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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Posted : 2016-01-25 16:27
경북 경주시 석장동에 위치한 금장대는 형산강변에 위치한 곳으로 경주의 오랜 역사를 품은 곳이다. 봉황대와 함께 경주의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 있던 절 혹은 건물의 이름인 ‘금장’을 따서 금장대(金藏臺)라고 불리고 있다.

이곳은 경치가 매우 빼어나 경주의 하늘을 지나가는 기러기들이 쉬었다 간다고 하여 경주의 여덟 가지 기이한 현상(三奇八怪) 가운데 하나인 금장낙안(金藏落雁)이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신라시대 자비왕 때 을화라는 기생이 왕과 연희를 즐기는 도중 실수로 빠져 죽었다는 설을 비롯해 몇 가지 설화가 전해 오는 곳이다.

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그리고 금장대의 아래에 만들어진 예기청소(藝妓淸沼)는 형산강의 본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들어낸 것이다. 김동리의 단편소설인 ‘무녀도’의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금장대는 빼어난 경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유적이 같이 공존하는 곳이다. 금장대가 위치하는 구릉 전체는 고분군이며, 그중 도굴흔적이 잘 남아 있는 무덤이 남북 두 개의 봉우리 정상부에 각기 1개씩 있다.

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이곳에는 선사시대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이자 예술작품인 암각화를 비롯하여, 부처님에 대한 동경으로 공덕을 쌓고자 했던 금장사지, 그리고 화랑의 수련터, 조선시대 건물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유적이 작은 한 공간에 모여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사시대 때 주거지, 사리공양석상과 거북문석상, 임신서기석, 고인돌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금장대는 시대적인 패러다임에 따라 그 공간적인 의미가 달리 해석돼왔다. 특히 조선시대에 이르면 시인묵객들이 ‘금장낙안’의 풍광 속에서 신라의 흥망을 생각하며 자연의 영원함과 인간 삶의 부질없음을 인식하면서 과거를 통해 오늘을 경계하던 공간이었다.

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또한 임진왜란 때에는 경주읍성을 수복하기 위한 정찰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왜군들이 부산을 통해 동해로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던 곳이었다.

경주의 넓은 평지에 가장 큰 물길과 물가에 자리한 구릉이 조합하여 만들어내는 범상치 않은 기운을 지니고 있는 금장대는 이런 다양한 문화적인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특히 암각화를 보면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깎이고 씻긴 옛사람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에 옛사람들은 왜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일까.
바위나 돌에는 인간의 삶과는 다른 영원 불멸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원불멸하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석장동에도 그림을 새긴 바위가 있다.

경주 금장대와 암각화가 전하는 옛사람의 자취

짐승 발자국, 여성의 생식기나 사람 8명을 태운 배 1척같이 실물을 옮겨다놓은 것 같은 그림도 있고, 방패무늬나 고깔무늬 같이 추상적인 그림도 있다.

금장대에서는 암각화가 전하는 경주의 오랜 역사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경주 곳곳의 신라 유적지와는 다른 분위기와 느낌을 갖고 싶다면 이곳 암각화와 시야 가득히 들어오는 경주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트레블라이프=김용수 dishinne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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