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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깍쟁이' 이야기
    조선시대 '깍쟁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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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침하고 쌀쌀맞으며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깍쟁이.

    한때는 말 수가 적은 서울 사람들을 두고 서울깍쟁이라 부르기도 했고 요즘에는 새침한 여자들을 가리켜 깍쟁이 아가씨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깍쟁이라는 말의 어원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가 숨어있는데요.

    지금은 사라진 조선시대 깍쟁이의 이야기를 만나보시죠.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1394년. 이성계는 한양을 새 수도로 삼는 원대한 계획을 발표하는데요.

    궁궐과 관청을 시작해 도로와 시장의 위치까지 꼼꼼하게 계획하던 중 한가지 고민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고려시대부터 한양은 숨어 살던 범죄자들이 많았는데요.

    이성계는 급기야 이들을 잡아들인 후 얼굴에 죄목을 새겨 방면합니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된 죄인들.

    얼굴에 새겨진 죄목들 때문에 백성들은 곧 누가 죄인인지 알아볼 수 있었고 바로 이 때부터 이들을 깍정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깍정이들은 한양에 살던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는데요.

    이들은 주로 청계천과 마포에 모여 구걸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범죄자였던 깍정이들이 구걸만하며 살아가지만은 않았겠지요?

    몇몇 깍정이들은 방상시라하여 장례식장을 찾아가 악귀를 내쫓는 행위를 했는데요.

    일이 끝나면 상주를 위협해서 돈을 뜯어내고는 했습니다.

    때문에 깍정이는 '이기적이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고 세월이 흐르며 깍정이는 사라졌지만 그 단어만은 오늘날까지 남아 깍쟁이라는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죄인의 신분으로 밖에 살 수 없었던 사람들, 깍쟁이라는 표현 속에는 끝내 백성들과 섞일 수 없었던 죄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