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품은 군산 근대문화유산지구

아픈 역사 품은 군산 근대문화유산지구

2015.11.27. 오전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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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국의 가볼 만한 휴가지를 소개하는 시간, 오늘은 전라북도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지구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문화적 잔재는 한반도에서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바로 군산입니다.

조선총독부 은행과 세관, 적산가옥 등 고스란히 남은 옛 흔적을 둘러보며 문화유산 관광을 넘어 과거의 아픈 상처도 살필 수 있는 곳입니다.

황보선 기자가 안내해드립니다.

[기자]
청일전쟁 후 1899년 문을 연 군산항.

일제의 쌀 수탈 통로로 번창하다가 1979년 신축된 군산 외항에 수출입 항구의 역할을 넘긴 뒤 옛 자취를 품은 문화유적지로 변신했습니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해망로에 웅장한 붉은 벽돌 건축물이 보입니다.

1922년 지어진, 당시 조선은행 군산지점입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도 등장한 일제의 대표적 금융기관입니다.

지금은 근대건축관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맞이합니다.

[원봉연, 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군산의 농촌 지역에서 일본인들이 많은 농토를 매입하고 확장하는 데 돈을 대준, 자금줄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이 18 은행 같은 일본계 은행입니다."

1908년 독일인의 설계로 세운 옛 군산세관도 근처에 보입니다.

구서울역과 한국은행 본관 건물을 빼닮았습니다.

지붕은 고딕, 창문은 로마네스크, 돌출된 현관 처마는 영국풍으로, 유럽 건축양식을 융합한 유물입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도 옛 시간으로 안내합니다.

개항부터 광복까지 이 지역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민중의 삶은 어땠는지 살필 수 있는 자리입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에 배를 댈 수 있도록 만든 부잔교, 즉 '뜬 다리'는 일본으로 가는 배에 쌀을 싣기 전 마지막 통로로 쓰였습니다.

[김옥분, 군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썰물 때도 수심 6m만 되면 배가 들어와서 수시로 밤낮없이 쌀을 싣고 주로 오사카나 고베 항으로 쌀을 반출했다고 합니다."

군산극장의 전신인 이곳 '군산좌'는 우리나라 사람이 감독한 영화 '심청전'이 소개되는 등 군산 사람들의 대표적 문화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또 고무신 공장을 비롯해 군산에 번성했던 각종 상공업의 역사를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해망로 건너편 마을로 들어서면 바둑판 같은 계획도시의 특징이 펼쳐지고 사이사이에 이국적인 가옥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역시 일제가 남긴 자국입니다.

군산에서 포목점을 운영해 부를 쌓은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브로의 적산가옥도 그중 하나입니다.

2층짜리 본채에 단층 객실이 나란히 붙어 있고 앞에는 일본식 정원이 조성됐습니다.

군산 신흥동 일대가 일본 부유층이 거주하던 곳임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옥자, 관광객]
"집이 너무 화려하고 화사하고 정갈하고 별장 같은 느낌이고, 일반 사람들이 도저히 살 수 있는 집이 아닌 것 같아요."

월명동 '고우당'은 일본 건축물을 고치거나 중축해 만든 숙소입니다.

다다미방을 비롯한 일본식 숙박 경험을 체험하고 싶다면 이곳에 묵으면 됩니다.

근처 금광동으로 발길을 옮기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일본식 사찰이 나옵니다.

1913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승려 우치다가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는데, 8·15 광복 후 동국사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대웅전은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처마에 장식을 씌우지 않고 용마루는 직선인 일본 에도시대 양식입니다.

일제에 협력한 일본 불교의 잘못을 낱낱이 밝히고 반성하는 내용의 '참사문비'가 마당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종걸 스님, 동국사 주지]
"이제는 철거의 대상이 아니고 자라나는 학생들의 교육 장소, 더 나아가서는 한국과 일본 교류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현재와 과거, 추억과 아픔이 교차하는 흔적이 일제 강점기에 번성했다가 현대에 쇠락한 항구도시 곳곳에 숨 쉬고 있습니다.

폐기와 망각보다 보존과 반성이 뼈아픈 역사를 올바로 반추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도시 군산이 손짓하고 있습니다.

YTN 황보선[bosu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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