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빈 무덤, 선릉과 정릉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빈 무덤, 선릉과 정릉

2016.06.13. 오전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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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울의 지하철.

강남의 선릉역과 선정릉역 사이에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 중 일부인 선릉과 정릉이 있습니다.

선릉은 조선 9대 성종과 부인 정현왕후의 무덤, 정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무덤인데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선릉과 정릉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조선의 전 국토는 불길에 휩싸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인한 피해는 왕릉인 선릉과 정릉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선조 26년인 1593년, 경기좌도 관찰사 성영의 보고에 따르면, 선릉과 정릉을 파헤쳐졌고 이를 지켜본 신하들 또한 차마 말할 수 없이 애통해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임금과 왕비의 시신이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시신 한 구를 발견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확인해봤지만 선대 임금의 것이라 확신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는 일본에 전쟁의 배상과 함께 선릉과 정릉을 파헤친 범인을 요구하고, 일본은 두 명의 대마도 왜인을 그 범인이라하여 보냅니다.

대마도 왜인들을 심문하자, 둘은 한결같이 "자신들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밤에 포박되어 보내졌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선조는 '왜인이라면 누군들 우리의 적이 아니겠는가'라며 사형을 명했는데요.

끝내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두 왕릉은 주인을 잃은 채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400여 년 전 나라의 위기와 함께 빈 무덤으로 남게 된 왕릉.

전쟁의 상처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서울 선릉과 정릉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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