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2017.10.26. 오후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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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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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긍주혜’ 강주혜 씨는 10여 년 전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음주차량에 치여 혼수상태로 있다 한 달여 만에 깨어난 강 씨는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강 씨는 모든 사물이 5도 정도 기울어져 보이고 시력측정이 어려울 만큼 떨어졌으며 게다가 오른쪽 시선이 차단된 채 겹쳐보이는 ‘복시’가 왔다. 좌뇌 손상으로 오른손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됐다.

강 씨는 “처음에는 모든 것이 막막했다”며 “약기운이 떨어지면 온몸이 아프고 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현실에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됐나 싶어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막막했던 삶은 시각장애인복지관에 다니면서 달라졌다. 복지관에서 자신보다 앞을 더 못 보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면서 강 씨는 차츰 희망을 얻었다.

사물이나 동물, 인물 등 그리고 싶은 것을 하나씩 그린다는 강 씨는 자신이 세상을 보는 그대로 즉, 기울어지고 겹쳐 보이는 사물을 도화지에 담아 자신만의 감성을 담은 글귀를 더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미긍 나비


빨강 나비,
파랑 나비,
찢어진 나비.

미긍 나비는
사고로 찢어진 나비.

혼자서는 설 수 없대.
혼자서는 날 수 없대.

아프고 슬펐어.
아프고 막막해서.

‘그래도 도~전!’
찢어진 채 사라지기엔
내가 너무 아까워!

쓰러져도 담담하게,
쓰러져도 당당하게!

바람에 모두 맡기고
하늘에 몸을 날리는
날고 있는 내가 보이니?

꽃들아, 날개는 찢어졌어도
너희들을 사랑해!

나는야, 미긍 나비!



강 씨의 작품이 책 표지나 기업체와의 콜라보 작품에 쓰이는 것은 물론 재능기부 차원에서 장애인 복지관과 다문화 학교 등에서 장애 인식 교육과 그림 그리기 특강을 실시하기도 했다. 2018 평창 장애인 올림픽 홍보에도 직접 그린 그림이 사용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 2018 평창 장애인 올림픽 홍보에 사용된 작품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물론 그 이면에는 강 씨의 절실한 노력이 있었다. 두 번째 사고를 당하면서는 오래 앉아있기가 힘들고 오른손도 마비가 심해졌다. 일정 시간 동안 손을 움직이지 않으면 마비가 올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주변의 우려어린 시선까지 감당해야 했지만 강 씨는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을 ‘긍정’했다.

강 씨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다”면서 “그렇지만 오히려 내 어려움을 디딤돌 삼을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가 확고했다”고 강조했다.

강 씨는 “미긍이라는 필명도 여기서 따온 것”이라며 “미친 긍정, 아름다운 긍정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노력과 긍정의 힘으로 강 씨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됐다.

최근 창작 콘텐츠 커뮤니티인 네이버 ‘그라폴리오’에서 10개 출판사가 뽑은 베스트 작가 중 한 명으로 됐으며, 또한 오는 12월 8일부터는 혜화 아트센터에서 '사샤삵~展'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개인전을 가질 예정이다.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나는 사고 후 말하기도 많이 불편합니다. 하지만 힘든 일들은 오히려 나를 열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불행’에도 감사하며 자신에게 닥쳐온 일들에 절실히 노력해보세요. 여러분들에게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다음은 강주혜 작가와의 일문일답.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Q.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하다.

-내가 그리는 소재에 나의 감정을 담아 그린다. 제가 보는 세상에는 모든 사물이 기울어져 있다. 또, 사물들이 겹쳐 보이는 ‘복시’까지 있어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연필스케치, 지우개 수정 없이 마비된 오른손으로 한 번에 볼펜드로잉을 한다.


Q. 그림을 그리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사고 후 좌뇌 손상으로 오른쪽 신경마비가 오면서 손을 움직일 수 없었고,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늘 힘이 든다. 오른손 마비는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손에서 펜을 놓을 수가 없다. 손이 조금만 쉬어도 그림에 바로 영향이 간다. 이제는 긍정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게 나의 ‘천직’이라 생각한다.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Q. 그렇다면 가장 힘이 됐던 건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엄마의 응원, 그리고 팬들과의 소통이 가장 힘이 됐다.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리던 당시, 작품을 구매해 수술을 앞둔 어머님께 선물한 팬이 있었다. ‘휘파람새의 귀향’이라는 작품이었는데, 내가 13년 만에 불게 된 휘파람을 작품화 한 것이다. 모녀의 사연을 듣고 어머님께 직접 편지를 써드리기도 했었다. 다행히 어머님은 어려운 수술도 무사히 마치셨고, 지금은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내 작품이 힘이 됐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미긍의 세 번째 개인전에도 두 모녀가 다시 찾아줄 것 같다. 나의 마음이 작품으로 전해져 따뜻한 힘을 낸다는 게 참 감사하다.


Q. 최근에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창작자들의 놀이터, 네이버 ‘그라폴리오’를 통해 작품 활동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지금 출판 서바이벌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 887명의 창작자 중 2차 리그에 진출한 50인에 뽑혀 기쁜 마음이다. 그리고 단지 '장애인작가'라는 입장을 떠나서 '그라폴리오'의 인정을 받아 선정되고 그것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림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 좋았다. 나에게 '출판서바이벌 프로젝트' 라는 멋진 기회를 만들어준 '그라폴리오'에 깊이 감사드린다.


Q. 이밖에 어떤 활동 경력이 있나?

-몇 년째 여러 교육기관과 장애인단체를 돌며 ‘장애 인식개선 교육’과 그림그리기 강연을 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다수인 미원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SBS ‘패션 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광희와 곽현주 디자이너 팀이 미긍그림으로 ‘패밀리룩’ 옷을 디자인해서 그 주의 우승을 차지했던 적도 있다.

[피플앤피플]두 번의 사고에서 얻은 “미(美)친 긍정!” 시각장애 일러스트레이터 미긍주혜

Q.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긍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시각장애’, 마비되는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미긍이 여기 있다. 나는 그냥 ‘장애인 작가’가 아닌, 나의 장애를 딛고 일어서 모두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그림을 그린다. 내가 만약 음주차량에 치어 장애를 입고 세상을 비관만 했다면 가능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탓하고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끊임없는 긍정과 나의 절실한 노력으로 ‘불행’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기적’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미긍주혜 작품 더 보러 가기: http://me2.do/GegQCjFa


[YTN PLUS] 취재 강승민 기자, 사진 정원호 기자, 미긍주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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