼 저도 그 보도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책임을 인식하고 있고 앞으로 개선할 거냐 여러 가지 생각도 했는데요.

또 책임을 전가하는 건 아니지만 오보가 났습니다. 났으면 이게 왜 바로 수정이 안 됐는지 저는 그게 더 답답하거든요. 아니, 모두 다 구조됐다는데 구조당국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다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면 바로 수정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국가에서?

[인터뷰]
그때는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런 시스템 자체가 적어도 그때만은 붕괴됐던 것 같아요. 붕괴가 안 되면 도저히 이런 부분들이 설명이 안 돼요. 지금 말씀처럼 저도 기억이 나요.
11시 1분인가요?

[앵커]
여러 방송사들이 차이가 있어요.

[인터뷰]
약간 시간차가 있는데 11시 전후로 해서 전원 구조됐다라고 제가 본 기억이 나거든요. 저도 2014년도 4월 16일 당일날. 그래서 아이, 참 다행이구나라고 어디 TV를 보다 나온 기억이 나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그 난리가 났단 말이죠. 그런 것들이 왜 하나도 수정되지 않았는지도 지금 4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봐도 이해가 안 가는 측면이 너무 많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때는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이라든지 보정할 그런 시스템 자체가, 메커니즘, 기제 이런 것들이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는 이런 것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라는 거죠.

[인터뷰]
TV를 보고 대처를 한 거죠. TV에 나오기 전에 대처한 게 아니라 TV를 보고 상황대처를 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들을 우리가 접할 수밖에 없는데요. 저도 당시 상황이 기억납니다. 1시간 정도가량 구조상황들이 완전히 180도 달라지는 것들을 경험했고 제 기억으로는 1시 조금 넘었을 무렵에 전원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던 게 제가 기억이 나거든요.

[앵커]
그러면 이른바 그 오보가 나가고 2시간이 지나서 확인된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11시무렵부터 시작해서 1시 조금 넘었을 시각까지 모든 국민이 다 안도하고 있을 때 청와대도 안도하고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걸 보고. 그게 잘못됐다는 걸 바로잡지 않았다는 얘기는 똑같이 그것만 보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만약에 언론에서 오보를 냈으면 급히 수정을. 중대본은 뭐하러 꾸리고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는 뭐하러 있습니까?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이거 오보다. 지금 아직 확정된 거 아니라고 얼른 알려줘야죠. 그런 교정작업들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같이 넋놓고 TV만 보고 있었다는 겁니다.

[앵커]
교수님,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예전 탓만 할 게 아니고 미래도 생각을 해야 되죠. 그러면 문재인 정부 앞으로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한다고 했단 말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까요?

[인터뷰]
일단 국가안보실이 이런 단순 우리가 가장 전통적 개념의 안보만 있는 건 아니죠, 이제. 군사적 관점에서의 안보가 아닌 거예요. 이런 것들이 다 안보에 관련된 거죠, 안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다잡을 필요가 있어요.

그 이외에도, 세월호 이후에도 국가가 바뀌었느냐? 바뀌었다고 우리가 얘기하기 어렵잖아요.
참사 이후에 여러 가지 정부조직도 개편하고 그랬지 않았어요. 해경도 해체하고 이랬던 일이 있지만 그건 다시 원상복구 다 됐어요.

무조건 조직을 해체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으니까. 우리 사회의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국가가 시스템적으로 방어하고 출동할 수 있는 이런 매뉴얼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아직도 우리나라가 먼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이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하나의 모든 보고체계가 하나로만 모여지고 거기에서 행동이 일치되게 지시만 기다리면 그거는 후진적인 시스템입니다. 한 곳에서 실수하면 다른 곳에서 그것들을 대신할 수 있는 역할들을 만들어주고 그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요.

소방본부, 해경 그리고 행정안전부면 행정안전부. 그리고 중대본이면 중대본,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면 위기관리센터. 이렇게 중층적으로 서로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각자의 기관들이 독립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한 사람만 바라보고 거기서 만약에 제대로 대처 못 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이런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런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각각의 기관들이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하고 보고체계는 신속하게 하고 거기에 따라서 그 보고가 제대로 조율돼서 최종적으로 실행에 옮겨지는 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혹시 구멍이 있는지 허점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좀 수정, 보완하는 일들을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2014년 4월 16일이었습니다. 되돌아봤는데요. 역시 답답하고 가슴 아픕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해서 저희가 자세하고 길게 되돌아봤습니다.

최창렬 용인대학교 교수님, 김성완 시사평론가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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