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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스페셜] 글로벌 신(新) 한국인 4부 : 세계를 파는 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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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2-10-26
일본인이라면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먹는다는 라면!

이 라면을 갖고 일본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젊은이가 있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재일 한국인이 일본의 음식문화를 갖고 세계로 진출했다."

한국의 맛을 알리는 김치 전도사 황혜란 사장.

3대째 할머니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지금까지 해 왔던 문화나 역사는 어머니가 저한테 맡긴 재산이구나."

음식으로 전 세계에 도전장을 던진 젊은 한상들이 뛰고 있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 홋카이도 출신의 케이프란 고해정 사장은 재일동포 3세다.

라면집 주방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고 사장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이 가게 주 메뉴는 된장라면으로 유명한 삿포로 라면.

돼지 뼈를 고아낸 물에 사과와 버섯, 파 등을 넣어 끌인 육수는 돼지고기 냄새가 없는 이 집만의 비법이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사과도 넣고요 어떤 집에서는 배를 넣는 집도 있고..."

여기에다 고향 홋카이도에서 공수한 쫄깃한 면발이 더해져야 제 라면이 완성된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계란면이라고 해서 굉장히 인기가 많고 맛있습니다. 진한 육수에 딱 맞는 면입니다."

삿포로 라면은 육수와 양념, 야채를 함께 볶은 뒤 삶은 면에 부어 내는 것이 특징.

깊은 된장 맛에 기름진 풍미가 일품이다.

[인터뷰:타이코쿠 테패이, 라면가게 점장]
"홋카이도 스타일이라고 하면 이런 중화요리 냄비로 기름과 채소, 양념을 함께 볶는 겁니다."

[인터뷰:타이코쿠 테패이, 라면가게 점장]
"어제 매상은 35만 엔입니다. 여름이라 좀 적네요. 그래도 후반기에 매출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라도 제대로 해 봅시다."

'해피 & 땡스' 발표하실 분 계세요?

조회시간, 점장의 당부에 이어 이른바 해피 타임.

즐거웠던 경험을 한 사람씩 발표하는 것이다.

[인터뷰:라면가게 점원]
"아침에 딸이 잘 일어날 수 있게 된 게 행복합니다. 고마운 점은 아직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러 가지 도움을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상입니다."

행복한 경험을 들으면 덩달아 행복해 지고 이것이 손님들에게 좋은 서비스로 이어진다는 것이 고 사장의 생각이다.

"오늘도 하루 잘 부탁합니다"

이 집 라면 맛에 푹 빠진 손님들로 가게는 금세 만석이다.

[인터뷰:라면가게 손님]
"진한 맛이 납니다. 진하고 조금 특이한 맛이 나서 아주 맛있습니다."

이 가게의 하루 매출액은 5백만 원 정도.

도쿄 인근에 라면집 3곳을 운영 중인 고 사장은 조만간 체인점 20곳에서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오후 고해정 사장이 들린 곳은 파친코 안 카페.

내장객들에게 식음료를 파는 곳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카페 여러 곳에서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파친코 이용객이 줄어 다소 고전하고 있다.

파친코는 고 사장이 사업에 눈을 뜬 곳이다.

23살 청년 고해정이 처음 취직한 곳이 한인 파친코 회사였다.

사업을 뜻을 품고 게이오대를 중퇴한 고해정은 31살 때 부실 파친코를 인수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거기가 20년 동안에 회사가 5번 바뀌어서 어느 사람이 하더라도 잘 안 되는 자리였거든요,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거기서는 하지 말아야 된다, 이렇게 했는데 어떻게 잘 되게끔 했죠. 당연히 잘 되었다는 건 어느 정도 돈도 벌었습니다."

파친코로 사업기반을 닦은 고해정은 이후 업종을 전환한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이 파친코 사업을 계속 열심히 해서 일본 국내에서 펼쳐 나갈 것이냐? 아니면 요식업이란 사업으로 확대해 나가면서 세계로 나가느냐? 저는 요식업으로 나가자는 선택을 했습니다."

고해정은 1969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났다.

일본 패망 이후 일본에서 조선학교 설립 운동이 일자 고해정의 아버지는 민족학교 교사로 홋카이도로 부임해 고해정을 낳았다.

아버지는 이후 미군정과 일본정부의 조선학교 탄압 때 투옥되는 고초를 겪는다.

고해정은 학창시절 스키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해정을 일본학교에 보내 일본국가대표로 키우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해정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경영이념. 손님의 만족과 감동의 최대화! 스피릿. 어떤 환경에도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는 진지한 자세를 유지하자! 잘 부탁합니다."

매주 영업 결과를 보고하는 라면 점장 회의.

라면 조리시간을 단축하는 문제가 논란이다.

3분인 조리 시간을 줄여야 하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웃자' 고 사장의 경영 방침이다.

고 사장은 월 매출 천만 엔을 달성하는 라면가게 점장에겐 천만 엔, 우리 돈 1억4천만 원의 연봉을 약속했다.

[인터뷰:하야시 켄타로, 라면가게 점장]
"저는 1년 뒤에는 달성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때문에 언제 달성할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1년 뒤'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라면가게 점장이라도 그만한 대우는 받아야 한다는 것이 고 사장의 고집이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확실히 자기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자녀들을 대학까지 확실히 보낼 수 있게 되는, 그런 정도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연봉 천만 엔을 받을 수 있고 본인도 그런 정도를 받아 마땅하다는 그런 정도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도쿄 한국 거리인 신오쿠보.

연말 개점을 목표로 건물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여기는 그럼 언제 오픈? 완공? 요거는 이번 달 말까지 완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다목적홀 쪽에도 지금 소방이라든가 문제가 많이 걸려가지고 먼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고해정 사장이 요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길거리 음식인 김밥과 떡볶이를 일본시장에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평범한 김밥과 떡볶이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런 고해정에게 오쿠노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도쿄의 부촌 아자부에서 소문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오쿠노는 고해정의 친구이자 맛 선생이다.

"베이컨, 마늘 이런 건 일본사람들이 거의 먹지 않으니까 그렇게 보면 쓸 수 있는 게 정해져 있네."

소박한 음식인 김밥과 떡볶이로 과연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인터뷰:오쿠노 요시유키, 이탈리아 요리사]
"맵지만 너무 맵지 않다든가 하는 게 중요해서, 한국 분들도 원재료의 맛을 좋아하시잖아요? 그걸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 부분에 유념해서 다른 식으로 맛을 내면 다 입맛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경한국청년상공회의소 이사와 젊은 기업인들의 모임인 YBLN의 일본 대표를 맡고 있는 고해정 사장.

내부지향적 나라인 일본에서 외국인, 특히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집요하다.

이 차별을 극복하고 일본 열도를 넘어서 중국 화상에 버금가는 한상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고해정의 관심사다.

[인터뷰:김광일, 동경한국상공회의소 회장]
"아무래도 젊은 친구들은 1세 2세와 같은 사고뿐 아니라 새로운 물을 퍼서 붓는 것과 같이 보다 글로벌하게, 좀 더 넓게 세계를 보고, 특히나 아시아, 아시아 중에서도 중국, 인도를 그런 곳을 대상으로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젊은 사업가들이 고해정의 생일을 맞아 자리를 같이 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재일동포 기업인들과 신세대 사업가들의 사이에서는 꼭 필요한 존재다.

[인터뷰:김덕홍, 한류백화점 사장]
"일본에서 특히 우리들의 선배분들, 교포분들 그리고 저처럼 뉴커머들 이 안에 가교 역할을 너무나도 잘 해주시고 있고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하고 있는 YBLN의 네트워크에서 가장 큰 중심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손님들이 이 가게로 오세요. (여기 오시는 어떤 분들은 누구세요.) 재일동포 분들도 많고 일본 손님들도 많습니다."

도쿄 우에노시장 근처엔 3대째 김치 가업을 잇고 있는 제일물산 황혜란 사장의 가게가 있다.

황 사장의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50년 동안 김치를 만들었다.

"이게 토마토 김치, 아 독특하네요."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샐러드 감각으로 먹는 겁니다. 이건 여름철 한정 판매로, 하루에 한정된 수량만 판매하는데 이걸 사려고 일부러 신칸센을 타고 오는 분도 있습니다."

"마늘 김치, 색깔이 예쁘네요!"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마늘 냄새가 안 나니까 일본의 탤런트들 매니저들이 사러 옵니다. TV에도 이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어요."

50년 전통의 가게는 늘 손님들로 붐빈다.

이 집 김치는 단골들에겐 이젠 포기할 수 없는 생활의 요소가 됐다.

"아이들도 쉽게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카레 맛 마늘 김치를 정말 좋아합니다."

겨울 김장처럼 제일물산 김치는 포기김치다.

하루 생산량은 2천 포기,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한다.

대부분의 공장들이 배추를 잘게 잘라 기계로 버무리지만 선대로부터 이어온 손맛을 버릴 순 없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배추에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전달돼야 합니다. 그래서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계속해 왔습니다."

(기계로 만든 것과 손으로 만든 것이 맛이 그렇게 확연히 차이가 나나요?)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전혀 다릅니다. 완전히 다르지요. 그건 100%, 200% 단언할 수 있습니다."

톡 쏘는 매운맛에 달달한 뒷맛! 제일물산 김치의 특징이다.

(그렇게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비법은 뭐예요?)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비밀입니다만, 양념에 비밀이 있습니다. 그건 절대로 얘기해 드릴 수가 없어요."

제일물산 김치에는 또 방부제가 없다.

제조나 유통과정이 불편하지만 고객의 건강이 먼저다.

[인터뷰:이시다 유키히고, 제일물산 공장장]
"(선대와) 차이가 없도록 생산 면에서도 노력을 하고 창업 이후부터 지속돼 온 맛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집 탓에 제일물산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생협에 납품 길을 뚫었고 25년 동안 거래를 지속해오고 있다.

제일물산이 납품하는 곳은 슈퍼마켓과 음식점 등 2천여 곳.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한가운데 진열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어떻습니까, 저희 김치 평판은?"

[인터뷰:오비 타쿠시, 식품점 이사]
"맛이 확실해서 다른 것과 확연히 달라요. 이른바 본고장의 맛이라고나 할까요. 손님에게 아주 평이 좋습니다."

매년 5개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제일물산은 3개 공장에서 연간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시장경쟁에서 이기려면 연구 개발과 끊임없는 자기변신은 필수다.

제일물산은 최근 나물과 양념류까지 사업영역을 넓혔다.

1960년 외할머니가 시작한 김치 만들기는 어머니로 계승돼 50년을 이어왔다.

어머니 강은순 씨는 여장부였다.

한 칸짜리 김치가게를 매출 수백억 원의 중견 기업으로 일군 것도 어머니였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정말 쉴 틈 없이 일하셨어요. 어렸을 적 기억에는 현관 밖으로 나가시는 뒷모습 밖에는 기억에 없어요."

혜란이 처음부터 어머니의 김치사업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었다.

김치 냄새나는 조센징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 젊은 시절 내내 김치 쪽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이지메죠. 어렸을 때부터 김치가게 딸이라서. 우리 국민학교가 이 가게 바로 뒤에 있거든요. 김치냄새, 마늘 냄새, 조센진, 조선반도로 돌아가라. 그것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김치를 매일 먹지만 창피해하는, 김치가게 딸이라고 창피한 그런 느낌 같은 것이 계속 있었어요, 그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혜란이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5년을 있은 것도 그런 이유였다.

2003년, 그러나 혜란은 귀국하라는 어머니의 부름을 받는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영국으로 돌아가서 평생 연을 끊던지 일본에 남아서 어머니의 일을 돕던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고 말씀하시데요. 그래서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영국으로 돌아갈께요' 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아주 오랜만에 화를 내시는 거예요. 나무 옷걸이를 손에 들고는 '야' 하시며 그때 한 말씀이 '네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미어졌어요. 어머니가 지금까지 50년 이상 혼자서 고생을 하셨는데..."

귀국 두 해만인 2005년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혜란은 결국 어머니의 사업을 이어 받았다.

고비도 많았다.

주요 납품처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요구해 왔다.

그 가격에는 정상적인 김치를 만들 수가 없었다.

결국 혜란은 맛을 지키는 대신 연간 100억 원의 매출을 포기했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우리들이 만든 자신 있는 김치,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김치를 맛있다고 해주시는 손님을 위해 김치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큰 거래처에 갔죠.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정도의 김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1엔도 내릴 수 없어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담글 김치는 제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부터 내려오는 김치를 만들어 볼 텐데 잘 부탁합니다."

(한국에는 김치가 몇 종류나 있을까요?)
"대충! 10종류?"

황혜란 사장이 여는 김치교실.

일본에서 황혜란은 김치전도사로 통한다.

직접 여는 김치교실은 신청자가 많아 여섯 달이나 기다려야 한다.

[인터뷰:시마다 미치코, 김치교실 수강생]
"전에는 매워서 김치를 못 먹었어요. 그런데 제일물산 김치를 먹고는 처음으로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돼서 한번 직접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 왔습니다."

혜란이 김치 알리기에 나선 건 재일동포 주부들조차 김치를 담그지 못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김치를 한 번도 담가보지 않았던 어머니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이런 김치 담그는 음식 문화를 절대로 없애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인의 식탁에 김치를 놓겠다는 황혜란 사장.

그녀가 생각하는 김치는 뭘까?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김치에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손수 만든 것보다 애정이 듬뿍 담긴 요리는 없다는 얘기처럼 그게 김치라고 생각합니다."

한상대회를 맞아 서울에 온 고해정 사장.

성공한 1세대들의 모임이 한상대회라면 YBLN은 신세대 한상들의 네트워크다.

2007년 모임이 시작된 이래 지금은 회원 수가 수백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녹취]
"고해정 신임 회장님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4대 회장으로 2년 동안 활동하게 되는 고해정 사장.

차세대 한상의 육성과 네트워크 활성화라는 책임을 맡았다.

[녹취:고해정, YBLN 신임 회장]
"그런데 이 YBLN에서 모였을 때는 우리가 항상 돈으로 못 사는 거, 돈으로는 절대 사지 못하는 것을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서 사시고 또 그런 시간을 지내시길 바랍니다."

서울의 한 음식점.

고해정 사장이 김을 들고 심각한 모습이다.

"이거는 김이 조금 질긴 듯한 기분이 들어요."

도쿄 신오쿠보 매장의 개점 날짜가 코앞에 다가왔다.

선보일 메뉴를 이제는 확정해야 한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김밥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생산된 김으로 김밥을 말아 볼 참이다.

미묘한 차이, 그걸 잡아내야 한다.

사실 고 사장은 5년 전 일본에서 김밥가게를 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한국음식에 대해 일본인들이 아직 주목하지 않았던 때였다.

[인터뷰:이상현, 스쿨푸드 회장]
"한국음식이 너무 장인정신에 집중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 지를 좀 관심을 못 가졌던 것 같아요. 거기에 미스테이크, 요번에는 음식 하나라도 장인정신까지는 아니지만 주인의 깊은 애정이 들어간다면 요번에는 성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기대와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한국요리가 일본 국내에서도 대중화되고 있는데 그 속에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또 깔끔하게 먹을 수 있게끔 그런 요리로 되었으면 합니다."

국권상실과 궁핍으로 시작된 재일 한인의 역사.

집요한 차별 속에서도 3세, 4세들이 우뚝 일어서고 있다.

[인터뷰:황혜란, 제일물산 사장]
"전 세계에 김치가 훌륭하다, 한국 요리가 훌륭하다, 김치가 정말 맛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인터뷰:고해정, 케이프란 사장]
"장차 나아가서는 유대인, 화교들에 못지않은 한교로서 한상으로서의 네트워크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 맛으로 승부수를 걸고 있는 젊은 신세대.

자이니치, 재일 조선인 한상들이 일본 열도를 넘어 세계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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