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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Posted : 2015-12-17 13:08
서귀포 남쪽 바다에 뱀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몸 색깔은 새빨간데, 머리에 큰 귀가 달려 있었단다.
이 뱀에겐 간절한 소원이 있었으니, 바로 용이 되는 것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용이 되게 해 주세요”
이 뱀은 음력으로 매 달 초사흘 날(3일)과 초여드레 날(8일)이 되면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3년 동안 기도한 정성에 용왕님이 감동했다.
“오, 그래. 네가 그 용이 되고 싶다는 뱀이라고?
그래. 용 되고 싶다면 돼야지.
그런데 그거 알지? 용이 되려면 야광 구슬이 필요하다는 거.
섶섬과 지귀섬 사이에 있으니, 잘 찾아 봐“

뱀은 기쁜 마음으로 구슬을 찾기 시작했다.
“구슬만 찾으면 나도 용이 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구슬을 찾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는 거.
바다가 깊은데다 해초가 워낙 많이 우거진 것도 문제고,
구슬만큼이나 반짝거리는 산호가 많아 더욱 어려웠단다.

결국 100년이 지나도록 구슬을 찾지 못한 채 지쳐버린 뱀은
한을 품은 채 쓰러져 죽고 만다.

그 때 부터였을까...
비가 오기만 하면 섶섬 봉우리에는 늘 짙은 안개가 끼곤 했다.
마을 주민들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야하는데,
안개가 짙으니 나갈 수가 있나.

주민들은 용이 되지 못한 뱀의 혼을 달래기 위해
섬 안에 당을 만들어 매달 음력 초사흘과 초여드레에 제를 지낸다고 한다.
용이 되기를 간절히 꿈꿨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뱀을 기리며
뱀이 기도했던 그 날짜에 항상 제를 지낸다는 것이다.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섶섬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 섬이 품은 슬픈 전설 때문일까.
의외로 많은 예술가들이 섶섬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남겼다.
이 중 빼놓을 수 없는 이가 황소 그림으로 유명한 이중섭이다.

원산에서 살던 이중섭의 가족은 6.25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한 후,
다시 제주도로 향했다.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고작 11개월을 살았으니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가 섶섬 근처에 살았던 그 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때였으리라.
그 기간동안 그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전략)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후략)

-나희덕, '섶섬이 보이는 방' 중에서-

*아고리, 발가락군 :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환경에 살면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의 소망은
생활고로 이듬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면서 깨지고 말았다.
전쟁의 총성이 멎은 1955년, 친구들의 도움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열지만
그림 값을 떼이는 등 불운은 계속 그를 덮쳤다.

결국 이듬해인 1956년, 그는 병상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이중섭.
죽어서도 섶섬에 안개를 피울 수 있는 재주를 지닌 전설 속 뱀과 어쩐지 닮았다.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평범하게 산다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어느 새 이런 푸념이 주위에서 들린다.
월급만으로 의식주와 생활이 가능한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졌는데,
그토록 어렵게 취직돼도 당장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게 요즘 2~30대 청년의 현주소다.
최근엔 어느 대기업에서 신입사원과 대리급 직원도 명예퇴직을 시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청년들의 푸념이 결코 엄살만은 아닌 듯하다.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청년들의 재능과 열정, 노력 부족을 탓할 일도 아니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이중섭은 은박지에 못으로 그린 작품이 그렇게 많단다.
용이 되고 싶었던 뱀은 무려 100년이나 섶섬 앞바다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요즘 청년들의 자조적인 신조어
‘노오력’이 되고 만 것일까.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그런데 섶섬 앞 카페 '섶섬지기'에 소개된 섶섬의 전설은
지금까지 소개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뱀은 비록 용이 되진 못했지만. 섶섬을 지키는 ‘섶섬지기’로 다시 태어났고
섶섬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 언제까지나 섶섬과 함께한다는 ‘해피 엔딩’이다.
'섶섬지기'가 특정 개인이나 회사가 아닌 마을사람들이 만든 카페란 점을 상기하면
그 뱀은 용은 못됐을지언정, 주민의 ‘인정’을 얻는 덴 성공한 듯하다.
이중섭 역시 살았을 땐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했지만,
사후 재조명되면서 미술 문외한도 이름을 아는 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머리를 식히러 제주도에 왔다면, 한 번 쯤은 섶섬 앞바다에 가 보자.
그리고 섶섬이 전하는 위로를 한 마디 들어보자.
“괜찮아. 언젠간 너도 빛나는 날이 올 거야”

트레블라이프=유상석 everywhere@travellife.co.kr

서귀포 섶섬의 위로 "실패해도 괜찮아. 언젠가 빛날테니"

TRAVEL TIP: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서귀포 시내버스 2번을 타고 ‘장안그랜드빌라’에 내려 문필로를 따라 1km 남짓 걸으면 된다. 그러나 배차간격이 워낙 불규칙하므로 렌트카 등 자가운전 차량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섶섬지기 카페 인근에서는 낚시를 하거나 조개류를 채취하는 행위가 금지돼 있다. 그리고 방파제가 미끄럽기 때문에 안전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주의사항이 없다. 차 한 잔 마시며 섶섬 앞바다의 경치를 즐겨보자.

섶섬은 무인도이기 때문에, 섶섬 안으로 가는 정기 배편은 없다. 그럼에도 낚싯배 등을 이용해 출입하는 낚시인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섶섬은 자연보호를 위해 2012년부터 10년 간 출입통제구역으로 묶여 있다. 2022년까지는 출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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