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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폐기물처분장 현장을 가다 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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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03-10-04
■ 기획의도

님비 (nimby ; not in my back yar) 현상은 80년대 말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특히 핵 폐기물 처분장을 비롯해 쓰레기 처리장등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집 앞에는 안된다는 일종의 지역 이기주의 현상으로 세계 어느 나라나 이 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물론 그린피스와 같은 환경단체의 주장대로 처음부터 핵 발전을 하지 않았으면 핵 폐기물 처분장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의 상당부분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고 있고 여기서 나온 폐기물을 관리하는 처분장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취재팀은 프랑스와 일본의 핵 폐기물 처분장을 다녀와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파리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세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달리면 프랑스의 두 번째 핵 폐기물 처분장, 로브 처분장이 나온다. 지난 69년 세워진 라망쉬 처분장이 핵 폐기물로 가득 차자 지난 92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푸른 숲과 넓은 들이 펼쳐진 전원도시 로브에는 아직도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처분장 시설을 둘러보고 우리는 우연히 지역 주민들을 몇 명 만날 수 있었는데 대부분 이 시설에 대해 불안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전문 연구기관이 주민들을 위해 주변 지역의 물과 공기 목초등을 샅샅이 뒤져 검사하고 있다며 은근히 자랑까지 늘어놨다. 한 아주머니는 처분장이 들어선 후 마을 인구가 늘고 도로가 생기는등 살기 좋아졌다며 만족해 했다.

그렇다고 이 지역 주민들이 처음부터 찬성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핵 폐기물이 무서워 주민들의 85%가 반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의원이 적극 나서 주민들을 설득했고, 처분장 부지 선정과 건설 운영과정에 모두 참여시켜 믿음을 심어 주었다. 지금도 지역 주민들과 환경단체, 연구소, 시설 책임자등이 참석하는 정보위원회가 자주 열리고 있다.

일본 혼슈 북쪽 아오모리현의 록카쇼 처분장. 이곳엔 핵 재처리 시설과 핵 융합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대규모 원자력 시설단지다. 인구 만 2천명의 1인당 주민소득은 3만 2천달러 일본의 1인당 평균 국민소득보다 많다. 이 마을 촌장은 이 시설이 들어선 이후 소득이 세배로 늘었으며 농업과 어업등 1차 산업 중심에서 과학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지역도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다. 특히 지난 70년대 이 지역 해안가에 원자력 선이 침몰한 후 5년간 물고기를 팔 수 없어 생활고가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해외 시찰을 주선하는 가하면 수 천억원의 지역 지원을 약속하는등 적극적인 홍보로 결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역시 지난 92년 가동을 시작한 록카쇼 처분장은 지금도 직원들이 1년에 두 번 지역에 있는 가정을 방문해 주민들에게 처분장 소식을 전해주고 있고 마을 곳곳에 방사선 전광판을 세워 주민들이 바로 바로 안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놨다. 특히 록카쇼에 있는 전 가정에 tv 단말기를 설치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비상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프랑스와 일본은 모두 처분장 주변지역에 방사성 물질이 흘러나오지 않았는지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검사 결과는 반드시 정기 간행물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전해지며 인터넷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실제로 프랑스는 지난 70년대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미량이지만 누출됐다며 솔직히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바 있지만 지금도 공개는 잘했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86년부터 원전 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추진했으나 아직까지 건설 부지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님비 현상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여기에는 프랑스나 일본 정부와 다른 우리정부의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지난 90년 우리정부는 안면도에 주민 몰래 폐기물장을 지으려다 실패했고 지난 94년에는 굴업도가 선정되기는 했으나 부실 조사로 판정 받고 건립이 취소됐다.

이번 특집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시간과 경비 부족으로 좀 더 깊은 취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 러시아등 다른 선진국의 현황과 사례, 특히 실패 사례를 담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함께 고생했던 영상취재부의 정희인 선배와 황광모 후배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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