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살해될 수 있다" 암살 1순위 태영호

"나도 살해될 수 있다" 암살 1순위 태영호

2017.02.21. 오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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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살해될 수 있다" 암살 1순위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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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영호 / 前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앵커]
오늘 저희 뉴스인에서 태영호 전 북한 영국 주재 공사를 초대했습니다. 제 뒤에 나와 계십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어서오십시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사실은 우리 프로그램에 나오기로 전부터 약속이 돼 있었는데 예기치 않게 김정남 피살사건이 터졌고 일단 모든 활동을 중단하셨었고 그래서 저희도 못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출연을 결심하셨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제가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하는 것은 그건 잘못 나간 보도 같습니다. 제가 여기에 오기 전에도 금방 활동을 하고 왔고 또 어제도 하루 종일 필요한 사람들 만나서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수백 명을 모아놓고 북한 실상에 대해서 알리고 또 일부 대북 정책 전문가들 만나서 간담회도 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활동을 중단해 본 날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건 잘못 나간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좀 죄송하기는 합니다만 김정남 피살 이후에 다음 암살 1순위 아니냐고 지목됐는데 그렇게 계속 활동하시면서 두렵거나 걱정되시거나 하시지는 않습니까?

[인터뷰]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이미 제가 결심을 이야기했습니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안중근 의사의 단지정신으로 제가 살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 어떤 위협이 조성된다 해도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그런 활동을 순간도 중지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

[앵커]
전혀 개의치 않고 할 일을 하시겠다?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김정남이 살해됐다는 소식 처음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인터뷰]
저는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언론들이나 세계에서는 큰일난 것처럼 떠들면서 저는 그 보도를 보면서 드디어 생길 일이 생겼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마 저 뿐만 아니라 북한 엘리트층 또 북한 주민들은 김정남의 존재를 모릅니다. 김정남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저처럼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왜 그렇게 생각들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북한 체제에서는 김정은 외에 제2인자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현재 김정은 정권이 지금 제일 아킬레스건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바로 백두혈통의 정체성과 명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핵심은 무엇이냐 바로 김정남, 김정은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또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일한 후계자이다라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는 건데 지금 김정은이 백두혈통의 그런 명분을 북한 주민들에게 납득시키는 데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는 여러 가지 어려운 요인들이 많지만 그중에 바로 하나가 김정남의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김정남이 어떻게 죽었느냐 하는 건 우리가 말레이시아 당국의 공식 결과를 좀 두고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김정남이 어떻게 죽었느냐는 걸 제가 밝힐 입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김정남이라는 존재가 김정은에 있어서는 상당히 큰 부담스럽고 걸림돌이었고 또 백두혈통의 정체성과 명분, 김정은이 떠드는. 이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납득시키는 데는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앵커]
그러면 북한의 엘리트 외교관들끼리 김정남의 존재를 계속 그냥 그렇게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그 전에도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셨습니까?

[인터뷰]
이번에 김정남이 죽은 이후에 이 문제를 가지고 대단히 떠들었는데 실제 김정남의 존재는 오늘 현재 북한에 있어서 김정은 체제를 흔드는 위협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이미 오래 전에 김정남의 힘은 다 빠졌습니다.

이번에 만일 김정은의 지시에 의해서 김정남이 북에 의해서 살해됐다면 이것은 순수 김정남에 대한 김정은의 편집증의 결과입니다. 이미 김정남을 북한에서 맥 없는 존재로 만드는 과정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2012년 말하자면 김정은이 공식 북한 지도자로 등극한 이후에는 김정남 주변에서 맴돌고 있던 저희 동료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처형됐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김정남 주변에 한 명도 없어요, 이제는.

[앵커]
그러니까 실제로 김정남이 어떤 현실적인 힘이나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김정은 입장에서는 그래도 그걸 두고볼 수가 없다는 그런 편집증 때문에...

[인터뷰]
아이 때문에, 어릴 때부터 김정남을 극도로 미워하고 증오해 오던 이러한 편집증으로 증오의 결과가 오늘 현 사태를 빚어냈지 않았는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김정은이 김정남을 아이 때부터 극도로 미워하고 증오했다는 근거는 어떤 것입니까?

[인터뷰]
북한 체제에서는 김정일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나서 그 순간 김정은을 자기 후계자로 임명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북한의 엘리트 층에서 김정남이 김정은의 후계자가 될지 김정은이 될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실제로 김정남이 혹시 되지 않을까 해서 그 뒤에 줄을 섰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김정은 쪽으로 눌러주면서 김정은에 의해서 김정남 뒤에 줄을 섰던 많은 사람들이 다 처형됐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초죠. 1990년대 초,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오래전인데 김정남이 어릴 때입니다. 스위스에서 김정남이 공부하고 평양에 돌아왔어요. 돌아왔는데 김정남이로서는 평양에 친구도 없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90년대 초부터 김정남이 고려호텔에 저녁마다 승용차를 가지고 놀러 나갔습니다. 제가 그때 자주 김정남을 봤어요. 그때 김정남의 차번호가 216888이라는 큰 벤츠차를 가지고 고려호텔에 와서 고려호텔 정문에는 차를 주차시키지 못 해요.

그러나 김정남은 거기에 차를 주차시키고 고려호텔에 들어가서 거기서 저녁에 지하에 가라오케가 있고 지상에는 고려호텔 만장에는 회전식당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녁시간에 술도 마시고 하다가 갔는데 그때 먼 발치에서 그때 김정남의 장군님의 자제분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들이라는 소리입니다. 자제분이 먼 데 있다고 하면 그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심정은 매우 엇갈렸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일부 사람들은 김정남이 김정일의 아들인 것을 알고 그 옆에서 예를 들면 고려호텔의 간부들이 내려와서 나이든 간부들이 그 어린 애 앞에서 인사하고 어쩔 줄 모르고 그랬거든요.

저는 그 옆을 지나면서 김정남과 마주치는데 인사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상당히 속으로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상당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때 저녁마다 행사가 있어서 나갈 때마다 김정남을 보면 모르는 척 하자, 인사하지 말고.

CCTV로 딱 찍히거든요. 모르는 척 하지 말고, 왜냐하면 공식 후계자는 아니니 그저 지나친다. 그래서 인사하지 않고 그저 지나쳤습니다. 그 이후에 어느 한순간에 김정남은 더는 고려호텔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북한에서 김정남이 그 이후에 사고를 쳤습니다. 고려호텔에서 가라오케에서 다투기도 하고 또 김정남 때문에 김정남과 같이 술마시다가 김정일의 눈 밖에 나서 추방당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김정남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걸 김정은이 경계하고 칠 건 치고 추방시킬 건 추방시키다가 드디어 어느 날, 그 구체적인 시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고려호텔에 더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앵커]
대략 2000년대 초반쯤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인터뷰]
2000년대 초반. 김정남이 일본에 입국하다가 걸려든 것이 2001년 7월입니다. 그런데 훨씬 그 몇 년 전에 없어졌어요.

[앵커]
김정남이 1990년대 유학 끝내고 와서 중국식으로 개혁개방하자고 김정은한테 간언을 했다가 그때부터 눈밖에 났다라고 하는데 혹시 그런 얘기도 들어보셨습니까?

[인터뷰]
그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정책적 문제 때문에 탈락한 것 같지는 않고 말하자면 추문들도 있었고 다른 하나는 백두혈통의 정체성과 명분을 내세울 때 김정남과 김정은을 비교해 보면 김정일로서는 그래도 김정은이 김정남보다 더 나은 거예요.

그래서 김정은 쪽으로 손을 들어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그러니까 한쪽은 유부녀고 한쪽은 재일동포지만 그래도 유부녀보다는 재일동포가 낫다는 거군요?

[인터뷰]
바로 그점입니다.

[앵커]
그러면 김정은은 1990년대 때는 아주 어릴 때인데 왜 김정남한테 편집증적으로 미움과 증오를 가지고 있었던 거죠?

[인터뷰]
이건 제가 구체적으로 확인한 사례는 아닙니다. 그러나 김정은 자체도 김정남과 같았어요. 다 같이 북한 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김정일 아이로서 살아왔습니다.

김정남도 같고요. 그런 숨겨진 두 아들과 두 집안이나 서로 다른 여성에서 난 이복형제죠. 이복형제 간에 앞으로 생각 안 하겠습니까? 앞으로 북한은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서 그다음도 역시 김정일의 자식 중에서 지도자가 나온다.

이게 세습 구도입니다. 누가 나온다는 것은 명백했습니다. 그러면 서로 이복형제들끼리 신경쓰지 않겠어요? 너냐 나냐 하는 정말 이조 봉건왕조에서나 있을 뻔한 이런 왕자의 난이 벌써 아이 때부터 시작된 겁니다.

[앵커]
타고나면서 미움이 있었던 거네요. 김정철이 영국 왔을 때 그때 에릭 클랩튼 공연 볼 때 그때 수행해서 오래 보셨다고 했고요. 김평일이나 김정철이나 김한솔이나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김정은이 어떻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지금 현재 제가 김평일이나 김한솔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이건 제가 미리 추정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명백합니다. 김평일도 그렇고 김한솔도 그렇고 이미 죽은 김정남도 그렇고 자기의 모국인 북한에 돌아가지 못 했어요.

그러면 왜 돌아가지 못하고 지금 수십 년째 저렇게 해외에서 전전긍긍하는 생활을 보낼까요. 이것은 그들이 앞으로 북한에 돌아가면 혹시나 김정은 체제에 그 어떤 위협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두려움 때문에 수십 년째 해외에다 유배살이 시키는 거죠.

[앵커]
김정철 그때 가까이 보시니까 김정철한테도 자신의 신변에 대한 불안감, 공포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던가요?

[인터뷰]
제가 보기에는 그런 불안감과 공포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앵커]
김정철은 그런 것에 좀 자유로운 거군요?

[인터뷰]
제 생각에는 김정철 본인 자체는 그 어떤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앵커]
지금 북한 엘리트들이 김정남 소식을 들었을 것 아닙니까? 북한 엘리트들은 어떤 생각 어떤 마음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인터뷰]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선 첫 번째는 이번 사건은 북한이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엘리트 층은 저건 다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소행일 것이다 이렇게 100% 믿을 겁니다. 북한 체제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숙청이 진행됐고 고모부 장성택도 죽었거든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번에 북의 소행이라면 김정은이 자기의 장기 집권에 정말 걸림돌이 되는, 산 걸림돌을 하나 없애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장기적으로 놓고 보면 이것은 김정은 체제에 엄청난 큰 타격입니다.

지금까지 세계는 김정은의 사악성에 대한 걸 귀로만 들어왔습니다. 이번에 김정남이 어떻게 마지막 순간에 죽느냐 하는 걸 CCTV로 딱 찍었습니다. 여성들이 독극물로 감싸고 마지막에 거기서 경찰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마지막에 죽는 그 모든 장면이 동영상으로 딱 찍혔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 국제사회가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것과 같은 그런 반인류 범죄자로 내세울 수 있는 그야말로 물질적 증거를 이번에 저는 확보한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김정은의 체제 유지에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다.

[인터뷰]
네.

[앵커]
이번에 여러 가지 수법들이 있지 않습니까? 독살한 것도 그렇고 2차 암살조가 있고... 지금 태영호 공사를 저희가 초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2차 암살조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도 그렇고 현지 여성들을 포섭해서 거기에도 가담시킨 것도 그렇고 그런 수법들을 보면서 짚이는 부분이나 이런 부분은 좀 주목해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까?

[인터뷰]
제가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찰의 공식 조사 결과를 보고하고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만 우선 첫째, 현재까지 나온 보도가 맞다면 이번에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이 말레이시아에 다 같이 입국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입국했습니다.

북한 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개인이 혼자서 외국을 여행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그것이 공적 임무이든지 북한은 두 명 이상 활동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런데 이 4명이 그것도 하루가 아니라 서로 다른 날짜에 개별적으로 입국했다.

이건 북한 체제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왜 그러면 이렇게 됐느냐. 이것은 필경 입국을 은폐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입국했다. 그런데 반대로 나아갈 때는 동시에 당일날 100% 다 빠졌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쉽게 추정해 보면 마지막까지 눈으로 김정남이 죽느냐 죽지 않느냐 마지막까지 확인해 보고 결국은 사건 현장에서 없어졌다. 이런 북한의 전통적인 방법입니다.

[앵커]
저희가 조금 전에 런던에 있는 국제 탈북민 연대 사무총장하고 통화를 했거든요. 그분의 말씀은 망명정부 수반으로 옹립하기 위해서 몇 차례 접촉을 했었다.

그 접촉이 스쳐가는 공항에서의 접촉도 있었고 나중에는 싱가포르 대학 교수를 통해서 직접 의사타진도 하고 그랬었다고 하는데 그런 과정이 김정은 정권에 알려졌을 가능성 있다고 보시는지와 또 북한이 김정은의 대안으로 김정남을 준비하고 보호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있었지 않습니까? 그 두 가지의 개연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글쎄요. 그건 제가 직접 보지 못한 사실이기 때문에 해외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탈북민들이 김정남에게 어떻게 접근했는지 그건 제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고 또 두 번째 중국이 김정남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그를 보호를 해 주거나 지금까지 신변 안전을 책임져줬다 보도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저는 그런 사실이 과연 가능했겠는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앵커]
런던에 계셨으니까 해외 탈북자들이 망명 정부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김정남을 생각하게 되고 꼭 그분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그런 정황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면 김정은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을 굉장히 불편하게 여겼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저는 망명정부 수립 시도 그다음에 그러면 앞으로 망명정부를 누가 이끌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보도들이 많이 나오고 김평일이라든가 지금 김한솔 이런 말하자면 김씨 가문 내에서 그 어떤 대안세력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보도들이 나오고 있는데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저는 앞으로 북한에서 그 어떤 민중봉기가 일어나든 아니면 북한의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든 그에 대한 대안 지도자로서 김씨 가문에서 나오는 것은 저는 반대합니다.

[앵커]
김정남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본인도 그렇게 되면 또 3대 세습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나는 안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맥을 같이 하시는 거군요.

[인터뷰]
저는 어쨌든 김씨 일가가 다시 그것이 설사 김정은이든 그 누구든 김씨 일가가 다시 북한 사회에 영도적 지위나 지도적 지위에 올라가는 걸 반대합니다.

[앵커]
서울 오신 지 꽤 되셨죠?

[인터뷰]
네.

[앵커]
서울 생활 괜찮습니까?

[인터뷰]
괜찮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최근에 느끼는 바가 매우 많습니다.

[앵커]
어떤 점들을...

[인터뷰]
제가 북한과 같이 너무 지옥 같은 사회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니 정말 별세상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러 가지로 느낀 것 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한국인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 이걸 보고 제가 상당히 충격받았습니다.

특히 지난해에 시험 때 날아가는 항공기, 비행기까지도 일정한 시간을 정하고 비행기가 비행하지 못하게 하고 시험시간을 보장해 주는 그런 정부의 시책과 또 자식들에 대한 부모들의 교육열 이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이러한 자식들에 대한 교육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저희가 지금 태영호 공사를 직접 초대해서 듣고 있습니다. 김정남 사건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 북한 체제는 그리고 북한의 엘리트들은 어떻게 이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에 대해서 직접 듣고 있습니다.

아까 엘리트들만 김정남의 존재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대체로 전체로 보면 몇 퍼센트 정도, 어느 정도 선까지가 김정남을 알고 있는 겁니까?

[인터뷰]
우선 해외에 나와서 오랫동안 근무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보화의 시대이기 때문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서 김정남의 존재를 해외에 나갔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고 또 북한의 고위 권력 계층은 김정남의 존재에 대해서 다 알고 있습니다.

[앵커]
고위 권력 계층이라는 건 우리로 치면 대한민국으로 치면 차관급 정도인가요. 아니면 그래도 국장급이라든가 이 정도는 다 아는 건가요?

[인터뷰]
차관급 정도에서는 다 알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그 정도는 고위직이어야 비로소 김정남을 아는군요?

[인터뷰]
그것도 누가 알려줘서 아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돌아가는 그런 말들 이런 걸 듣고 알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고려호텔 가셨을 때 차 번호까지 기억하시니까 아까 몇 번이라고요?

[인터뷰]
216에 8자가 3개 있었어요. 제가 왜 그걸 기억하느냐면 그때 저도 고려호텔에서 상당히 충격받았거든요. 정문 옆에 저녁마다 차가 세워져 있을 수 없는데 충격이었어요. 저도 몰랐어요.

벤츠를. 그런데 젊은 사람 옆에 나이 든 고려호텔 간부들이 멤돌면서 북한에서는 나이든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허리를 구부리고 서 있는다는 건 상상 못 해요.

유교문화가 세거든요. 그런데 그 젊은 사람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일사불란하게 왔다갔다 하고 그래서 제가 저 사람 누구지 하고 물어봤어요. 제일 상급에게.

그랬더니 제 옆을 치더니 얼굴을 그쪽으로 돌리지 마라. 눈을 보지 말고 못 본 척 하고 지나가자 하면서 장군님의 자제분이다. 그다음부터 고려호텔에 갈 때부터 제가 눈여겨봤죠. 북한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타 죽고 멀어지면 얼어죽는다. 이게 말하자면 소위 똑똑한 엘리트 층의 마음의 신조입니다. 그러니까 김정남이 이제 어느 한때인가 김정남이 되든 누가 되든 누가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 누가 될 것인가 그걸 판단 잘해서 줄을 잘 서면 엄청 벼락출세를 하는 것이고 줄을 잘못 선 사람은 날아가는 거죠.

저 같은 사람은 그 누구한테도 줄 서지 않고 태양의 곁에 가까이에도 안 가고 또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 그런 부류에 속하는데 대개 외교관들, 엘리트층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가까이에도 안 가고 멀어지지도 않는.

[앵커]
그때 김정은 보니까 인상이나 행동 하는 거지나 어떤가요?

[인터뷰]
그때와 차이가 납니다. 지금은 몸도 나고 체격이 우람차지 않습니까? 그때는 체격도 우람차지 않고 몸도 크지 않고 머리는 짧게 깎고 옷은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간부들이 있는 옷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인민복이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쯔매루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그런 옷을 아주 단정하게 입고 고려호텔 들어갈 때 왼쪽은 찻집입니다.

입구 왼쪽 찻집 앞에서 서 있으면 간부들이 내려와서 어디로 가자고 안내하면 가고 그다음에 제가 보니까 그때 일본에서 조총련계의 대표들이 김정남의 존재를 많이 알아서 일본에서 온 조총련 대표들이 김정은 앞을 지날 때는 나이 든 사람이든 나이 젊은 사람이든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고 그러고 가고 했어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입구 앞에 서서 한동안 쭉 보다가 가라오케장으로 가든 만장 회전식당으로 가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앵커]
공사님 같은 북한 엘리트 사이에서는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3형제에 대한 하마평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중에 누가 과연 이른바 태양이 될 것인가 어떤 얘기들이 돌아다녔고 주로 어떤 생각들을 하셨습니까? 그 세 사람에 대해서.

[인터뷰]
그런 얘기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이 이야기가 오간 적은 없었어요.

[앵커]
얘기 못하나요?

[인터뷰]
이야기도 못 하고 정보가 너무 차단돼 있었기 때문에 저 자신도 해외에서 계속 생활을 했지만 김정은이라는 이름 자체를 2008년도에 알았습니다.

[앵커]
그때는 거의 후계자로 확정됐을 때쯤 아닌가요?

[인터뷰]
2008년 말에 김정일이 뇌졸증으로 쓰러졌다가 2008년 말부터 그때도 김정은이라는 이름은 안 알려졌습니다. 대장동지, 이제부터 대장동지 체제로 간다. 그리고 2009년 2월 16일인데 2월 16일이 김정일의 생일입니다.

2월 16일 김정일 생일 때부터 외무성이면 외무성에서 공연을 준비해요. 예술서클 공연을. 공연을 할 때 그때 처음으로 발걸음이라는 노래가 나왔습니다. 척척척 발걸음이라는 노래. 이게 뭐냐하면 김정은에 대한 노래입니다.

김정은의 이름은 안 나왔지만 이제부터 북한은 대장동지 체계, 김정은 체계로 간다하는 것을 2009년 초부터 당원들과 주민들에게 공식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김정은의 존재를 저는 몰랐어요.

[앵커]
지금 북한 엘리트들이 정세가 급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출범 후 김정은 정권에 대해서 강경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또 여기에 아까 말씀하신 국제사회에 현장을 보여주며 충격을 주는 김정남 피살사건이 발생했고 이런 상황들을 북한의 엘리트들도 인식을 하고 있을까요?

[인터뷰]
지금 제가 보건데 화면을 통해서 지금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북한 강철 대사가 계속 인터뷰를 하고 나오지 않습니까? 그 상황을 보면서 지금 내부적으로는 북한 외무성이 지금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일 북한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이 파장이 앞으로 어디까지 흘러갈 것이냐.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외교 관계 단절로 이 사건이 덮어지겠느냐 아니면 이것이 앞으로 김정은 정권의 큰 아킬레스건으로 진화되어 결국은 큰 인권문제로 부상할 것이냐. 이걸 가지고 북한 당국과 북한 외무성은 상당히 고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대사를 하셨으니까요, 오랫동안.

[인터뷰]
부대사였습니다.

[앵커]
부대사, 공사 하셨었고요.

[인터뷰]
네.

[앵커]
그래서 어제 강철 대사가 나와서 이 사람이 김정남도 아니다. 그리고 자연사 한 것이다. 모든 사실관계조차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김정남이 아니라는 말은 제가 찾아보지 못 했어요. 제가 텍스트를 다 읽어봤는데 죽은 사람은 북한 여권을 소지한 김철이다 이렇게 계속 주장하고 있어요. 김정남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그런데 이게 뭐냐하면 외부 세계가 어떻게 김정남으로 보도하든 북한은 끝까지 이 사람은 김철이다라는 주장으로 밀고 나갈 것입니다.

[앵커]
그런 경우에 어떻게 됩니까? 외교공관으로 본국에서 이러이러하게 해라라고 지령을 직접 내립니까?

[인터뷰]
당연하죠. 지금 말레이시아에 있는 북한 대사관의 활동을 보면 갑자기 예견치 않게 기자 인터뷰를 하거나 대사가 원고지에 쓴 종이를 가지고 나와서 읽지 않습니까?

그러면 북한의 입장을 대표해서 대사가 자기 결심으로 제가 그렇게 성명문을 써 가지고 나와서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당장 목 날아가는 체제입니다.

다 평양에서 이렇게 말해라 하고 딱 써서 긴급지령으로 계속 떨어지면 떨어지는 순간 받아가지고 예견치 않은 기자회견도 소집해서 나가서 읽고 들어오고 이런 체제입니다.

[앵커]
아까 그래서 평양 엘리트들이 살아가는 법.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죽고 너무 멀리 하면 멀어죽고 하셨는데 고사포 처형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평양 엘리트들이 큰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는 외신 보도들을 저희가 최근에 봤거든요.

지금 평양 엘리트들의 심정은 정말 무섭구나. 정말 꼼짝도 하지 말아야 되겠다라는 쪽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형까지 저렇게 죽이는 정말 무도한 정권이다. 정말 안 되겠다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보십니까?

[인터뷰]
지금 현 상태에서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작용하는 심리는 공포심입니다. 지금 현재까지는 공포심에 눌려서 아마 꼼짝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포심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결국은 공포심은 증오로 변하는 것은 시간상 문제입니다.

[앵커]
그런데 이미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까? 그 공포가?

[인터뷰]
공포심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고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현재 북한 엘리트층과 김정은 사이에는 그 어떤 충성심이나 연대의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앵커]
과거 김정일 시대와 많이 다릅니까?

[인터뷰]
완전히 다릅니다.

[앵커]
김정일 시대 때는 어느 정도 있었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김정일 시대 때는 우선 많은 김정일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간부들이, 엘리트층들이 김정일이 손수 제가 하나하나 올려놓은 측근들입니다. 김일성이 1994년에 죽었지만 실제 북한은 1974년 그러니까 김일성이 죽기 20년 전부터 북한은 김정일의 나라였어요.

김일성은 명목상 지도자였고 상징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모든 군, 정, 당, 경제 모든 실권은 김정일이 딱 틀어쥐고 김일성한테는 보고도 못 올라가게 이렇게 김정일이 틀어쥐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 시대 때의 간부들은 결국 김정일이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김정은은 북한 사회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김정은과 지금 김정은이 이끌고 다니는 이 간부층들은 언제 한번 같이 생활하거나 지내본 적이 없어요.

갑자기 김정일이 숨겨놨던 아들을 내세워서 후계자로 받들으라고 해서 지금 후계구도 체계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김정은은 지금 어떤 편집증인가. 이 옆에서 자기를 따라다니고 있는 이 간부층, 이 간부층이 두렵기도 하고 또 그들에게 확신이 가지 않는 거예요.

과연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두려움과 불확실성 때문에 자꾸 처형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앵커]
지금 서울에 많은 고위 외교관들을 비롯해서 북한에 고위 인사들이 들어와 있다고 하는데 몇 분이나, 어느 정도 선까지 들어와 있습니까?

[인터뷰]
제가 이 자리에서 그분들을 대표해서 그분들이 개인 프라이버시인데 제가 그걸 다 털어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공사님보다 더 고위직도 있습니까?

[인터뷰]
그걸 제가 이 자리에서 털어놓으면 그분들의 신상문제인데 그래서 제가 그걸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건 그렇고요. 어쨌든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고위층의 탈북이 일어났고 또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우리가 알면 더 놀랄 정도로.

[인터뷰]
그렇죠.

[앵커]
아까 공사님께서는 나는 생명을 무릅쓰고 내 할일을 하겠다고 말을 하셨는데 가족분들은 괜찮으십니까?

[인터뷰]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앵커]
불안해하지 않으십니까?

[인터뷰]
완전히 불안해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러나 저는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이 우리와 같은 탈북민들이 가야할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미 통일 재단에 바친 몸이고 또 이 길에서 설사 희생이 일어난다고 해도 저는 달게 접수하고 이 길로 계속 가야 합니다.

단일 우리가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눌려서 공개활동을 중단하거나, 활동을 중단한다고 하는 경우는 결국은 공포정치에 우리가 항복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통일되는 그날까지 절대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놀라지도 않을 것이며 그 공포통치를 뒤집어 엎는 데 이 한몸을 불사르겠습니다.

[앵커]
가족들께서도 아까 교육열 말씀도 하셨는데 태 공사님도 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전해들었고요. 서울 생활 다 잘 즐기고 계신가요?

[인터뷰]
그래서 지금 애들은 대학에 들어갈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배운 교육 내용과 한국에서 교육 내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한국 교육 체계에 들어가서 내년에 대학에 들어가면 한국 학생들과 같은 수준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그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래도 해외에서 오래 교육을 받았으니까요.

[인터뷰]
그것도 현실적으로 또 해외에서 교육받은 것이 도움되는 것도 있고. 일단 한국 대학교에 들어가면 일단 한국어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사회학, 한국사 이런 분야는 잘 모르기 때문에 북한에서 가르쳐주는 한국사하고 다 틀리거든요. 계속해서 그런 걸 배우고 있습니다.

[앵커]
강철 대사 혹시 아십니까?

[인터뷰]
잘 압니다.

[앵커]
어떤 인물인가요?

[인터뷰]
북한에서는 상당히 활동하고 있는 이성적인 외교관으로 분류되고 있는 노련한 외교관 중 한 명입니다.

[앵커]
말레이시아에 오래 주재했습니까?

[인터뷰]
말레이시아에는 2013년 말경에 간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앵커]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대외 공작 조직의 본거지 중의 한 곳으로 제가 들었는데 그게 맞습니까?

[인터뷰]
말레이시아가 무슨 특성이 있는가 하면 북한이 비자가 없이 입국할 수 있는 나라가 세상에 몇 개 안 됩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는 북한 사람들이 비자 없이 외교권이나 공무권 가지고 들어갈 수 있어요.

이번에도 보면 4명이 서로 다른 날짜에 입국하고 서로 빠지지 않았습니까? 바로 몇 개 안 되는 북한과 무비자 협정을 체결한 몇 개 안 되는 나라 중에 말레이시아가 속합니다. 이러한 무비자국이면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활동하기 편리한 그런 대상국입니다.

[앵커]
강철 대사가 그러니까 이지적이라고 표현을 하셨고 그래도 이성적인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경우에 김정은 정권의 지령에 어떻게 해 볼 수는 없는 거죠, 그냥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인터뷰]
북한에서 모든 저를 비롯해서 모든 엘리트층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대사가 김정은 정권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 순간 그도 김정남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싫든 좋든 김정은의 지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또 저도 북한 정권에 몸 담구고 있을 때는 김정은의 지령이 오면 무조건 머리 숙이고 집행했습니다.

[앵커]
지금 김정은 정권이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 했었던, 지금까지 한 번도 상대하지 못 했었던 트럼프 정부를 상대하게 됐지 않습니까? 과연 김정은이 핵포기 가능성을 놓고, 그걸 카드로 놓고 협상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김정은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 않습니다. 왜, 핵을 포기하면 김정은의 장기집권 체제가 흔들리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핵포기를 염두에 둔 협상은 절대 안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지금 핵동결, 현재까지 김정은이 해온, 북한이 해온 모든 핵 과거 역사를 인정하고 용납한 기초 위에서 앞으로 더는 핵실험과 ICBM 시험을 하지 않겠으니 그에 대한 조건으로 제재도 해지하고 합동군사훈련도 하지 말아라 이게 북한이 하려고 하는 그런 핵동결 대 그 어떤 등가물을 교환하는 방안입니다.

[앵커]
핵동결까지를 놓고서 거기까지는 협상을 할 가능성은 있다.

[인터뷰]
네.

[앵커]
이번에 김정남 피살사건 보시면서 과거에도 북한의 테러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김현희 사건도 있었고 그리고 아웅산테러도 있었고 이한영 피살 사건도 있었고요.

그런 사건들을 외교관으로서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어떤 생각, 어떤 심정이 드시던가요?

[인터뷰]
북한은 이 세상에 태어난 첫날부터 오늘 현재까지 테러를 자기 생존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 고위층들이나 일반 주민들을 공개처형할 때 그 어떤 적법절차라는 게 없습니다.

이거 역시 국가가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 가하는 이건 테러나 같습니다. 또 해외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생존해서 현재 오늘까지 북한은 테러활동을 중단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앵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게 그냥 정권 차원에서 항상 이뤄질 수밖에 없는 속성이 있구나라고 이해를 하신 거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북한 정권의 전속, 생존의 수단은 바로 테러입니다. 이번에 보면 이러한 테러 수법과 수단이 지난 시기보다 상당히 진화했습니다.

직접 본인들이 가담하지 않고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제3국인을 고용해서 테러하고 자기들은 빠지는 이걸 보면 테러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앵커]
김정남의 부인들 있지 않습니까? 아들, 딸들이 있는 것으로 보도됐고요. 우리가 알던 김한솔 말고도 다른 아들이 있었다고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인터뷰]
저는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지만 김정남한테 여러 명의 부인이 있었다 하는 그런 것은 구체적으로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동료들 사이에 오갔거나 제가 직접 들은 바는 없습니다.

[앵커]
김정남의 알려진 김한솔에 대해서도 추가로 아시는 건 없고요?

[인터뷰]
김한솔은 북한 외교관들 같은 경우에는 다 압니다. 김한솔이 프랑스에 있으면서 언론들과 인터뷰도 했고 그것이 언론에 많이 보도됐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앵커]
이제 전체적으로 공사님이 보시기에 김정은 체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그리고 이 사건이 김정은 체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어떻게 줄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인터뷰]
제가 이미 이야기했지만 이번 사건은 김정은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그런 시도 중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지만 정당에는 이번 사건이 김정은 체제를 붕괴시키는 데 큰 작용을 할 것입니다.

하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김정은 정권의 사악함 점을 세계는 다시 한 번 봤습니다. 고모부를 죽이고 이어 자기 이복 형을 죽이고 자기 고모부와 이복형도 서슴없이 죽이는 김정은이 여러 사람을 죽일 때 눈썹 하나 움직이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김정은이 북한 내에서 실시해 오던 이러한 공포 정치, 이러한 테러 정치의 산 증거를 세계가 이번에 TV를 통해서 봤습니다. 이것은 전 세계가 앞에 김정은 정권의 사악성을 알리는 데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태영호 공사님을 초대해서 인터뷰했습니다. 김정남 피살 그리고 앞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견해를 들었습니다. 오늘 어려우신 가운데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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