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인터뷰]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연기인생 60년, 배우 이순재

[리더스인터뷰]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연기인생 60년, 배우 이순재

2016.12.30. 오후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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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인터뷰]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연기인생 60년, 배우 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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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학교 안 극장, 낮지만 또렷한 특유의 음성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배우 이순재 선생을 만났다.

이순재 선생은 '노익장'이라는 말을 몸소 증명하는, 우리나라 현역 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원로 배우다.

올해 배우 인생 60년째인 이순재 선생은 1956년 서울대 철학과 3학년 때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극단 실험극장의 창단 멤버로 소극장 운동에 참여했고, 1964년 TBC가 개국하면서 브라운관에도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허준’, ‘이산’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숱한 작품을 거치며 국민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가 배우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대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이순재 선생은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외화가 한참 들어오던 시절에 영국 거장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흑백 영화 ‘햄릿’을 봤는데, 저 정도 경지면 연기도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순재 선생은 또 “아직도 우리 연기나 작품들을 보면 그 당시 느꼈던 예술의 경지에 한참 모자라다는 생각이 든다”며 “여든 살이 넘은 지금도 연기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리더스인터뷰]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연기인생 60년, 배우 이순재

“요즘 젊은 배우들을 보면 어떤 캐릭터로 떴다고 같은 연기만 계속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건 배우로서는 끝난 거라고 본다. 60년 동안 연기생활을 이어왔지만 연기에 있어서 늘 새로운 부분이 있고, 고민하는 부분이 많다”

대중과의 끊임없는 소통 역시 중요하다.

이순재 선생은 “최근 신분당선 운영사인 네오트랜스의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며 “새해에는 연극이나 전시회 등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순재 선생과의 일문일답이다.

[리더스인터뷰] "‘영원한 현역’을 꿈꾼다" 연기인생 60년, 배우 이순재

Q. 올해로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았는데, 오랜 연기 활동의 비결이 있다면?

비결이랄 게 뭐 있나. 처음 시작한 때만 해도 수익성이 있는 직종도 아니었고, 사회적으로도 인식이 안 좋았다. 소위 ‘딴따라’라고 해서 광대로 비하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당시 순수 예술을 한다는 쪽에서도 우릴 인정해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나름대로는 연극의 예술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힘든 부분을 감수하고 시작했다. 연기 예술에 공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의지를 다진 데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어떤 평가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력해왔다. 그때도 지금도 그 예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오랜 세월 연기 생활을 이어온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Q. 60주년을 기념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무대에도 올랐다.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창작극이었어도 좋겠지만 늙은이가 주역을 할 수 있는 작품이 몇 개 없다. ‘세일즈맨의 죽음’ 같은 경우는 예전에도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 작품이다. 내용 자체가 우리 한국인의 정서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사실 예전엔 작품이 다루는 문제들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었고, 그래서였는지 내 연기가 부족했다고 스스로 평가를 내렸던 아쉬움이 남았던 작품이다.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선택한 것도 있다.


Q. 기억에 남는 작품과 배역은?

여러 작품이 있지만 시청률이 65% 정도 나왔던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를 꼽겠다. 가족애가 중심이 됐던 작품이고 여러 모로 좋은 작품이었다. 내가 맡았던 대발이 아버지는 엄격하지만 가족애가 깊은 우리 전통적인 아버지 상을 담은 인물이었는데, 이외에도 드라마에 나온 인물들이 모두 각자 개성을 갖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줬다. 이밖에 TBC 시절에 했던 ‘내 멋에 산다’, ‘님은 먼 곳에’, ‘서울이여 안녕’ 등과 KBS ‘풍운’이란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풍운’이란 작품은 나로선 시청률과 상관없이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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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익숙하다. 이전에 맡은 배역들과 캐릭터 차이가 큰데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연극을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하이킥’에서 맡은 것과 비슷한 배역을 많이 맡았었다. 많은 분들이 TV나 영화를 통해서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나 ‘이산’의 영조와 같은 인물들이 익숙하겠지만, 나로서는 새로울 게 없었다. 다만 보는 시청자분들은 새롭게 느꼈을 것 같다. 시트콤으로썬 상당히 잘 쓴 작품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댜.


Q. 작품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작품의 완성도를 제일 많이 본다. 연극을 하는 목적이 흥행이 될 수도 있고, 예술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작품성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흥행을 목적으로 한 작품의 경우, 두 번은 하기 싫었다. 관객들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너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연기로 보나 작품 내용으로 보나 뻔한 것이 많아 연기할 때 재미도 덜했다. 연기를 통해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한다.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바로 그런 부분들을 추구하고 강조했기 때문에 ‘명작’이라 회자되는 것이다.


Q. 요즘 대학로에서 대중성이 강한 작품을 주로 다루는 듯 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연기가 좋아서 시작한 이상, 그걸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수익을 통해 재정적인 부분들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좋은 연극’을 하고 싶은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연극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그 자체를 나무랄 건 아니라고 본다. 대중성 있는 작품들을 통해 수익이 생기고 여력이 생긴 후 좋은 작품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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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암기력이 굉장히 좋다고 들었다. 비결은?

비결이랄 게 없다.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물론 어느 정도 타고난 것도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도 강조했던 부분이지만 현장에서 실수를 5번 이상 하면 자격이 없는 것이니 스스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배우들의 롤 모델 1순위로 꼽힌다. ‘나의 롤 모델’을 꼽는다면?

연극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뵀던 선배들이 많다. ‘밤으로의 긴 여로’라는 작품을 같이 했던 이해랑 선생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연극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분의 확고한 가치관, 연극 정신에 대해 늘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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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연극에 종사하려면 아직도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영화, 연극, TV에 대해서 각각 TV는 상업적이라고 비하하고, 영화는 예술영화, 상업영화로 나누어 따로 등급을 매기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세 가지 모두를 아울러야 하는 시대다.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연극, 드라마에서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는 가서 배우면 된다. 배우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문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다. 돈을 벌기 위해 연기하겠다면 장사꾼이 되는 거고, 예술을 목적으로 하면 예술가가 되는 거다. 그런데 요즘에는 연기를 잘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연극을 하자고 하면 수익성이 없다면서 회사가 막고, 매니저가 막는다. 그건 그 배우들을 상품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다. 그 친구들 나름대로는 연기에 대한 꿈이 있을 텐데, 그런 행동들은 그 친구들이 새로운 연기에 눈을 뜰 기회를 박탈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치워버리는 거다. 평생을 해도 어렵게만 느껴지는 게 연기다. 영화, 드라마, 연극 가리지 않고 해야 ‘내가 이때까지 해왔던 연기가 껍데기구나’ 하는 자각을 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수익도 얻고 연기적인 측면에서 보완을 하면서 양쪽을 겸비할 수 있는 시대다. 틀에 갇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연구하고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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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PLUS] 취재 강승민 기자, 사진 정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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