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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Posted : 2017-06-14 13:50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주말의 늦은 밤, 강원도 국도에서 가벼운 사고가 발생했다.

범퍼의 일부가 날아간 차가 멈춰서고, 견인차를 기다리는 그 순간에 문득 오래전에 읽은 기형도 시인의 산문집인 ‘짧은 여행의 기록’ 이 떠올랐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책의 제목 때문일수도 있지만, 어두운 밤과 뜻하지 않은 사고 등이 불현듯 그의 이름을 기억의 저편에서 끄집어낸 것이리라.

삶이라는 게 그렇듯 여행 또한 예측불가능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렇다.

뻥뻥 뚫린 그 늦은 밤 국도에서 시속 100킬로를 훌쩍 넘어 달리던 숱한 차량들을 뒤로 하고, 그 사고는 정확히 예견된 운명처럼 60킬로로 서행하던 우리 차로 돌진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작은 사건은 1박2일의 모든 여행 계획을 바꿔놓았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동행하던 두 명의 후배를 포함한 우리의 목적지는 충주호였다.

서울을 떠나면서 즉흥적으로 생각한 여행 장소지만, 동승자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힐링이 필요했고 충주호는 그 갈망에 화답하는 최적의 여행지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유람선의 표를 예매해 두었다. 안하던 짓이다.

예약한 가격이 1만1000원.

예약하지 않고 현장에서 결제하면 13000원이다.

세명의 할인액수인 6000원을 아낄려고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한 것이다.

구구절절 밝히지 않겠지만 그날 안하던 짓을 한 게 이뿐만이 아니다.

역시나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살아야 하나, 쓴 웃음이 나온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견인차가 맛이 간 차를 부려놓고 간 곳은 제천의 모 수리 센터.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제천은 처음 와보는 곳이 분명하다.

차 한 대 없는 새벽 도로에서 운 좋게 택시를 얻어 타고 역전으로 갔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제천 역전에서 그 새벽에 고추장 칼국수를 먹고, 아침 기차를 예매하고, 발품을 팔아 몇시간 눈을 붙이기 위해 싼 여관을 찾아들었다. 이 모두가 사고가 없었다면 전혀 일어나지도 않았을 상황이다.

이튿날 제천에서 30여분 기차를 타고 충주로 향한다.

충주역에 내리면 예약한 유람선 시간까지 두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빙빙 돌아오고 자질구레한 일들이 있었지만 배를 타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치 시간내에 도착해 유람선을 타는게 인생의 중요한 미션인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이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하지만 충주역에 내려 물어보니 예약한 선착장이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렇다. 표를 예약한 선착장은 충주가 아닌 단양의 장회나루였다.

황당해서 인근의 터미널로 이동했지만, 시외버스를 타고도 예약한 시간에 도착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래서 결국 유람선을 타지 못했다. 사고도 멈추지 못한 충주호 유람선을 향해 가는 길이었지만, 너무도 머나먼 선착장이다.

환불도 되지 않는다. 애꿎은 유람선 탑승권만 날리고 터미널 근처를 헤매다가 콩나물국밥으로 배를 채운다.

꿩 대신 닭이라고 택시를 타고 탄금대를 한번 둘러보니 놓쳐버린 유람선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잘 알려졌다시피 탄금대라는 이름은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을 탔다는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이곳에 오르니, 떠오르는 건 임진왜란 당시 배수의 진으로 전사한 신립 장군 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 그의 동상은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충주, 짧은 여행의 기록... ‘머나먼 선착장’

밤새 일어난 난데없는 활극으로 서울행 버스에 오르자마자 쓰러져 잠이 든다.

휴일 늦은 오후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무심한 분주함으로 우리를 반긴다.

마치 낮잠속의 꿈같은 이틀이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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