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2015.10.30. 오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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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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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부터 목포를 중심으로 시작된 갈치 배낚시는 현재 남해안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조선시대 갈치 주 서식지는 인천과 충남 등 서해안이었다.

갈치의 옛 이름은 ‘자산어보’에서는 군대어(裙帶魚)라 하고 속명을 갈치어(葛峙魚)라 하였고, ‘난호어목지’에서는 갈치(葛侈)라 하였다.

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한편 조선시대 지역별 경제·사회·군사·산업·지방제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어(刀魚)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생김새가 칼을 닮아 이름 지어진 것이다.

여기에 도어(刀魚), 즉 갈치에 대한 기록이 총 6개 나오는데 경기도 1군데(인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충청도다.

경기 인천군, 충청 서천군, 충청 홍주목(현 홍성군), 충청 태안군, 충청 해미현(현 서산시), 충청 결성현(홍성군 결성면)이 그것이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갈치가 충청 서해안에서 많이 났다는 얘기다.

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자세히 살펴보면 인천군(경기 부평 도호부)의 경우 주로 준치(眞魚, 진어)가 나며, 오징어, 농어, 갈치, 홍어, 넙치(廣魚,광어), 설치(舌大魚,설대어),송어(蘇魚,소어),조기, 삼치(亡魚,망어), 상어(沙魚,사어), 숭어(首魚,수어), 민어, 가물치(加火魚,가화어), 도미,큰새우, 대합조개(生蛤,생합), 모시조개(黃蛤,황합), 낙지, 소라가 난다.

서천군은 주로 홍어, 상어, 숭어, 전어(錢魚), 민어, 오징어, 붉은 큰새우, 갈치, 가물치가 나고, 홍주목은 주로 청어, 갈치, 망어, 상어, 조기, 가물치, 준치, 광어가 난다.

또한 태안군은 주로 청어, 갈치, 전어, 상어, 민어, 조기, 망어가 나고, 해미현은 주로 민어, 전어, 광어, 갈치, 조기, 홍어, 숭어가 난다.

마지막으로 결성현은 주로 준치, 전어, 갈치, 조기, 숭어, 상어, 오징어, 가물치, 민어가 난다.

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갈치가 지금의 남해안이 아닌 서해안에서 많이 났다.

최근 어업생산동향조사를 보더라도 1990년 2만7000톤이나 잡히던 서해안 갈치는 2012년에는 760톤으로 크게 줄었고, 올해는 거의 조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른 원인도 있겠지만 서해안 수온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인다.

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갈치는 주로 50~300m 정도의 깊은 바다 속에 사는 저층 난류성 어종으로 우리나라 근처에서는 2~3월경에 제주도 서쪽 바다에서 겨울을 보내다가, 4월경에 북쪽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여, 여름에는 남해와 서해, 중국 근처의 연안에 머무르며 알을 낳기 시작한다.

그런데 최근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서해안의 연평균 표층 수온이 1968년보다 1.24℃ 상승한 14.64℃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수심 50m 저층 수온은 오히려 같은 기간 0.4℃ 낮아져 9.77℃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조선시대 갈치 본고장은 지금의 남해안 아닌 인천을 포함한 충청 서해안

이 같은 수온변화로 멸치와 참돔 등 연안 난류성 어종은 증가하고 저층 난류성 어류인 갈치는 크게 줄어 든 것이다.

저층 수온이 올라 갈치 잡으러 선잠을 자며 먼 길을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날을 기약해 본다.

제공=대한민국 NO.1 낚시방송 FTV(김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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