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2015.11.18. 오후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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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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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한 가족의 겨울 캠핑 도전기, 두번째

◆ 에피소드 #02- 아빠의 분노vs엄마의 욕심

"캠핑이고 뭐고 이번 겨울 끝나고 나면 장비 전부 다 팔아버릴 거야. 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

토요일 늦은 오후, 집을 나선 후 약 30분 동안 차 안에는 냉랭한 공기가 가득했다.

남편이 어디서 "장박을 하던 텐트 하나가 들쥐의 습격으로 이곳저곳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는 당장이라도 가 보아야겠다는 태세다. 이내 "알아보니 텐트 안에 김치 같은 음식을 두고 와서 그렇다더라"며 원인 규명을 마친 후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눈치였다.

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그리고 결국 나도 덩달아 '텐트의 상태'가 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단 하룻밤일지언정 지난번처럼 지내는 것이 엄두나지 않았던 터라 남편에게 '성능 좋은 난로' 준비를 신신당부하고, 짬이 나는 대로 간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는 '캠핑용 방한 슬리퍼'와 장갑 등 몇 몇 아이템을 매우 '신경 써서' 마련했다. 예보에는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산골 날씨는 어떨지 모른다면서.

그리고 그 이야기는 적중했다. 비록 날씨의 양상은 조금 달랐지만.

캠핑장에 도착하자 우선 땅이 말라 있어 다행이었다. 공기는 선선하고 상쾌했다. 지난번처럼 코가 매울 정도로 춥지 않을 것 같았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모두의 기분과 컨디션도 훨씬 좋아보였다.

분주하게 타프를 치고 나자, 곧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요란해진 빗줄기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쳤다. 양 손에 방한 용품을 가득 들고서 그것으로도 모자라 현관에서 우산 하나를 더 챙긴, '엄마 욕심'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에피소드 #03- 정종과 어묵탕

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지난 10월 말 캠핑 중 추위와 '사투'를 벌인 그 밤엔 독주가 정말 필요했다.

서리가 내린 가운데 텐트 밖에 있으려니 저절로 그 생각이 났다. 강원도로 향하는 길에 차 안에서 재미삼아 선원들이 즐겨 마셨다는 럼주에 대해 알아봤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맥주 몇 캔을 챙겨온 것이 전부였고, 결국 355ml 캔 하나를 미처 다 마시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나 뿐 아니라 남편도 틀림없이 집에 고이 모셔놓은 양주 생각이 간절했으리라.

작지만 그래도 난방이 가능한 기구를 두 대 처음으로 챙겨가며, 우리는 첫 끼니가 될 저녁식사로 따뜻한 정종과 어묵탕을 준비했다.

사실 어묵탕은 너무 쉽고, 또 여러 번 먹었던 메뉴인지라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정종을 곁들이기는 이번이 '처음'. 그래서 괜히 기대가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따뜻한 보리차를 미리 끓여 챙겨갔다. 지난 캠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큰 아이가 살짝 체기가 올랐던 것을 생각해서였다.

우선 겨울 캠핑에 온전히 적응하기 전 까지는 당분간 가볍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 이유에서 난 ‘뜨거운 술’만큼은 사실 피하고 싶었다.

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따뜻한 정종. 서른이 되어갈 무렵, 다양한 주종(酒種)을 접하며 딱 한 번 제대로 먹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오뎅바'에서였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지독한 숙취에 시달렸고, '다시는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었다.

이번 캠핑을 떠나기 전, 덥혀서 마실 정종을 고르러 가서도 그에 대한 우려는 여전했다. 하지만 비 오는 밤, 오랫만에 본 '술맛'은 몸을 덥히기에 좋았을 뿐, 심하게 취기가 오르게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캠핑용품점이 아닌 주방용품 도매상가에서 용케 골라낸 아담한 자기병 덕분일까.

전문가가 아니고, 또 여러 가지의 정종을 맛보지 못한 터라 그 맛을 모두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캠핑에서 우리는 국산 정종과 일본산 사케 두 가지를 골라 가져가서 맛보았다.

명절 차례상에서 은은하던 바로 그 향기가 친숙해서였을지 몰라도 나는 일본산보다는 조금 더 진한 국산 정종의 맛이 더 마음에 들었다. 반면 남편은 국산 정종의 맛을 조금 ‘짜다’고 표현했다. 해서 당분간은 두 가지 정도를 골라 가지고 다녀보며 맛을 견주어볼 생각이다.

정종을 1차로 덥힐 때는 작은 코펠에 물을 담아 중탕을 했다.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는 집에서 정말 딱 한 번 사용했던 '퐁듀 용기'를 활용하기로 하고. 묵혀두었던 살림을 활용할 색다른 방법을 찾아낸 것이 내심 무척 뿌듯했다.

내친 김에 이 물건은 ‘장박 살림’에 보태기로 결정하고, 텐트 안에 고이 모셔두고 돌아왔다. '초코 퐁듀'에 이어 ‘치즈 퐁듀’를 예고하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남편은 대단히 회의적인 반응이다.

겨울캠핑의 꽃, 정종과 어묵탕 [김지혜의 가족캠핑②]

어묵탕을 끓일 때마다 나는 좀 우쭐한 생각이 들곤 한다. 어묵은 반은 반 조리되다시피 한 재료이고, 파와 마늘 정도만 곁들여도 어느 정도 먹을 만한 국물이 나오니 당연히 요리솜씨 때문은 아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에너지인 장작불에 의존해 요리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무척 신선했다. 그러면서도 곧 익숙하고, 무뎌지겠거니 했다. 하지만 이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다.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는데, 이제 그 이유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건 일종의 ‘해방감’ 덕분이다.

솔방울과 잔가지들을 주워다가 불을 지피고, 노지에서 음식을 끓여내다 보면 이른바 '시스템키친'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기술과 문명’에서 떨어져 나와 그 밖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도시인의 일탈 과정. 그건 노상 엄마 손을 잡고 다니던 어린 아이가 스스로 몇 발자국을 뗀 후의 느낌과 참 많이 닮았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소형화로는 짧게 재단한 장작이 들어가는 것으로, 여기에 길쭉한 형태의 전용 포트를 얹어 사용하게 된다. 나는 여기에 뭔가 끓이다보면 종종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기도 한다. 사실 이 기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저런 장난감으로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던 물건이 아닌가.

이쯤 되고 보면 '캠핑의 반대파'였던 나를 회유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는 고백이 필요할 듯하다. 하나하나 무척이나 고심하며 장비를 들이는 남편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긴 충동구매 사건이 캠핑 시작 무렵에 벌써 하나, 앞으로도 어쩌면 몇 건 더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트레블라이프=김지혜 excellent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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