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휘둘렀다 칼 맞은 '미스터 쓴소리' 이한구

칼 휘둘렀다 칼 맞은 '미스터 쓴소리' 이한구

2017.01.19. 오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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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윤리위가 지난해 4.13 총선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던 이한구 전 의원에 대해 가장 수위 높은 징계인 제명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직 공천위원장을 제명한 건 우리 정당사에서 유례없는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가졌던 이한구 전 의원은 TK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1945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69년 행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재무부 외환자금과장과 청와대 파견 등 요직을 거치면서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었습니다.

- 그러다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해직됐는데요. 이유는 출세가 너무 빨라 인사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동서인 김용환 차관이 JP 사람이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후 김우중 당시 대우 회장과의 인연으로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대표이사까지 맡았습니다.

정치에 입문한 건 지난 2000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당의 경제통이 돼서 16대부터 19대까지 내리 4선 의원이 됐고 대선 전후였던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새누리당 원내 대표를 맡았습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불출마를 선언한 그에게 당은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겼습니다.

친박계가 그를 공천관리위원장으로 내세운 것은 상향식 공천 원칙으로 친박계의 전략 공천을 막으려는 김무성 대표를 견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김무성 / 새누리당 대표 (2016년 3월 16일) : 당에서 다섯 번씩이나 공천해서 당선된 사람을 인제 와서 정체성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한구 /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 그 결정은 사무총장, 부총장들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결정된 것입니다.]

결국 공천은 박 대통령의 힘을 업은 친박계와 이한구 위원장의 뜻대로 진행됐고 유승민 의원은 공천 결과를 비난하며 당을 떠났습니다.

당시 이한구 위원장은 유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유승민 / 당시 무소속 의원(2016년 3월 23일) :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권력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2항입니다. 오늘 저는 헌법에 의지한 채 저의 오랜 정든 집을 잠시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정의를 위해 출마하겠습니다.

[이한구 / 당시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2016년 3월 24일) : 우리 당에 입당한 이래 꽃신을 신고 꽃길만을 걸어왔습니다. (이제) 우리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난 것입니다.]

김무성 전 대표는 공천장에 찍을 도장을 가지고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간 이른바 '옥새 파동'까지 벌어졌죠.

이미 이때부터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는 예정돼 있었습니다.

이한구를 앞세운 친박계의 공천 학살은 성공했지만 결과는 총선 패배였습니다

여권의 내리막길은 최순실 게이트까지 이어졌고 이한구 전 의원은 몰락 중인 친박계의 상징이 돼서 17년 몸담았던 당에서 제명되고 말았습니다.

이미 정계에서 떠나있던 이 전 의원은 어제 당 지도부를 비난하며 탈당을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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