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서원, 목민심서의 자취가 느껴지는 유배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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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6. 오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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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서원, 목민심서의 자취가 느껴지는 유배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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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후대에 높은 학문을 기반으로 한 선비이자 학자, 사상가로 추앙받지만 그의 생애는 순탄치 않았다. 다산을 신임하던 정조가 사망하고 순조가 즉위하자 정약용과 형제들은 곧바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다. 바로 천주교도들을 탄압하던 신유박해(1801)을 통해서다.

다산은 신유박해로 순교를 당한 셋째형인 정약종을 잃고 둘째형인 정약전과 유배를 간다. 그리고 유배지인 전라남도 강진에서 흑산도로 유배를 가던 형 약전과 헤어진다.

다산서원, 목민심서의 자취가 느껴지는 유배지 풍경

다산은 강진 유배 초기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외가인 해남 윤씨 일가의 도움으로 강진에 초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다. 이후 안정적인 유배지 생활을 보내며 시대의 명저인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을 저술한다.

다산초당은 강진읍에서 18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일대에는 박물관과 다산을 콘셉트로 한 펜션 등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만덕산 자락 중턱에 위치한 다산초당은 산길을 약 1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다산서원, 목민심서의 자취가 느껴지는 유배지 풍경

다산초당을 향하는 길은 조용한 유배지의 백미를 이루는 곳이다. 길게 뻗은 전나무, 동백나무가 함께하는 운치가 남다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선비의 고즈넉한 유배지의 정취를 확실하게 전하는 느낌이다.

다산초당은 서당과 정약용의 거처, 제자들의 숙소 등 세 채로 구성됐다. 울창한 나무숲에 둘러싸여 학문을 닦고 글을 쓰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싶을 정도다. 이곳의 풍광을 보면 실학사상의 정수라 불리는 목민심서를 어떻게 저술할 수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다산서원, 목민심서의 자취가 느껴지는 유배지 풍경

다산초당은 지난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해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다. 하지만 당시 원형 그대로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으로 복건한 것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조만간 다시 초가집으로 재구성 할 것으로 전해진다. 또 서당 옆에 자리한 조그만 호수는 다산이 생전에 잉어를 키우기도 했는데 유배지를 떠나도 편지로 잉어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아꼈다고 한다.

다산서원, 목민심서의 자취가 느껴지는 유배지 풍경

다산초당 바로 옆에는 멀리 강진만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다산 생전에는 없는 것이지만 현재에는 정자가 놓여 있어 경치를 관람하도록 했다. 다산은 이곳에서 흑산도로 유배를 강 형 약전을 그리워했다. 원래 지형은 바다가 산 바로 앞까지 닿았지만 현재는 간척 사업으로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다.

다산초당은 고즈넉한 선비의 옛 자취를 따라가는 콘셉트로는 그만인 곳이다. 역사와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조선 후기를 풍미했던 사상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코스로는 아주 이상적이다.

트레블라이프=김윤겸 gemi@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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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IP: 같은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산초당과는 반대편에 자리한 백련사가 있다. 정약용은 생전에 이곳으로 자주 놀러가 주지스님과 차를 즐기곤 했다.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이 갔던 그 길 그대로 따라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이동해 꼭 들러보면 좋다.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울창한 동백나무숲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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