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 줄게 새집 다오 [김지혜의 가족캠핑④]

헌집 줄게 새집 다오 [김지혜의 가족캠핑④]

2015.12.02. 오전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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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집 줄게 새집 다오 [김지혜의 가족캠핑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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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06- 네 번째 새집, 수면 밑으로 계속되고 있는 꿍꿍이들

어느 정도 추운 날씨에도 바깥에서 지낼 자신이 붙은 덕분일까 지난 몇 주 사이 우리 가족에게는 새로운 이슈가 하나 생겼다. 주제는 "차 없이 캠핑을 갈 수는 없을까"이다. 답은 당연히 "갈 수 있다"이다. 물론 '네 번째 새 집'을 비롯한 몇 가지 장비의 구비가 불가피하다는 조건이 따르기는 하지만.

벌써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야영지를 물색해 두기까지 했다는 남편의 말에 큰 아이는 적극 환영하는 태세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는, 처음과 같이 다시 긴장하게 된다. 다행히도 작은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캠핑에 동의하는 것을 주저하는 기색이다. 안도하는 한 숨을 보이지 않게 내쉬며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여기는 민주사회가 아닌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자면 아직 절반의 실현 가능성만 가진 일일 뿐이다. 그리고, 아직 봄은 좀 더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첫 번째 새 집은 3년 전부터 살고 있는 이 집이다. 결혼 후 살기 좋은 주거환경으로 손꼽히는 지역 중 몇 곳의 아파트를 전전하다 마침내 마음이 '더' 푸근해지는 동네를 발견했고, 눈에 쏙 들어오는 집을 보고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이곳을 살 것'이 아니라 '이곳에 살 것'을 결정했다.

집을 보러 간 첫 날, 나는 집이 정남향에 가까운 것이 좋았고, 거실 창을 바로 열면 어린이 놀이터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에 아이들은 환호했다. 작은 방 하나에 들어가선 여기가 저희들 방이라며 두 형제가 드러누워 뒹굴뒹굴 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날 의견대로 집은 구도를 잡았고, 아이들은 '텐트'를 구경하고 고르러 다니던 올해 초에도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마치 무슨 암시라도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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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계곡에 개구리와 도롱뇽이 사는 환경 덕분이었을까, 올 봄 시작한 캠핑생활에 우리 가족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물론 여기서 '적응'이 가장 필요했던 건 나 자신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많은 변화가 있었으니.

10년 동안 세 곳의 '헌집' 생활을 마무리하고, 3년 여 동안의 기간 동안 무려 세 곳의 '새집'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중 '건축물'인 집은 꼭 한 채다. 나머지 둘은 다름 아닌 '텐트'인데, 불가하다고 생각했던 '영하의 기온에 바깥에서 잠자기'에 성공한 것이 벌써 몇 주 된다. 남편은 이제 내년 봄이 오면 몇 가지 장비를 처분하고 살림살이를 정비해 또 다른 형태, 이른바 '백패킹'으로 더 넓고 깊은 자연으로 떠나자며 부추긴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삶은 참으로 역동적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리 같다.

'백패킹'이란 이른바 '등짐 지고 야영하기'로서 진정한 고수들만이 즐긴다는 바로 그것이다. 차 없이, 그것도 오지로 떠나는 그 여행은 지금까지의 여정과는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장비란 장비는 죄다 소형에다가 경량이어야 가능한 그 일에 도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어렵지 않게 '텐트와 몇 가지 장비 정도만' 교체하면 되는 현재 우리의 살림살이 구성 덕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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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남편이 친구의 초청을 받고 처음 준비한 물품은 텐트와 침낭이었다. 보통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음식은 나눠 먹을 수 있을지언정 잠을 자는 공간을 나누기는 곤란하니. 별 관심도 없는데다 '노숙'이라며 질색하는 아내 덕분에 그는 매우 조용하게, 하지만 치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나 오랜 고심 끝에 당시 선택한 텐트는 반고의 파랑색 제품. 우리의 두 번째 '새 집'이 된 이 제품은 소형의 폴리텐트지만 나름대로 이너텐트가 따로 갖추어져 있어 잠자는 공간을 분리해두고도 4인 가족이 보드게임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나온다는 주석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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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삼부자가 열심히 텐트를 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코발트블루에 가까운 시원한 푸른색이 그 나름대로 개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친구는 파랑색 텐트는 처음 본다면서 신기해했다. 이런 텐트를 고르는 사람도 있냐면서. 이야기를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카키와 브라운 같은 '내추럴 컬러'가 대세기는 한 모양이다.

비단 색상 때문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이후 면 텐트를 하나 더 장만했다. 이른바 '리빙쉘'이 있는 중대형 텐트의 필요성에 공감한 후 두서너 가지의 브랜드를 검토했고, 바닥 분리형보다는 일체형이 낫겠다는 협의를 통해 후보군을 좁혀갔다. 사실 소재에 대한 고민이 상당기간 계속되었는데, 문제는 비용과 규모, 그리고 중량의 상관관계 때문이었다.

면 텐트는 폴리 텐트에 비해 확실히 통풍이 원활하고, 결로가 덜하다. 가장 쾌적한 소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습기 없이 잘 말려 두어야 곰팡이가 나거나 좀을 먹지 않아 보관이 까다롭고, 무엇보다 무게가 상당하다.

우리가 '세 번째 새 집'으로 고른 면 텐트는 시중에 나와 있는 모델 중 비교적 작은 크기인데도 30㎏에 육박한다. 이는 애초에 우리가 세웠던 '기준'을 벗어나는 유일한 아이템이다. 좀 더 나은 소재 개발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웃도어 용품 분야에 있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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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07- 가볍게, 그리고 전기 없이 생활하기 준비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듣는 가장 흔한 소리 중 하나는 '한 번 살 때 제대로 사야 또 돈을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이야기에 지금도 어느 정도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캠핑'이라는 행위의 본질이 좋은 장비로 폼 나게 꾸린 살림살이 과시에 있는 것이 아닌데다가, 결국 모든 제품에는 '수명'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품목별로 적어도 몇 십 가지, 많으면 백가지도 넘는 물건 중 가장 이상적인 것을 한 번에 찾아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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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씩 갖추고 보완해나가게 된 캠핑용품 하나하나에는 상당한 공이 들어갔다. 그 중 몇몇은 일상생활에서도 틈틈이 사용하고 있어 나름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엌살림 중 일부가 '캠핑 전담반'으로 편성된 것도 있고.

초보자의 경우 과연 '제대로' 갖추려면 얼마만큼의 비용이 드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캠핑용품점에 세팅되어있는 근사한 세트를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은 최소 300~400만 원 정도다. 물론 이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구비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제품의 수명과 눈높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를 감수할 여유도 필요하고.

마치 차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면 된다. 어찌되었건 차를 갖는다는 것은, 대중교통 이외의 이동수단을 갖춘다는 측면에서 도보만을 고수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지 않은가.

소소한 품목 몇 가지를 고르는 데 실수하는 것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아쉬운 대로 어느 정도만 사용해도 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향은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이건 이른바 '콘셉트'의 문제다.

우리 가족의 경우 처음부터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가능한 콤팩트하게 짐을 꾸린다는 것. 두 번째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로 '가볍게' 짐을 꾸리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고가의 장비를 사들인 건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오로지 '그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닌, 비교적 활용도가 높고 쓰임새가 있는 물건들로 트렁크의 대부분이 채워졌다.

활용도가 높은 대표적 품목 중 하나는 티타늄 컵이다. 네 사람의 것을 구비하려니 집에서 사용하는 커피잔을 구입할 만한 값을 지불해야 했다. '시에라 컵'과 견주어가며 두어 달 간 고민한 끝에 결국 '형태를 갖춘 컵'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용도와 성능을 고려해 두 개씩 두 가지로 패키지를 꾸렸다.

600㎖ 용량 이중컵은 주로 어른들이 차를 마실 때 사용하고 있고, 450㎖ 용량의 컵은 아이들이 사이좋게 앉아 따뜻한 음료를 마실 때에 사용한다. 큰 컵에 작은 컵을 포개어 넣을 수 있어 '시에라 컵'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수납공간이 절약된다. 이 물품은 캠핑용으로 마련한 나무수저 세트와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종종 사용한다. 가볍게 손에 쥐어지는 느낌이 좋아서다.

조금 진부한 이야기가 될 수는 있겠으나, 캠핑 세간과 장비에 욕심을 내기 전에는 항상 잠시 숨을 고르고, 대체 무엇을 위해 이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상기해볼 것을 권한다.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도시생활에서 탈출해 무엇 때문에 자연으로 깊숙이 들어가고자 했던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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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주 전, 늦가을. 아직 땅이 얼기 전이었다. 새 봄에 꽃을 보려면 이맘때 구근을 심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년 봄맞이로 준비했던 튤립 구근을 텐트 주변에 먼저 심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얼어 죽지 말라고 주변의 이끼를 떠다가 살짝 덮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새 마음자리가 생각보다 많이 그곳에 자리를 잡은 모양이라고.

오로지 '이곳'에서만이 아닌 삶과 생활, 조금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느낌. 나쁘지 않다.

트레블라이프=김지혜 excellen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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