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2015.11.05. 오전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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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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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而不侈(화이불치)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儉而不陋(검이불루)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위치한 국립부여박물관에는 이와 같은 글귀가 곳곳에 적혀있다. 이는 백제 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백제 문화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은은한 멋스러움이 있다.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백제의 유산은 우리 민족 고유의 양식미와도 잘 맞아떨어진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백제는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과의 전쟁으로 그 역사를 끝냈지만 13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유려한 숨결을 더듬어 볼 수 있다.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 속에 깊어가는 가을 어느날, 사비백제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충남 부여군을 찾아갔다.

◆ 사비백제의 넋이 잠든 능산리 고분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백제 문화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옛 왕가의 무덤에서부터 잘 느낄 수 있다. 경주에서 볼 수 있는 신라 고분군에 비해 크기도 크지 않고 왕릉치고는 규모 면에서 소소한 편이다. 하지만 무덤 안 사방을 벽돌로 쌓아 놓고 정교한 문양과 벽화로 수놓은 백제왕릉은 화이불치 검이불루의 백제 양식을 한눈에 느낄 수 있게 한다.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능산리 고분군은 사비백제의 대표적인 왕릉이다. 국도를 통해 부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 잡은 능산리 고분은 고즈넉한 정취 속에 조용한 옛 왕가의 전설을 전하는 왕릉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와 사이로 보이는 화려하지 않은 왕릉의 외관은 깊어가는 단풍과 함께 진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했다.

총 7기의 고분이 자리한 능산리 고분은 무덤 내부를 직접 볼 수는 없다. 고분군 한 켠에 자리한 의자왕의 가묘는 당나라에서 굴곡진 생애를 마감한 백제 마지막 왕의 서글픈 마침표가 전해진다.

◆ 백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금동대향로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백제의 유물은 기와와 토기 등 옛 왕궁터의 유산을 제외하고는 왕관, 불상 등 보물류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눈에 쉽게 띄는 왕릉의 특성상 아주 옛날부터 도굴이 심한 탓이다. 하지만 유일하게 보물로 남아있는 백제 유물의 정수가 한가지 있다. 바로 금동대향로다.

비교적 최근인 지난 1993년 능산리 고분군과 부여 나성 사이의 백제 집터에서 발굴된 금동대향로는 백제 멸망 당시 땅속 깊숙이 묻어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드라마틱’한 사연으로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게 백제 유물의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전한다.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금동대향로는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백제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마치 피어나는 연꽃 모양을 모티브로 한 향로의 생김새는 사이사이에 두 사람과 수중생물 26마리가 새겨져 장인의 숨결을 전한다. 하늘을 비상하려는 듯한 봉황의 자태가 인상적인 상단에서부터 용 한 마리가 세 발을 틀어서 굳건히 받치고 있는 하단까지 은은하면서도 굳건해 보이는 백제의 기상을 드러낸다.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실물로 전시돼 박물관의 가치를 높여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는 달리 역사적 보물의 실물전시가 너무나도 드믄 우리나라 국립 박물관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금동대향로의 존재는 관람객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마울 수밖에 없다.

◆ 3000개의 꽃잎이 떨어진 그곳, 부소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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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은 마지막 도읍인 옛 사비 백제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곳이다. 나당연합군의 진군으로 절개를 지키려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삼천 궁녀들의 서글픈 전설과 폐망하던 백제의 안타까움이 구구절절 묻어난다.

부여를 휘감아 도는 금강을 마주한 채 옛 도읍의 숨결이 남아있는 부소산성은 가을 단풍과 함께 백제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백제 말의 세 충신 성충, 흥수, 계백의 넋이 자리한 삼충사와 곡식창고인 군창 터,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영일루를 도는 산성내 코스는 가을 산책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소나무 숲 사이 정자가 위치한 낙화암은 왠지 모를 옛 삼천궁녀의 한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 고고히 흘러가는 금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장하면서도 초연한 사비의 마지막 순간이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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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을 향해가는 돌계단을 내려가면 고란사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물맛이 워낙 좋아 왕이 늘 마셨던 약수를 떠가던 궁녀의 옛 전설이 자리하고 있다. 금강을 바라보며 옛 백제의 숨결을 되새기던 고즈넉함은 이제 사라졌지만 백제의 넋을 위로하는 사찰의 풍미는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부소산성의 매력은 금강을 끼고 도는 천혜 요새가 전해주는 옛 궁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또 유람선을 타고 바라 볼 수 있는 산성의 전경은 백제문화의 색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글·사진 = 김윤겸 gemi@travellife.co.kr

은은한 멋스러움, 백제의 숨결 부여를 찾아서①

TRAVEL TIP: 능산리 고분은 부여의 첫 여행지로 가는 것이 좋다. 국도에서 부여로 들어서는 입구에 위치해 접근에 유리하며 이른 아침 자욱한 안개를 볼 수도 있다.

옛 왕궁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에 가기 전 능산리 고분에서 능사터를 꼭 둘러보는 것이 좋다. 단지 내 역사적 고증으로 재현한 능사와 5층 목탑의 위용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부소산성에서는 고란사에서 구드래조각공원을 오가는 유람선을 편도로 이용하는 것이 좋다. 부소산성입구에서 고란사까지는 산책길로 즐기고 돌아오는 길은 유람선으로 타는 것이 동선에 더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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