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2017.07.11. 오후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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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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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권력은 비정하다. 아들과도 나누지 못한다는데 하물며 어린 조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단종은 어린 나이에 삼촌에게 왕위를 뺏겼을 뿐만 아니라 귀양살이를 거쳐 목숨까지 잃었다.

여기에 노비로 전락해 결국 비구니로 일생을 마친 누이 경혜공주와 사육신의 참혹한 죽음에 이르면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위인전으로 역사를 배우던 어린 시절부터 ‘단종과 사육신은 옳고, 세조는 그르다’는 정의에 기초한 가치판단은 여전하지만, 살아온 나날만큼 복잡한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단종에 대한 동정심은 여전하지만, 세조에 대한 적개심은 흐려져 간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정치라는 게 진창에서 피워 올리는 연꽃이라는 말도 있듯, 수양대군이 당시 짧은 창업의 시간을 보낸 조선이라는 왕조에서 듣고, 보고, 배운 게 무엇이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할아버지 태종에게서 야망의 정당성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건 일개 회사가 아닌 국가를 경영하는 일, 수백만의 백성을 위한 것이라는 자기 암시는 어쩌면 역사의 부름이라는 확신이 될지도 모른다.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청령포에 이르면 배를 타야 한다. 문자 그대로 개울을 건네주는 수준으로 보이지만, 단종이 이곳에 유배된 것은 사방팔방이 모두 산과 강으로 막힌 곳이라는 상징성이 컸다.

저 배를 나룻배로 바꾼다면 산과 강을 바라보며 몇 백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라진다. 두 눈을 감으면 하얀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착잡한 표정의 단종이 개울가에 서서 서성거릴 것만 같다.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청령포의 주인은 뭐니뭐니 해도 소나무다. 단종이 앉아서 쉬었다는 수령 600년의 천연기념물 관음송을 비롯하여 쫙쫙 뻗은 소나무들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마치 주군을 잃은 신하들이 혼백이 되어 도열해 있는 듯한 착각에 삼엄함마저 느껴진다.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담벼락 너머로 기울어진 소나무는 기울어진 대로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소나무 잎으로 공중누각을 만들어 놓은 듯 하다.

그 죄 많은 연산군도 강화도로 유배된 후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건만, 살아있는 것조차 정권에 부담이 된 단종은 이곳 영월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폐위된 후 강화도를 거쳐 제주도에서 여생을 보낸 광해군처럼 유배 생활이 이어졌다면 오히려 그게 못 견딜 삶이었을까.

정녕 왕이 될 사람은 왕이 되던가 아니면 죽는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도입부의 시조는 단종의 유배길을 함께 하고, 훗날 사약을 집행한 의금부도사 왕방연의 시조다.

당시 영월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했을지 가늠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슬픔 속에 개울가에 앉은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주인공이 왕위를 떠나 배를 타고 떠나는 영화 ‘광해’의 마지막 장면이 절로 떠올려진다.

영월 청령포, 단종이 걸어간 마지막 발자국

8년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문재인 대통령이 그로부터 3년 후 이 영화를 보면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린 것으로도 유명한데, 어쩌면 이 마지막 장면은 왕방연의 시조에서 따온 것일지도 모른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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