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2015.12.09. 오전 09:56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AD
용감한 한 가족의 겨울 캠핑 도전기, 다섯 번째

◆ 에피소드 #08- 아! 헤드랜턴, 오호 털장화!

금요일 밤 9시 반 경. 우리가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한 장박지에 도착한 시각이다. 캠핑장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며칠이 더 지나서였다. 조바심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하룻밤도 더 지체하지 않고 차를 달렸다. 아이들이 간간히 하던 기침소리가 잦아든 것은 천우신조였다.

기대했던 대로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 '눈'이었다. 하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문제는 '쌓인 눈'이었다. 제설장비를 하나도 갖추지 않은 채 길을 만드는 건 무척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늘 잘 챙겨오던 헤드랜턴도 보이지 않았다.

한 손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 남편은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빨강 대야' - 봄에 청과시장에서 사 온 딸기가 담겨있었던, 특유의 넙적한 스펙과 색상 덕분에 주방에서 캠핑장으로 축출된 전담반 중 하나 - 로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주방 용품'이었던 도구는 결국 제설 중에 수명을 다했다. 운동화가 젖은 건 당연한 일이었고.

미리 가져다놓은 방한슬리퍼가 아니었다면 겨울밤 추위에 무척 난감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기분 내자며 '털장화'를 신겨온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추위에 아랑곳없이 치워놓은 눈을 모아다가 눈 놀이에 열심이다. '눈이 발에 하나도 안들어와서 좋아요' 이러며.

다음날 아침나절, 한 가족이 '넉가래'로 눈을 손쉽게 치우고 있는 것을 보곤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캠핑 전용' 제설장비가 있다며 솔깃해한다. 나는 옆에서 일상생활에서의 효용가치를 따져보고 있고.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따로 없다.

◆ 에피소드 #09- 거센 바람이 불었고, 더치오븐에는 녹이 슬었다.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도착 당일 밤 10시 경, 타프 아래서 급하게 감자국을 끓여내며 잠시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왜 이 추운 계절, 굳이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과연 캠핑의 목적이라는 것이 있었던가.

결론은 그랬다. 모든 행위에 반드시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도시인으로서 지금까지는 너무도 충실하게 목표지향적인 삶을 살아 왔으므로.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둘째 날 오후부터는 거의 불가했다. 산골답게 모진 바람이 불어 타프는 얼른 걷어내야 했고, 본의 아니게 '실내 주방 체제'를 임시로 갖춰야 했기 때문이다. 단칸방에 '시스템'이라고 해 보아야 고작 좌탁과 소형 버너가 전부이기는 했지만. 밖에 걸려있는 '검정 무쇠솥'을 보니, 자꾸 가마솥이 떠올랐다. 언제 직접 가마솥 밥을 지어본 적도 없으면서.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하기위해, 소원했던 부부간의 대화를 나눌 목적으로 캠핑을 한다는 사람은 드물다. 특별한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그저 좋아서' 한다는 것이 대부분이기 마련이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이 한 겨울에 집을 놔두고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부부의 경우 보다 소소한 일들에 서로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일들이 전에 비해 많아졌다. 그 모습이 좀 흥미롭고 때로는 반갑기도 하고. 어쨌건 집에서는 창과 벽에 대해, 주방에서 사용하는 냄비에 대해 온 가족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매우 드물지 않은가.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눈밭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신선한 공기 덕분일까, 전날 집에서 나설 때만 해도 간간히 하던 기침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소형일지언정 나름대로 무동력 서큘레이터도 갖춘 난방 장비와 핫팩이 지난밤에도 제대로 기능을 하긴 한 모양이다. 물론 남편이 늘 '영하 20도에도 끄떡없다'며 자부하는 '구스침낭'도. 기특하다고, 속으로 칭찬했다.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하지만 이 날 정작 한계상황은 점심때가 채 못된 시각에 발생했다. 둘러앉아 차를 한 잔 하고, 화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할 무렵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고, 결국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고구마와 옥수수를 더치오븐에 넣어두고 텐트 안으로 들어와 앉아 대책을 의논했다.

골바람이 점점 더 거칠어지는 것을 보며 어른들의 고민은 커졌지만, 아이들은 점점 더 재미를 붙여갔다. 이른바 '요새' 간의 공격이 두어 차례 이뤄지고, 장갑이 모조리 젖을 무렵에야 아이들은 고구마와 옥수수 향이 진동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제서야 겨우 텐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궁여지책으로 집에 하루 일찍 돌아가는 것을 '제안'해봤지만, 가당치 않다는 반응이다. 할 수 없다. 하루 더 있어야지.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문제는 우리가 '바람'을 그렇게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었다. 솔직히 지금의 구조로는 이러한 날씨를 버텨낸다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 그야말로 지금부터가 '진정한 도전'이 될 모양이다. 결국 이번 여정은 우리에게 '산골바람과 큰 눈을 지금의 장비로 버티려면'이라는 큰 과제를 남겼다. 하지만 이건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상당량의 장비들이 벌써 중고 시장에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결국, 새로운 캠핑 살림의 등장은 불가피한 것인가.

전기 없이 생활하기 [김지혜의 가족캠핑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