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신동'에서 '스포츠 대통령'으로...유승민 IOC 선수위원

'탁구 신동'에서 '스포츠 대통령'으로...유승민 IOC 선수위원

2016.08.26. 오후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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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신동'에서 '스포츠 대통령'으로...유승민 IOC 선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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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 / IOC 선수위원·탁구 전 국가대표

[앵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단은 금메달 10개, 종합 10위의 텐텐을 목표로 했죠. 우리 선수들 총 9개의 금메달을 따냈는데요. 그런데 값진 10번째 금메달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탁구 금메달 리스트 유승민 선수가 IOC선수위원에 당선된 건데요.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 스튜디오까지 오셔서 일단 먼저 감사드리고요. 귀국하고 생방송 출연은 처음이신 거죠?

[인터뷰]
처음입니다.

[앵커]
시차 적응은 하셨습니까?

[인터뷰]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점점 돼가고 있습니다.

[앵커]
앞서 소개를 해 드렸듯이 딱 한 개의 금메달이 우리가 모자라지 않았습니까? 그 아쉬움을 유승민 선수가 달래줬는데요. 대한민국의 10번째 금메달이다, 이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정말 제가 선수들 고생하는 걸 현장에서 봤거든요. 그런데 같이 금메달로 평가를 해 주셔서 영광인데요. 사실 저도 IOC위원장님께 금메달을 받기는 받았습니다. 물론 11월에 다시 전달받기는 하겠지만 현장 바깥에서 저도 이렇게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것 자체가 기쁘게 생각을 하고 책임감도 무겁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앵커]
25년간 필드에서 나를 위해 뛰었다면 지금부터는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 헌신하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셨어요.

[인터뷰]
일단은 저는 현장에서 만큼은 전문가지만 아직 행정적으로는 초보나 마찬가지이지만 지금 선수들도 많은 기대를 갖고 저한테 투표를 해 줬기 때문에 제가 선수들을 위해서 또 대한민국 체육발전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체육의 발전을 위해서 좀 작지만 기여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한국에 오시고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은 한 건지 실감을 점점 더 하실 것 같은데 IOC 선수위원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가요?

[인터뷰]
일단은 국제스포츠계의 최고의 명예직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봉사를 하는 자리로 알고 있기 때문에 스포츠 발전에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물론 대단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 또 그 대단한 게 저한테는 책임감으로 와닿기 때문에 어깨가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고요.

또 그러한 대단한 직함을 얻었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후보로 이렇게 선거운동하실 때하고 당선이 됐을 때와 실제로 달라진 점이 있었어요?

[인터뷰]
일단은 바로 AD카드가 바뀌었어요. 후보자였을 때는 탁구경기장과 올림픽 빌리지 두 군데만 출입할 수 있는 AD카드였는데 되고 나서는 전 체육관을 다 돌아볼 수 있는.

[앵커]
어디든 다닐 수 있는 매직카드를 받으셨군요.

[인터뷰]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 카드입니다.

[앵커]
숙소나 이런 게 업그레이드가 되나요?

[인터뷰]
일단 숙소는 IOC 본부호텔로 바로 체크인할 수 있도록 도와줬고요. 올림픽 빌리지에 있다가 다음 행사 때문에 이틀 뒤에 옮기게 됐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에 나오는 저 복장이 저렇게 배낭을 메고 뛰어다니신 거잖아요.

[인터뷰]
네. 그런데 단복을 제가 입고 선거운동을 했어요. 저 화면에는 체육복인데 왜냐하면 단복을 입어야지만 조금 선수들이 기억을 하기가 쉽고 저희도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이 많으면 얼굴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복장도 어느 정도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앵커]
선수복 입은 것도 하나의 전략일 수 있겠네요.

[인터뷰]
왜냐하면 선수촌 내에서는 선수들의 유니폼을 입고 다니기 때문에 그걸 전략으로 세워서 복장을 했습니다.

[앵커]
총 23명 후보 가운데 1위로 당선되셨어요. 러시아의 미녀새 이신바예바보다 더 많은 표를 얻으신 건데 전략을 어떻게 세우셨어요?

[인터뷰]
일단 선거 기간이 꽤 길었어요. 24일부터 17일까지 굉장히 길었는데 사실 다른 후보자들은 24일에 온 후보자는 없었고 그 이후에 오더라고요.

[앵커]
23일에 가셨죠.

[인터뷰]
네. 개막이 25일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29일, 30일에 많이 왔는데 저는 한 표라도 있으면 제가 받아야 된다. 왜냐하면 떠나기 전부터 인지도에 대한 걱정들을 많이 하셨기 때문에 보완을 좀 하고 싶어서 23일에 일찍 가서 첫날부터 열심히 했습니다.

[앵커]
어떻게 뛰어다니셨어요?

[인터뷰]
그냥 처음에는 사실 선수들이 여유가 있잖아요, 시합 전에는. 그러다 보니까 걸음걸이도 여유있게 다니다 보니까 저도 같이 맞춰서 따라다니면서 나 이런 이런 사람인데 너희들 시합 전에 여유 있을 때 투표해 주면 고맙겠다 해서 계속 그렇게 만났어요.

[앵커]
1:1로요?

[인터뷰]
그룹으로 다니면 앞에 있는 그룹을 잡아서 계속 얘기를 했고요. 그런데 선수들이 많아지고 많아질수록 시합이 다가올수록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적더라고요. 선수들이 시합에 집중해야 되고 또 예민한 걸 저도 알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한 장소에 서서 계속 아침과 저녁으로 손 흔들면서 인사하면서 웃어주고.

[앵커]
처음에는 돌아다니면서 만나다가 선수들이 약간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있을 시기에는 한 자리에서 인사를 하는, 정말 전략도 잘 짜시고 발로 뛰어다니는 그런 유세를 한 건데 저희가 사진을 봤습니다. 정말 얼마나 발로 뛰어다니셨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사진 한번 잠깐 보여주시죠. 저 사진이에요. 선수가 만나본 선수가 몇 명 정도 되십니까?

[인터뷰]
거기가 1만여 명 가까운 선수들이 있었는데 진짜 지겹도록 본 선수들도 있고요. 첫날부터 끝날 때까지. 그러니까 나중에는 보면 저도 인사를 하는 게 아니고 서로 피식 웃는 그런 경우도 있었고. 사실 제가 선수생활 할 때도 이렇게 발에 물집이 잘 안 잡혔는데 그거 보고 저도 깜짝 놀라서 또 이슈가 될 줄 몰랐고 부끄럽네요.

[앵커]
선수들하고 사진도 많이 찍으셨더라고요.

[인터뷰]
네. 거기에 있다 보니까 유명한 선수들이 많이 다니고 또 저를 반갑게 맞아주는 타 종목 선수들도 있었기 때문에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요.

[앵커]
선수 전략이에요, 아니면 추억으로 남기려고 찍으신 거예요?

[인터뷰]
사실 전략으로는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저 사진을 포스팅을 함부로 할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뒤늦게 지금에서는 편하게 공개를 하지만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까 저에게 굉장히 추억이 많이 되고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앵커]
선거는 역시 얼굴도장이죠, 이런 걸 증명을 하셨습니다. 사실 그런데 깜짝 당선이다, 이런 얘기가 많이 나왔었거든요. 사실 국내 위원 선정할 때도 진종오, 장미란 선수에 비해서 주목을 못 받았었는데 당선이 되셨고 이번에도 당선이 되셨거든요.

[인터뷰]
저는 사실 2004년에도 제가 그때 탁구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중국 선수를 이기고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전망이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돌이켜 보면 1년 전에 국내에서 면접, 선발할 때도 당연히 저는 안 될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었는데요. 일단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보여주고 또 절실하게 준비하다 보니까 그런 기회가 주어졌고요.

또 그때 국내에서 발표될 때까지 저도 진짜 부담이 너무 컸어요. 쟁쟁한 장미란 선수라든가 진종오 선수를 대신해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이 커서 준비 기간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오히려 그런 게 동기부여가 돼서 이렇게 꾸준하게 선거 운동을 힘들었지만 계속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더 열심히 뛸 수 있는 그런 동기가 됐다는 말씀이신데요. 절실함이 통했다, 이런 느낌이 들고요. 그런데 외국어를 상당히 잘하신다면서요? 그게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
일단은 유럽 투어리그 생활을 몇 년을 했었기 때문에 또 다양한 국가의 선수들하고 친분 관계도 있고요. 그래서 아무래도 유럽이나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좀 있는 편이고. 또 그 선수들의 습성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어떻게 해야지 그 선수들과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수 있어서 또 그런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진짜 한마디로 막 모르는데도 앞에 딱 나타나서 인사하면 걔네들도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다가 나중에는 먼저 아는 척도 해 주고 그런 게 너무 힘이 됐고 또 그런 리그 생활이 초석이 돼서 이번에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인사 몇 개국어로 인사하실 수 있으세요? 다양한 언어로 인사를 하고...

[인터뷰]
10개국어 이상은 제가 거기에서 배운 것 같아요.

[앵커]
저희가 들어볼 수 있는 인사말이 있을까요?

[인터뷰]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어 되고 일본어 되고, 중국어 되고, 영어 되고, 태국어 되고.

[앵커]
태국어는 어떻게?

[인터뷰]
사와디캅, 독일어 되고, 불어 되고, 이태리어 되고. 그리고 이번에 피지 럭비에서 금메달이 나왔잖아요.
피지 선수들을 자주 만났어요. 그래서 피지 인사말도 제가 배웠어요. 피지 인사말은 '블라블라~'. '블라~' 하면 저도 '블라~' 하고.

[앵커]
그게 굉장히 살갑게 접근하는 방법이잖아요.

[인터뷰]
네. 그래서 저도 누군가가 안녕하세요라고 하면 굉장히 반갑잖아요, 외국인이. 그래서 현장에서 배워서 자꾸 써먹다 보니까 지금도 기억이 나네요.

[앵커]
그렇군요. 혹시 북한선수들은 뭐라고 반응이 없었습니까?

[인터뷰]
네. 사실 좀 민감해서 그랬지만 저도 인사는 많이 하고 그랬는데 유난히 선수를 잘 받아주는 선수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선수들한테 되게 고맙고 굉장히 너무 감동적더라고요. 인사를 잘 받아주고...

[앵커]
찍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유승민 선수를 북한 선수들이.

[인터뷰]
네, 투표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D카드를 보면 투표를 했을 때 오렌지 스티커가 붙어요. 지금도 저는 사람을 보고 인사할 때 하이 하고 밑에를 먼저 봐요. 왜냐하면 오렌지 스티커가 있으면 또 말을 걸면 굉장히 귀찮잖아요, 선수들한테. 공항에서 귀국하는 날도 많은 선수들이 왔는데 이렇게 할 이유가 없는데도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업병이구나, 얼마 안 됐지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앵커]
섬세한 성격이신가봐요.

[인터뷰]
시선이 가더라고요.

[앵커]
선수 시절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만 15살에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혔고요.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때 중국의 세계 1위 왕하오를 꺾고 금메달을 땄을 때 이때 유승민 선수의 눈빛을 아직도 우리 국민들이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좀 떠올리시면 어떻습니까?

[인터뷰]
그때는 정말 준비 과정을 혹독하게 했고요. 또 왕하오 선수한테 제가 주니어 때 두 번 이기고 성인무대에 와서 6번 연달아 졌어요. 그래서 그 선수에 대한 분석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앵커]
그러니까 사실 이길 것이다, 금메달 딸 것이라는 전망이 많지 않았는데 ...

[인터뷰]
전망은 많지 않고 저 또한 전략종목으로 복식을 준비해서 나갔는데요. 결승에 가다 보니까 저도 부담이 없더라고요.

[앵커]
저 화면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세요? 머리도 짧게 깎으시고.

[인터뷰]
참 이게 남들이 봤을 때 진짜 쉽지 친해지지 않는 눈빛과 얼굴이구나. 이런 생각을 제가 하면서 봤는데요.

[앵커]
아닙니다. 제가 옆에서 가까이서 보기에는 굉장히 친해지기 좋은 눈빛을 가지셨어요. 저때 이기고 막 달려가서 김택수 코치한테 매달리다 안긴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인터뷰]
선수가 안 안기고 코치가 안겼냐는 질문을 한 100번 넘게 들은 것 같은데 펜스가 있어 나오는 과정에 손발이 안 맞았던 거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는데 그때는 뭘 해도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앵커]
이번에 리우올림픽에는 사실 선수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기 위해서 간 거잖아요. 밖에서 보니까 어떠셨어요? 선수로 뛸 때와 리우 올림픽을 응원하면서 볼 때와.

[인터뷰]
저도 응원을 하면서 볼 여유가 있었으면 굉장히 좋았을텐데 사실 선거운동을 하느라 사실 TV라든가 선수를 경기를 잘 못 봤어요. 대한민국 선수들이 항상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거기에 항상 있었기 때문에 서로 파이팅을 주고받고 대한민국 선수들한테는 더 파이팅을 실어주고. 그래서 평소에 이렇게 교류가 없었던 종목하고도 많이 친해진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앵커]
너무 딱딱한 이야기로만 제가 질문을 드려서요. 잠깐 마지막으로 둘째 아들 이름에 성공이더라고요. 일부러 그렇게 지으신 거예요?

[인터뷰]
제가 지었어요. 의미를 담으신 건가요?

[인터뷰]
성공했으면 좋겠어가지고. 간단하게 성공했으면 좋겠어서 그렇게 했고요. 특이한 이름이 요새는 많은데 제가 봐서는 굉장히 정상적인 이름 같아서 저도 기억에 더 남을 것 같고 그래서 제가 지었습니다.

[앵커]
그렇게 아들 바보라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인터뷰]
네. 너무 예뻐요. 제가 외아들이기 때문에 형제를 굉장히 부러워했거든요.

[앵커]
너무 예뻐요.

[인터뷰]
두 명을 낳았을 때 기뻤고 지금도 집에 가면 아이들이랑 놀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앵커]
가족들 포함해서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인터뷰]
우선은 저희 선수단한테 다시 한 번 고생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정말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과 감동은 메달 그 이상의 가치라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우리 선수들이 그걸 계속 쭉 이어나갈 수 있도록 선수대표로 뽑힌 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영원한 대한민국의 탁구 스타. 유승민 IOC 선수위원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오늘 자리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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