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스페셜] 창업, 글로벌 현장을 가다 2부 : 노키아의 역설

[YTN 스페셜] 창업, 글로벌 현장을 가다 2부 : 노키아의 역설

2013.11.26.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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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제2의 도시 에스푸!

발트 해를 앞자락에 두고 노키아 본사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노키아가 세계 휴대폰 시장을 호령할 때 이 건물은 핀란드 산업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노키아는 스마트 폰 경쟁에서 떠밀려 추락했고 핀란드 사람들의 자존심도 함께 구겨졌다.

[인터뷰:일까 투루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특별 자문관]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다가 왔습니다. 핀란드 교육 수준을 보여주는 학업성취도 순위 상위권과 함께 노키아는 핀란드의 자랑거리였기 때문입니다."

핀란드 경제의 한 축이었던 노키아의 쇠퇴는 역설적으로 핀란드에 창업 붐을 일으켰다.

로비오와 슈퍼셀 등 신생 강소기업이 잇따라 등장했고 노키아의 공백도 조금씩 메꿔졌다.

경제도 애초 우려와는 달리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불과 4∼5년 만에 창업 강국으로 성장한 핀란드!

이른바 핀란드식 경제 모델을 선보이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본문: 노키아의 역설'

북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항구도시 헬싱키!

아름다운 발트 해를 끼고 산책이나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면 보석처럼 박혀 있는 호수, 병풍처럼 드리워진 수목들!

핀란드 사람들은 천혜의 자연에서 캠핑과 트래킹, 조깅 등을 즐기며 자연과 호흡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도 운동을 즐기는 핀란드 사람을 마주치기란 어렵지 않다.

회사원 띠모 씨도 점심때면 짬을 내 잠깐이라도 회사 주변을 조깅한다.

띠모 씨가 조깅할 때 꼭 챙기는 것, 스마트 폰이다.

운동한 거리와 평균 속도, 그리고 소모된 칼로리 양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때문이다.

[인터뷰:띠모 토이바넨, 헬싱키 시민]
"내가 이 앱을 이용하기 전에는 10km를 달린 걸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8km 정도 달렸더라고요. 스포츠트래커는 GPS를 이용하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달렸는지 정확하게 점검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등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앱은 노키아에서 일했던 직원들이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휴대폰 GPS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위치 추적 앱이다.

이 앱의 아이디어는 지난 2004 노키아에서 나왔다. 하지만 노키아 담당 사업부의 폐쇄로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돼 있었다.

이 앱의 개발에 참여했던 노키아 직원들은 지난 2009년 회사를 그만두고 이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새로 회사를 차렸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해고를 시작하던 노키아도 직원들의 창업을 적극 도왔다.

[인터뷰:미카 라이네, 스포츠트래커 상품판매팀장]
"스포츠트래커 애플리케이션의 핵심 인력들은 그들 스스로 사업을 시작해서 스포츠트래커가 계속해서 개발되기를 희망했습니다. 노키아는 그 제안을 받아 들였고 스포츠트랙커가 설립됐습니다."

창업에 필요한 자금은 핀란드 고용경제부 산하 기술혁신지원청이 지원했다.

노키아가 재정난 악화로 대량 해고 조짐이 보이자 기술혁신지원청은 '이노베이션 밀'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노키아 직원들의 창업을 도왔다.

스포츠트래커의 앱은 노키아의 아이디어와 '이노베인션 밀'의 자금 지원을 통해 탄생한 역작이다.

스포츠트래커는 지난해에 70만 유로,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인터뷰:유카 헤이라이넨, 기술혁신지원청 창업팀장]
"노키아는 이노베이션 밀 프로그램의 일부 지원을 맡았고 기술혁신지원청도 일부분을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사장된 아이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회사의 설립을 지원하려 한 것입니다."

'이노베이션 밀' 프로그램은 노키아 같은 대기업에서 상용화되지 않은 연구 개발성과를 중소기업에 이전하거나 창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성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난 2009년 이후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창업한 기업 수는 백 개를 넘어섰다.

그리고 노키아에서 나온 엔지니어들이 자발적으로 창업한 기업도 300여 개에 이르렀다. 역설적으로 노키아의 추락이 창업 생태계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지난 9월 3일.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노키아의 휴대전화 사업 부문을 전격 인수했다.

핀란드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인터뷰:띠모 이하무띨라, 노키아 재정담당관]
"오늘 아침 마이크로소프트와 노키아는 노키아의 기기와 서비스 사업, 그리고 특허권을 54억 4천만 유로(7조 9천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노키아는 2000년대 중반까지 세계 휴대 전화 시장의 최강자였다.

지난 2008년 휴대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이 40%에 육박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스마트폰 경쟁에서 아이폰과 삼성전자에 밀렸고, 2011년부터 재정난이 본격화됐다.

영업적자 폭이 커지면서 주가는 전성기 때의 2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노키아의 추락은 한 기업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핀란드 국내 총생산 GDP의 4%, 법인세의 23%, 국가 전체 투자의 30%까지 차지했던 노키아의 추락은 핀란드 경제의 암초였다.

핀란드 정부는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정부는 노키아 출신 엔지니어들을 주목했다.

정부는 이들을 창업 생태계로 불러들였다. 대기업 노키아를 살리기보다는 노키아 직원들의 창업을 돕는 쪽으로 지원을 강화했다.

'이노베이션 밀'이 그 역할을 했다.

거대기업이 휘청거릴 때 흩어지는 인력과 사업 아이디어, 기술을 새로운 기업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으로 활용한 것이다.

노키아도 퇴사 인력을 활용하고 창업 회사와 수익을 공유하기 위해 창업을 적극 지원했다.

[인터뷰:유카 해이라이넨, 기술혁신지원청 창업팀장]
"대기업이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생태계를 주변에 만듦으로써 성장 가능성을 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또 당연한 얘기지만 연구개발은 버려질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라도 많은 이점을 남기도록 활용돼야 합니다."

이 회사도 지난 2011년 '이노베이션 밀'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선박엔진과 선박 안의 전력 시스템 등을 만드는 회사인데 직원 수가 9만여 명인 핀란드 10대 기업 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는 퇴직하는 직원들의 창업을 돕는 노키아와는 달리 선박 관련 기술 가운데 대기업이 하기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한 중소기업과 공유했다.

그뿐만 아니라 개발된 상품은 자사의 유통망을 통해 판매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노베이션 밀'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기업에도 이익이다.

중소기업이 상용화한 상품 판매액 가운데 일정 부분의 수익을 기술료로 받을 수 있고 또 잠재력 있는 부품 공급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인터뷰:일라리 칼리오, 바르질라 연구혁신팀장]
"이노베이션 밀은 핀란드가 만든 프로그램이고 바르질라는 활용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다른 기관이 사업에 이용할 수 있도록 내보내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도 옳은 일입니다."

기술혁신지원청은 '이노베이션 밀' 프로그램을 포함해 신생 혁신 기업을 지원하는 'YIC'프로그램 등 20개가 넘는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건설 폐기물 쓰레기장에서 굴착기들이 쓰레기를 옮겨 담고 있다.

옮겨진 쓰레기 더미는 쓰레기 분류 창고의 컨테이너 벨트로 연결돼 철과 목재, 콘크리트 등으로 나뉜다.

이 건설 폐기물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금속, 목재 등을 분류해 내는 것은 한 벤처기업이 만든 로봇이다.

이 로봇은 3D 레이저 스캐너와 엑스레이, 인공지능을 갖추고 있어 4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쓰레기도 재질에 따라 골라낼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갖고 있다.

이 첨단 로봇은 기술혁신지원청의 또 다른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YIC의 지원으로 탄생했다.

[인터뷰:유호 말름버그, 젠로보틱스 대표]
"기술혁신지원청이 연구개발 대출 지원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YIC 프로그램이 우리 상품이 상용화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습니다."

YIC 프로그램은 대기업과 연계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이노베이션 밀'과는 달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해 창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를 지원하고 있다.

YIC 통해 지난해 말까지 34개 기업이 창업에 성공했고, 89개 기업이 현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노베이션 밀'과 'YIC' 등 핀란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창업 생태계에 단비였다.

신생 기업이 수익을 내면서 핀란드 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노키아의 공백도 조금씩 메꿔졌다.

최근 3년간 핀란드 평균 경제 성장률은 2%로 유로 존 평균치의 2배에 달한다.

또 IT 국가 경쟁력 1위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에 육박하는 굳건한 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인터뷰:일까 투루넨, 핀란드 교육문화부 특별 자문관]
"노키아는 몰락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면에서 보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로비오, 슈퍼셀 같은 게임 업체의 성장입니다. 이러한 벤처기업들의 성장은 핀란드 정보통신 분야를 포함해 전체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라 볼 수 있습니다."

헬싱키 시내 중심에 자리한 유리 벽면의 웅장한 건물.

한 때 노키아 소유의 건물로 휴대폰 단말기 연구개발의 요람이었던 곳이다.

지난해 11월 노키아는 경영난으로 이 건물을 팔고 떠났다.

지금 이곳에는 많은 벤처기업들이 새로 둥지를 터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대기업 노키아의 몰락과 신흥 강소기업의 부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바일 게임업체로 유명한 ‘슈퍼셀’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10년 창업한 이 회사는 앵그리 버드로 유명한 기업 ‘로비오’와 함께 핀란드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략게임 ‘크래쉬 오브 클랜’과 농장에서 작물과 가축을 기르는 게임인 ‘헤이 데이’를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하루 매출이 5억 원이 넘는다.

특히 ‘크래시 오브 클랜’은 이 게임 하나만으로 천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슈퍼셀의 성공은 로비오와 함께 노키아 추락 이후 떨어진 핀란드 경제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보양제가 됐다.

[인터뷰:일카 파나넨, 슈퍼셀 대표]
"우리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핀란드는 노키아나 전통 주력 산업이 몰락한 뒤 재투자의 방향을 선정해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을 도모해야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로비오나 슈퍼셀 같은 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핀란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창업 3년 만에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린 ‘슈퍼셀’의 힘은 창의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다.

팀은 세포를 뜻하는 ‘셀’로 불리며, 한 팀의 인원은 대개 열 명을 넘지 않는다.

팀원들은 팀장과 대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또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언제든지 독립적으로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할 수 있다.

열정의 극대화와 즉시적인 아이디어 반영 시스템이 성공의 동력이 됐던 것이다.

[인터뷰:헤이니 베산더, 슈퍼셀 직원]
"게임 팀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최고 경영자나 누구의 간섭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자기의 결정에 책임을 집니다. 농담으로 우리는 현재 최고 경영자가 가장 힘이 없다고 하는데 최고 경영자는 게임 팀의 결정에 간여하지 않습니다."

노키아의 추락이 가져온 또 다른 선물은 젊은이들의 창업 열풍이다.

대기업 대마불패 신화가 무너지면서 취업 불안을 느낀 대학생들이 창업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노키아에서 나온 만 여 명의 수준 높은 엔지니어들이 가세하면서 핀란드에는 거센 창업 바람이 불었다.

헬싱키에서 서쪽으로 30여분 차를 달리면 북유럽 최대 규모의 창업 인큐베이터 단지인 ‘오타니에미 사이언스파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은 세계 IT 신기술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핀란드 경제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노키아 본사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과 로비오 같은 신생 기업 천여 개가 입주해 있다. 또 산학 공동 연구의 상징이자 학생 창업의 산실로 불리는 알토대학이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은 아담한 단층 건물!

건물 벽에 '스타트업 사우나'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창업을 뜻하는 영어 '스타트업'과 핀란드의 오랜 전통 '사우나'의 이름을 합친 것이다.

창업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만든 알토대의 창업 프로그램이다.

오늘은 스타트업 사우나의 정기 모임이 있는 날.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제 2의 ‘로비오’와 ‘슈퍼셀’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다.

모임은 간단한 식사를 한 뒤 서비스 디자인에 관한 강연 순으로 이어진다.

스타트업 사우나 모임에는 핀란드 인근 국가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등에서 온 학생들도 참가한다.

외국인 비율이 65%나 된다. 창업에는 아이디어가 중요하지 국적이나 인종은 상관없다는 게 스타트업 사우나의 정신이다.

[인터뷰:프래샨트 코클리, 인도 유학생]
"최근 점점 성장하고 있는 서비스 디자인에 관심이 있습니다. 서비스 디자인은 엔지니어나 비즈니스를 전공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점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도 서비스 디자인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왔습니다."

스타트업 사우나의 가장 큰 이점은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도 참여한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사우나 참가자를 지도하는 코치진에는 로비오나 슈퍼셀의 최고 경영자 등 기업 경영자와 임원들이 포진해 있다.

이날도 많은 기업인이 참여해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며 창업에 필요한 현실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사쿠 사이라넨, 디자인 회사 대표]
"내 경험에 비춰 보면 학생들은 이론적으로 접근하는데 그들의 논리를 어떻게 실용적으로 이용해야 하는지 어떤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유리한 것인지 등을 조언해 줍니다."

스타트업 사우나 프로그램에는 지난해 500개 팀이 참가를 지원했다.

이 가운데 반기별로 각각 20개 팀이 선발됐다.

이들은 숙박 등 경비를 지원받고 작업 공간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팀별로 나눠 아이디어 토론도 하고 가끔씩 1대 1 코치 지도를 받는다.

알토대 학생인 제롬 씨도 지난여름 스타트업 사우나에 합류했다.

인터넷 이벤트 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를 갖고 동료 8명과 함께 창업을 준비했다.

결혼식 장소 섭외에서 여행, 모임 장소 섭외 등을 인터넷으로 대행해 주는 사업이다.

제롬 씨와 동료들은 매일 스타트업 사우나에 있는 작업실로 나와 의견을 토론하고 보완점을 찾았다.

"여기 하고 싶은 것을 적고 다음 단계에 일의 진행과정과 마감된 것을 적고 다음에 해야 할 임무는 여기 작은 종이에 적어서 겹겹이 부칩니다."

이들은 지난 8월 처음으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고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라 별도의 사무실 없이 그냥 스타트업 사우나의 공간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이들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끌어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인터뷰: 제롬 사리넨, 인터넷 이벤트 회사 창업]
"경험이 많은 창업가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앵그리 버드로 유명한 로비오 창업가도 우리 사업에 조언을 해주었고 다른 학생들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사우나의 프로그램은 보통 2∼3년씩 걸리는 다른 창업 지원 프로그램과 달리 6주라는 짧은 과정으로 승부를 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환경에서 창업을 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매주 아이디어 발표가 이어지고 평가가 이뤄진다.

참가자의 30% 정도는 이런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중도에 탈락한다.

스타트업 사우나의 프로그램은 창업지원과 해외 인턴, 강연회의 세 가지 세부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통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진 창업자를 발굴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다.

[인터뷰:따투 마기야르비, 스타트업 사우나 슈퍼바이저]
"첫 번째는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실리콘밸리에 학생들을 보내 최고의 창업가들에게 배우게 하는 프로그램이고 두 번째는 스타트업사우나 강화프로그램으로 발틱과 노르딕국가, 러시아 학생들을 스타트업 사우나로 불러 모아 6주간 교육을 하고, 그 중 최고의 팀을 실리콘밸리로 보내는 프로그램, 세 번째는 유럽에서 가장 큰 창업학회를 개최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0년 이후 90개의 신생회사가 스타트업 사우나를 거쳐 갔다.

이들에게 투자된 금액만도 300억 원에 이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핀란드 경제의 버팀목을 하는 새로운 신생 기업들이 하나둘씩 산업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헬싱키 시내에 있는 한 고풍스러운 건물.

이 건물 3층에 기타 연주 애플리케이션 개발 회사로 잘 알려진 '오벨린'이 있다.

오벨린은 바로 스타트업 사우나를 통해 탄생한 기업이다.

회사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기타 선율!

기타 연주 애플리케이션 회사답게 직원들 자리 옆에는 기타가 하나씩 놓여 있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기타를 연주하는 직원!

[인터뷰:미코 카이파이넨, 오벨린 공동 창업자]
"어제 만든 프로그램이 잘 운용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고 있습니다."

오벨린의 대표 상품은 와일드 코드와 기타 보트.

어린이 같은 완전 초보자들도 게임을 하며 쉽게 기타를 배울 수 있도록 제작됐다.

기타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흥미를 게임을 통해 보완했다.

150만 명의 고객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기타를 배우고 있다.

오벨린은 지난 2010년 탐페르 대학생 2명의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투자 등 제품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11년 스타트업 사우나에 참여해 미국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로부터 100만 유로, 15억 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지금 한 달 매출은 4만 유로, 6천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

아직은 직원들 월급 주기에 빠듯한 돈이지만 오벨린처럼 작은 기업들이 촘촘히 모여 일자리를 만들며 핀란드 경제의 누수를 메꾸고 있다.

오벨린은 창업 성공 경험을 스타트업 사우나 참가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창업 초기에는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 그 결실을 새로운 창업 희망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것이 핀란드식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다.

[인터뷰:크리스 튀르, 오벨린 대표]
"나는 이미 스타트업 사우나 멘토로서 다른 창업가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스타트업 사우나에서 창업팀들을 코치했는데 보통 일주일에 두 번은 참여합니다. 이 외에도 대학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강의하기도 합니다."

핀란드 창업 생태계에 훈풍을 불게 한 한 축이 정부의 적극적인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밑거름인 교육정책이다.

노키아의 추락으로 경제에 어두운 구름이 드리우자 핀란드 정부는 대학 개혁을 단행했다.

지난 2010년, 백 년 전통의 헬싱키 기술대학과 헬싱키 경제대학, 헬싱키 디자인 대학을 합쳐 알토대학을 출범시켰다.

기술, 디자인, 경영 등 창업에 필요한 세 가지 주요 요소를 결합했다. 일종의 창업 특화 대학을 새로 만든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대학 교과 과정에 벤처 프로그램 과목을 개설했다.

투자 유치방법과 제품 개발 프로젝트 과정, 국제 디자인 비즈니스 경영과정 등 실무교육을 강화했다.

[인터뷰:올리 뷰올라, 알토대 경제학과 교수]
"학생들은 알토 창업 협회와 벤처 개러지에 이어 스타트업 사우나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알토 대학에 창업에 관한 강좌를 개설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알토대학의 창업 열기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디자인 팩토리!

이 대학에 있는 스타트업 사우나와 함께 핀란드 창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곳이다.

디자인 팩토리는 공장에서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짜내 실용적인 제품을 고안해 내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각종 디지털 기기와 3D 프린터 같은 생산 장비를 갖춰 학생이나 기업가 등 누구나 쉽게 실습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뷰:피터 타이오, 디자인 팩토리 직원]
"우리는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는데 주로 상품개발에 관련된 수업입니다.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엔지니어와 디자인, 비즈니스 전공자들이 많습니다."

디자인 팩토리에는 항상 학생과 기업인, 교수들로 북적댄다.

강의실에는 연일 창업과 관련된 발표나 토론이 열린다. 팩토리 공간 곳곳에서 창업거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토론하기도 하고 또 창업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실습하며 상품화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선다.

디자인 팩토리에 있는 한 실습실.

학생들이 팀을 이뤄 종이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출품할 기계의 종이 모형이다. 모형을 꼼꼼히 자로 재고 종이를 자르고 또 중간 중간 사진을 찍는 등 바쁜 모습이다.

대개 석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인데 이런 실습으로 이론과 실무를 접목하다.

이 실습과정 역시 알토대의 교과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인터뷰:오또 로이넨, 알토대 석사과정 학생]
"내 경우에는 석사졸업을 위한 필수과목입니다. 다른 학생들도 이 수업에 참여하려는 지원자가 많아 경쟁에서 이겨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강의입니다."

알토대의 창업 열기는 대학 울타리를 넘어서고 있다. 핀란드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앱 캠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앱 캠퍼스'는 프로젝트 당 1억 원 정도를 지원하고, 앱의 상업화를 위한 교육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작 1년 만에 전 세계 95개국에서 2천 500여 건의 신청서가 쇄도했으며 이 가운데 14개의 앱이 출시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창업 열기와 기업가 정신을 키우는 교육은 비단 대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헬싱키 인근 도시 에스푸에 있는 옴니아 직업학교!

학생 수가 만 명이나 되는 핀란드 최대의 직업학교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미니밴을 고쳐 만든 안내대가 이채롭다.

이 학교 금속공예와 목공예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만든 것이다.

안내대에 있는 사람도 호텔 근무를 원하는 이 학교 학생이 실습 중이다.

도심의 카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이곳.

다소 산만해 보이지만 지금은 영어 수업 중이다.

선생님이 앞에서 가르치고 수업내용을 학생들이 받아 적는 우리나라 영어수업과는 영 다른 분위기다.

고등학교 2학년인 로베 군이 찍은 사진을 이용해 영어로 말풍선을 달고 있다.

만화를 그리듯이 이야기를 연결해 나가기 때문에 영어 공부가 지루하지 않다.

이런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필요한 영어 단어를 선택하고 이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운다.

[인터뷰:로베 라시스, 옴니아 직업학교 학생]
"여기서는 단지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직업에 필요한 교육을 하므로 나한테 맞는 것 같습니다."

수업은 다소 어수선하지만, 특별히 통제하지는 않는다. 수업 도중에 나가거나 들어오는 것 역시 자유롭다. 기본적으로 통제보다는 자율성을 통해 창의성을 키워가는 게 이 학교의 교육방침이다.

[인터뷰:아일라 까리, 옴니아 직업학교 선생님]
"이러한 수업 방식은 학생들이 단순히 선생님의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니므로 보다 독립적인 사고와 책임감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교과목은 직업학교답게 건축, 의상 디자인, 목공 등 각 전공별로 실무 위주로 이뤄진다.

개별적인 학습계획과 진로는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직업교육과 현장실습을 접목시키는 것 그것이 옴니아 직업 학교의 정신이다.

옴니아 직업학교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실제 창업에 성공한 기업가들도 입주해 있다.

학교는 창업가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30여 개의 방을 별도로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학생들이 기업가들과 자연스레 접촉할 수 있도록 해 창업 정신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모바일 학습용 게임업체 사장인 띠모 씨도 2년 전부터 옴니아 학교로 사무실을 옮겨왔다.

사업 특성상 10대 학생들의 의견을 수시로 반영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띠모 카랴야라이넨, 모바일 게임업체 사장]
"학습게임 개발업체이기 때문에 게임을 개발하고 시험할 때 쉽게 학생들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띠모 씨 같은 기업인 80여 명이 옴니아 학교에 들어와 있다.

이들은 수시로 학생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기 하고, 창업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학생들과 함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터뷰:엘리나 옥사넨, 옴니아 직업학교 수석교사]
"창업가가 프로젝트를 제공하면 학생들과 창업가가 협업하여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공동체 개념으로 창업가와 학생이 협업을 통해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핀란드에서는 직업학교에 꼭 가지 않더라도 중학교 교육과정에 직업체험은 의무적으로 포함돼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미래의 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기회와 창업에 대한 꿈을 키워주고 있다. 그리고 그 결실이 하나둘씩 열매를 맺고 있다.

'에필로그'

핀란드에서는 한 때 ‘핀란드 패러독스’ 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돌았다.

정보통신과 교육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고도 고성장 기업을 키워내지 못하는 위기감의 표현이었다.

창업을 주저하는 문화, 기업가를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정부 시스템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제 핀란드는 달라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정부 주도의 혁신과 대기업 - 중소기업의 상생 문화!

그리고 창업 리스크를 사회가 과감히 떠안는 풍토를 만들며 핀란드의 창업 생태계는 새로운 환경을 구축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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