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천경자와 함께 한 덕수궁 산책

깊어가는 가을, 천경자와 함께 한 덕수궁 산책

2015.11.10. 오전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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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천경자와 함께 한 덕수궁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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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2015년 늦가을, 오후 2시-4시.
어디서: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서울 지하철 시청역)
무엇을: 천경자의 그림과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비용 : 미술관 무료, 덕수궁 1000원. (24살 이하, 65세 이상 무료)

지난해 자주 가던 제주도의 어느 식당.
문득 궁금해 식당 주인 아주머니에게 던진 질문.
"신혼여행은 어디 가셨어요?"
"우리? 서울이지. 그때 서울 구경 처음 했다니깐"

문화충격이었다. 신혼여행을 서울로 가다니.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었다. 삶이 풍요롭지 않던 시절에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첫 발걸음을 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듯, 아직 해외신혼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제주도 부부들은 서울로 신혼여행을 가기도 했다!

그들의 신혼여행 기억의 장소가 어디이겠는가. 경복궁, 덕수궁, 남산이다.
그래서 우리네 부모님이 신혼여행 온 기분으로 서울시립 미술관과 덕수궁에 다시 갔다.

이보다 경제적으로 서울의 풍성한 가을을 느낄만한 곳이 있을까. 두어시간만에 단돈 1000원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도심에서 감성을 불태우며 역사와 문화 기행을 완성했다.

관광객이 아니라, 단지 일 때문에 온 서울 방문자에게도 짜투리 시간을 이용한 코스로 적극 추천해주고 싶은 장소다. 서울역에서도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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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죽음으로써 더욱 유명해지고, 재조명을 받는 기회가 생기지만 사실 천경자 화백은 이미 8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한국을 대표하는 여류화가이다.
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건 지난 10월 22일. 하지만 삶의 마지막을 미국 뉴욕에서 보낸 그의 죽음은 알려진것보다 두달 빠른 지난 8월이었다.
천 화백은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 쉽게 볼수 있게, 서울시립미술관에 그의 작품 93점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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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는 여인과 꽃을 즐겨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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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천경자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만들었던 그림.

어긋난 사랑으로 괴로워하던 그가 고통을 잊기 위해 매달렸던 주제가 뱀이다. 뱀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그의 고통의 무게를 짐작케 해서 멍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청춘의 가슴 저리던 시간이 지난후 돌이켜보면 누구 말마따나 '예술은 이미 행복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명제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의 그림은 고통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한, 아니 살아내기 위한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의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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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의 절정을 치닫는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다다른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을 재현하는 행사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수없이 그 앞을 왔다갔다 했지만 덕수궁 표를 구입한건 10여년이 훌쩍 넘었다.
10년 동안 덕수궁 안을 가본적이 없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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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랄것도 없다. 제주도 한림에 사는 어느 50대 아저씨는 어릴때 성산일출봉을 한번 오르고, 그 후에 다시 가본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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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을 한바퀴 돌고 나오는 시간에도 천 화백의 그림들이 두개골의 껌딱지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덕수궁의 단풍이 더욱 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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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도 훌쩍 넘은 기억이어서 건물 배치 등등이 모두 새롭다. 마치 한번도 오지 않았던 곳을 사진으로 보다가 처음 와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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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앉은 툇마루에서 바라본 돌담너머 현대의 건물들이 오히려 새롭게 보인다.
천 화백이 불러 일으킨 주술같은 현기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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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tip: 미술관은 주중 오후 8시, 주말과 공휴일엔 6시에 문을 닫으니 시간을 확인할 것. 천 화백의 전시실엔 도감으로는 볼수 없는 아틀리에에서 방금 가져온 듯한 그의 붓과 물감을 비롯한 작업 도구를 볼수 있다.

그림마다 해석이 친절하게 붙어 있고, 큐레이터의 설명또한 들을 수 있으니 문의할 것.

먹거리 등의 정보는 생략한다. 서울의 도심중의 도심. 아마 맛집을 검색하면 100여개가 넘는 홍수같은 정보에 혼란만 올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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