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을 기다리며 [김지혜의 가족캠핑③]

첫 눈을 기다리며 [김지혜의 가족캠핑③]

2015.11.25. 오후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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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을 기다리며 [김지혜의 가족캠핑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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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한 가족의 겨울 캠핑 도전기, 세번째

◆ 에피소드 #04- 마시멜로우 협상

캠핑은 다소 부산스럽다. 무엇 하나 그냥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시멜로우를 띄워달라는 요구도 빠뜨리지 않는다. 거부하기 어려운 요청이다.

하지만 이제는 무제한으로 공급하다시피 했던 마쉬멜로우에 대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나은 먹을거리로 대체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치즈 퐁듀'. 이미 지난주에 포석을 두고 간 덕분에 별도의 용구는 필요하지 않았다.

만드는 방법은 재료 구비에 비해 매우 간단하다. 주재료가 되는 '에멘탈 치즈'는 그리 흔한 식재료는 아니지만 대형마트 식품 코너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이 치즈로 말 할 것 같으면 만화 '톰과 제리'의 주인공 제리가 늘 호시탐탐 노리는 구멍 뚫린 치즈로 그 풍미가 진하고 독특하다. 오죽하면 에멘탈 치즈 맛에 중독되어 고도비만이 된 외국 저명인사가 얼마 전 위 축소술을 받은 일이 뉴스에 나오기까지 했겠는가.

그 맛이 궁금하다면 경험삼아 한 번 정도 따라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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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오른 용기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소량의 마늘을 살짝 볶는다. 약한 불로 하는 것이 좋다. 올리브유는 끓는점이 비교적 낮고, 마늘 역시 타기 쉬우니.

마늘이 올리브유와 살짝 지글지글 한다 싶으면 얼른 화이트와인을 붓고 한소끔 끓이며 알코올을 날린다. 맛을 살리는 데 중요한 건 와인과 치즈의 양을 조절하며 적당한 농도를 맞추는 일인데, 이번엔 150㎖의 와인에 슬라이스 된 스위산 산 에멘탈 치즈 2장, 신제품으로 나온 국산 크림치즈 3장을 녹여 넣었다.

치즈는 한꺼번에 넣기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나누어 넣는다, 꾸준히 저어가며 눌어붙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끈하게 덥혀진 치즈에 최근에 서울숲 근처에서 우연히 찾은 맛있는 빵집의 러스크와 도톰한 식빵을 곁들여 먹었더니 나름 그 맛이 괜찮았다.

참고로 퐁듀를 만들 때에 원칙은 전용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너무 넙적하지 않고 깊이가 오목한 사기그릇을 중탕으로 덥혀가며 만드는 방법도 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이번에 소형 알코올 램프 대신에 남편이 야심차게 준비한 고체 연료를 사용하다 지나치게 우수한 화력으로 결국 퐁듀 용기 하단 바닥에 금이 갔고, 그 바람에 다음번에는 나도 차선책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도 덧붙여. 덕분에 폭발적인 화력을 지닌 고체 연료는 착화제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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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05- 튤립 구근 심기, 그리고 추위 피하기

자리에 맞는 퍼즐 조각 하나를 맞추려면 때에 따라서는 여러 번의 시도가 필요하다. 또 어떤 자리에 맞는 조각 하나를 찾는 것은 전체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원하는 삶과 생활을 누리는 것을 한 500피스 정도의 퍼즐 한 판이라고 간주했을 때 내게 이번 겨울 캠핑은 '결정적 한 조각'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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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않게 구입한 튤립 구근. 네 뿌리를 가져와 여기에 먼저 심게 되었다.

나는 꽤 오래 전서부터 '시골에서의 삶'을 이야기해왔다. 그 꿈을 이야기할 때는 무모하리만치 확신에 차 있었지만, 당시 특별히 무슨 대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구상을 거듭하며 어느 정도 크기의 텃밭과 마당을 넘어 '마구간'이 있는 정도의 규모로 확장된 터라 그만한 부지를 마련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올해로 마흔. 하지만 '불혹'이라는 표현은 아직 나와는 먼 이야기로 여겨진다. 미혹스러운 일들이 아직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겨우 몇 가지, 그것도 사실 새로 깨달았다기보다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다.

스물과 서른에 품었던 생각의 본질은 결국 바뀌지 않았고, 이제는 어떠한 식으로든 그것의 실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그런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흔들리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할 시간을 다시 찾은 요즈음에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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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버릇처럼 말로는 전원생활을 동경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팍팍한 도시환경에 대한 염증으로 그저 공상을 즐기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만약 캠핑에 따라나서지 않고 이전까지 살아오던 그대로였다면 즉흥적이고 소비적인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채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모든 것을 잊은 채, 아무 계획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의 고교 동창과 그의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의 캠핑에 도화선을 당긴 건 분명 그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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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하고 준비해서 집을 나서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으로 벌어진다. 낙엽더미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큰아이가 자벌레를 발견했다.

재미삼아 지난 봄, 내가 적어두었던 첫 캠핑 후 소감을 여기에 옮겨 놓아본다.

"후둑후둑 떨어지던 빗방울이 잦아들자 고등학교 동창인 남편과 남편의 친구, 그리고 그의 가족들, 게다가 우리 사내아이 둘까지, 결국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 모두 더욱 신이 나 보였다. 에어매트를 방방이 삼아 뛰고, 침낭을 두른 채 구르고 깔깔 거리는 모습이 처음 만나서 노는 애들 사이 같지 않다. 역시 친해지는 데는 몸놀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반면 나는, 이 모든 것이 어색하고 긴장된다. 얇은 천과 폴대 몇 개로 이뤄진, 전혀 가옥답지 않은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니 벌써부터 등허리가 당기는 것 같다. 열심히 삼부자가 텐트 설치에 열을 올리는 뒤로 나는 '대체 왜 길바닥에서 자야 하는데'라고 조금 더 강한 어조로 이야기 했어야 하나 후회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으니 이제는 최대한 잘 생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혹시 몰라 챙긴다고 챙겼는데, 여전히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를 초청한 가족의 보금자리가 '스크린 타프' 안에 마련되어 있다는 것. 덕분에 벌레도, 비갠 뒤 비치는 햇볕도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들은 캠핑 와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이 얼마나 운치가 있는지 모른다며 예찬론을 펼친다. 솔직히 과히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캠핑장에 처음 와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절망'했던 내가 이제는 은근히 첫눈을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본다.

아, 이 얼마만의 설레임인가.

트레블라이프=김지혜 excellen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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