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국 외교가 비화 공개

1986년 한국 외교가 비화 공개

2017.04.11.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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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우리 정부의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1986년 일어났던, 지금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풀어보겠습니다.

1983년 미얀마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아웅산 테러가 있었지요.

우리나라 최고위 관료들을 포함해 21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미얀마 법원은 북한 공작원을 체포해 그해 12월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선고를 내린 판사의 딸이 2년 뒤 일본에서 유학하던 도중 숨진 채 발견된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 주제네바 대사가 외무부 장관에게 보낸 보고에 이런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북한제 담배꽁초가 발견돼 북한이 판결에 앙심을 품고 보복성 암살을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지만 전모는 밝혀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막기 위한 북한의 방해 선전도 있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입수한 당시 주인도네시아 북한대사의 주장입니다.

한국에는 1000개의 핵무기가 있다, 안전상에 문제가 있는데 서울은 부적합하지 않느냐고 주장했고, 또 당시 한국에 에이즈 환자가 60만 명에 달한다는 흑색선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김일성은 막상 개최가 확정된 뒤에는 '서울·평양' 공동 개최를 집요하게 주장했습니다.

우방인 무가베 짐바브웨 당시 수상에게 북한 입장 지지 외교전을 김일성이 직접 부탁했지만 무가베는 자국 올림픽위원장에게 남북 공동개최의 문제점과 북한의 속내를 듣고 부탁에 응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1986년 미소간의 비핵화 협상을 설명하기 위해 방한한 미국 특사 에드워드 라우니에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핵무기가 없어서 아쉽다는 발언을 했다는 기록도 공개됐습니다.

핵무기 3개만 있었으면 북한이 대화에 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대화가 중단되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이었습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의 약속으로 핵 개발 계획을 중지한 전 전 대통령이 핵무기가 없는 상태에 대한 불만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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