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의 전설' 이왕표, 40년 현역 인생 마침표

'레슬링의 전설' 이왕표, 40년 현역 인생 마침표

2015.05.27. 오후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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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 저희 뉴스인의 초대손님, 프로레슬러 이왕표 씨를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이왕표입니다.

[앵커]
손 한번 잡아봐도 되겠습니까? 생각보다는 그렇게 크거나 억세지 않으신데요?

[인터뷰]
손이 아주 부드럽습니다.

[앵커]
그냥 회사원 손 같기도 한데요.

[인터뷰]
그러세요?

[앵커]
오늘 특별한 행사가 있다면서요, 저녁 때는요.

[인터뷰]
오늘 은퇴 기념 포에버 챔피언이라고 해서. 저의 고향이 천안입니다. 장충체육관은 엊그제 끝났고 천안에서 한 번 더 시합을 합니다. 그래서 유관순 체육관에서 7시에 합니다.

[앵커]
직접 시합을 뛰시는 건 아닌 거죠?

[인터뷰]
그렇죠. 이제는 시합을 하고 싶어도 못 뜁니다.

[앵커]
건강 때문에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요즘 만감이 교차하시겠습니다.

[인터뷰]
그렇죠. 항상 링에서 씩씩하게 펄펄 뛰었었는데 이제 구경만 하는 입장이 됐고 또 은퇴식에도, 사실 시합을 하면서 멋진 은퇴시합을 해야 하는데 은퇴식만 하니까 정말 아쉽죠.

[앵커]
은퇴해야 되겠다라고 결심하신 순간에, 그때 어떤 생각이 제일 먼저 드시던가요?

[인터뷰]
일단 팬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못 보여주겠다라는 생각, 또 평생 40년 간 레슬링을 해 왔는데 이제는 링에서 정말 내려가야 되는구나, 그런 여러 가지 생각에 착잡했었죠.

[앵커]
그래도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축하도 해 주고 또 걱정도 해 주시고 많은 분들 박수 받으면서 이렇게 끝내는 분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행복하신 거죠, 사실.

[인터뷰]
그렇죠. 아쉬움도 많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이 축하, 또 축복을 해 주셨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셨기 때문에 행복하게 링에서 내려왔습니다.

[앵커]
눈물도 흘리셨습니까, 저 자리에서요? 눈물이 나시죠?

[인터뷰]
저는 사실 눈물을 안 흘려야지, 눈물이 안 날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이렇게 팬들 앞에 접하는 순간 가슴이 울컥하고 콧등이 시리더라고요. 결론적으로 링에 올라가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앵커]
담도암 때문에 은퇴 결정을 하신 것이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건강은 다 회복되신 건가요?

[인터뷰]
지금도 투병 중입니다. 지금 2년차인데 암은 5년이 지나야 확진 판정을 받기 때문에 지금도 몸 관리를 하고 또 음식 같은 거 조절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담도라는 게 쓸개에서 이어지는 거죠?

[인터뷰]
쓸개에서 위로 이어지는 관인데 그 안에 종양이 생긴 거죠, 관에. 그래서 췌장이다, 십이지장이다, 지금 담낭이죠. 쓸개도 떼어내고 췌장도 3분의 1 절단했고 또 십이지장도 떼어낸 상태입니다.

[앵커]
쓸개를 아예 떼셨군요? 큰 수술이었군요. 들어오시는 모습 보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건장하시고 체격이 당당하시고. 강하게 살아오신 분 아닙니까. 그런데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그때 어떠셨습니까?

[인터뷰]
제가 챔피언을 7번을 했는데 암이라는 복병을 만나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링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이 암 때문에 죽으면 안 되겠다라는 그런 각오가 있었고 또 우리 같은 건장한 체구에도 암이 오는구나. 우리는 모든 병의 열외라고 생각했거든요, 항상 건강을 자부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한테도 암이라는 게 찾아오는 거구나 하고. 어쨌든 절망적이었었죠, 처음에는.

[앵커]
다시 한 번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내가 잘 살아왔나 생각해 보고 그런 계기가 되죠?

[인터뷰]
그렇죠. 모든 게 정리가 되더라고요, 살아온 데 대한 정리. 또 앞으로 내가 죽었을 때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그러다 보니까 유서도 남기고.

[앵커]
유서도 쓰셨다면서요?

[인터뷰]
네, 그래서 장기를 기증한다. 간단하게 이런 유서를 썼었습니다마는. 어쨌든 사람이 죽는다고 하니까 마지막 순간에 뭔가 남기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앵커]
레슬링에는 처음에 어떤 계기로 입문을 하시게 됐나요?

[인터뷰]
제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 레슬러였고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김일 선생님을 보면서 자란 세대이기 때문에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해서 김일체육관 1기생 모집을 할 때 제가 테스트에 참가를 했었죠.

[앵커]
1기생이시죠? 김일 선생님, 저도 어렸을 때 김일 선생님 경기하는 걸 TV에서 보면서 자랐는데 저하고 비슷한 세대인가요? 저보다 연배가 높으신데, 그때 제 기억에는 천규덕 선생님도 계셨는데요, 여건부 선생님도 계셨는데 다른 분들은 다 잘 계시나요?

[인터뷰]
천규덕 선생님은 잘 계시고 여건부 선생님은 일본에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고.

[앵커]
그렇군요. 김일 선생님한테 야단맞을 것 같다, 나중에 만나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서요? 왜 그런 말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김일 선생님이 저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이 관장, 부탁하네. 잘 좀 해 보소. 그 얘기는 레슬링을 정상으로 올려놓고 또 부활을 했으면 하는 그런 부탁을 계속하셨는데 결과적으로 저도 은퇴를 하면서 그분의 그런 뜻을 따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분한테 만나면 야단을 맞을 것임에 분명한... '너, 인마. 그거 뭐냐, 잘해 놓지 않고.' 그런 말씀을 하실 것 같습니다.

[앵커]
그래도 최선을 다하셨죠, 선생님?

[인터뷰]
그렇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마는 제 능력은 여기까지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레슬링이 저 어릴 때만 해도 다 봤었거든요. 온 국민이 다 보다시피했었고 김일 선생님이 박치기 했을 때 희열, 카타르시스를 전국민이 느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프로레슬링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략 두 가지 아닌가 싶은데요. 첫 번째는 지나치게 너무 원초적인 것 아니냐. 좀 나쁘게 말하면 야만적인 게 아니냐, 그렇게 보는 분들이 있고. 또 하나는 미리 각본이 있는 게 아니냐, 그렇게 보는 분들이 있고. 떠나시는 마당에 답을 해 주신다면요?

[인터뷰]
지금 두 가지 말씀하셨는데 좀 원초적인 것이 아니냐. 또 짜고 치는 거 아니냐. 또 관중, 팬들은 그런 분들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레슬링을 보시고 사랑하시고 하는데 이제는 쇼다, 아니다, 그런 것을 떠나야 합니다. 벌써 45년, 50년 전의 일이었었는데. 그런 게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저나 우리 후배들이나 노력을 해도 지금 다시 붐이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라고 봅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도 이미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는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또 제가 링에서 내려왔습니다마는 저 대신 우리 후배들을 사랑해 주신다면 정말 더 멋진 시합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미국 프로레슬링은 어느 정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게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요. 실제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전혀 어떤 사전에 계획한 것이 없이 그냥 100% 실제 상황으로 치러진다는 말씀이신가요?

[인터뷰]
그러니까 지금 프로레슬링이 엔터테인먼트쪽으로 하는 게 있고 또 일본이나 한국쪽은 리얼쪽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면성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프로레슬링은 흥미를 위해서 하기 때문에 규칙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선수를 보호하고. 상대 선수, 또 본인을 보호할 수 있는. 그 내에서 최대한의 기술을 발휘할 수 있게끔 규칙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떤 선수든 만나면 그런 시합을 합니다, 짜고 안 짜고를 떠나서.

링에 올라가면 외국 선수가 오늘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 선수와 링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보면 여러분이 생각하는 시간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만나서 링에 올라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규칙에 따라서 경기를 하면 그런 그림 나오는 거죠.

[앵커]
그러니까 어떤 정해진 규칙의 틀이 있고 그 안에서는 실제로 하신다는 말씀이시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저는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김일 선생님이 저는 평소에 레슬링 기술 말고 제일 어떤 것을 강조하시고 가르치셨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인터뷰]
김일 선생님은 배려라는 것. 관호는 참을 인자를 쓰셨지만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우리 같은 큰 몸들, 또 어떻게 보면 무시무시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배려라는 것을 모를 때는 흉기가 된다는 얘기죠.

[앵커]
저 같은 사람들한테는.

[인터뷰]
그렇죠. 항상 그래서 누구를 배려해라. 또 재미있는 말씀하신 것은 해가 떨어지면 밖에 나가지 마라. 왜 그러십니까라고 하니까 너희들이 나가면 위압감을 준답니다. 어두울 때 나가면 위압감을 주니까 어두워지면 체육관이나 집에 그냥 있어라, 그런 말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앵커]
그래도 밤에 다니셨죠?

[인터뷰]
다니다가 한번 혼난 적이 있었죠.

[앵커]
왜요?

[인터뷰]
제가 정말 어려울 때 20연패를 하면서 좌절에 빠진 적이 있었거든요.

[앵커]
그런 때도 있었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데뷔하고 한 20번을 계속 졌습니다. 그래서 그때 좌절하고 방황을 할 때 암흑가에서 유혹이 들어와서 진짜 밤에 나가서 돌아다녔습니다. 그걸 김일 선생님이 아시고 부르시더니 자식아, 네가 깡패냐, 건달이냐. 너 운동하랬지 어디 가서 힘 쓰고 다니라고 했느냐,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정신을 차리고 본분을 다시 찾았죠. 아, 내가 그건 아니구나. 레슬링을 하러 여기 왔는데 한눈 팔고 다니면 안 되겠다고 해서 그때 부터 1승, 2승 이렇게 하면서 챔피언이 됐었죠.

[앵커]
알고 보니까 다문화가정 어린이들도 도우시고 여러 형편이 어려운 분들 돕는 봉사를 꾸준히 해 오셨더군요?

[인터뷰]
그런 부분도 김일 선생님께서 과거부터 우리가 포스터에 보면 국제프로레슬링이라고 있는데 그 앞에 작은 제목이 소년, 소녀 가장을 위한 또는 독거노인을 위한 또는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프로레슬링, 항상 이렇게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그때 부터 김일 선생님도 하셨고 또 저도 배웠고 또 그러면서 사회에서 로터리클럽이라는 것에 가입해서 조직적인 다문화가정 결혼식도 해 주고 고국보내기 티켓을 마련해서 몇 분씩 해 드리고 또 청소년들. 가장 심각한 것은 그것인 것 같아요. 학교폭력 근절, 추방, 이런 것에 대해서 앞장서고 있습니다.

[앵커]
학교폭력 근절하는 데 있어서도 선생님 같은 분들이 나서야 효과가 있다라고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인터뷰]
불량 학생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건 이렇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심어줬을 때 또 내가 이랬었다 할 때 귀감이 되고 와서 닿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저희가 가는 것을 참 좋아하고 학생들이 레슬링이나 이런 격투기 쪽을 좋아하니까 저희들이 영상을 틀어주고 얘기를 할 때 뭔가 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실제로 만나본 학생들 중에 빗나가려고 하는 학생들 중에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있습니까?

[인터뷰]
그래서 밖에 다니고 하던 친구들도 예를 들어서 후배 아들인데 이 친구가 정말 일진인가 거기에 있었답니다. 저를 만나고 그 친구가 정신을 차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런 얘기를 해 주니까 아버지, 큰아버지 말씀이 맞는다고. 그런 데 손을 딱 끊은 친구도 있고.

[앵커]
큰아버님이 되셨군요? 참 보람있으셨겠네요, 그 순간에. 김일 선생님, 아마 스승님 만나셔도 스승님께서 잘했다, 그동안. 참 애썼다, 그렇게 하실 것 같습니다. 부인께서 지난번에 보니까 은퇴할 때 오셔서 따뜻하게 포옹도 하시고 두 분이 아주 좋아보이시던데 뭐라고 하시던가요, 은퇴한다고 하시니까.

[인터뷰]
똑같죠. 섭섭하고 서운하고 또 어차피 2년간 간병을 하다 보니까 이제는 내려와야 된다는 것을 판단했으니까 잘하셨다, 행복하게 다른 삶도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그런 얘기를 하죠.

[앵커]
만약에 선생님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신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레슬링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인터뷰]
어떻게 보면 이게 숙명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과연 다른 일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다시 태어나도 프로레슬링을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레슬링의 제일 큰 매력은 무엇입니까?

[인터뷰]
매력이 중독성도 있습니다. 팬들하고 호흡을 하면서 또 계속 도전을 하면서 그런 거겠죠, 도전, 성취감. 그런 게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저런 운동을 하려면 정말 갑자기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되고 절제를 해야 되고 또 참아야 되고 그래야 가능한 것, 그 도전이 그래야 가능한 거죠.

[인터뷰]
그렇죠. 계속 도전, 꿈, 목표를 만들고 또 20연패할 때는 한 번 이겨야겠다, 또 한두 번 이기니까 챔피온을 해야 되겠다. 또 동양챔피언이 되니까 세계챔피언이 되어야겠다. 새로운 꿈들을 계속 이뤄나가는 그런 거겠죠.

[앵커]
선생님을 이제 링에서 볼 수 없다고 하니까 섭섭해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고요. 몇 분들이 영상메시지를 보낸 것을 저희가 봤는데요. 한번 잠깐 같이 보실까요. 보시죠.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세계적인 이왕표 선수가 현역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하신다고 하니 우리 팬들의 마음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환상의 드롭킥을 더이상 링에서 볼 수 없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는 영원한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수성, 前 총리]
"김일 선생님께서 이왕표 선생을 소개하시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 선생께서는 우리 민족이 약하고 어려울 때 민족의 혼을 살려주신 분입니다. 이왕표 선생, 화이팅. 우리 모두 당신 사랑합니다."

[심권호, 레슬링 선수]
"정말 은퇴를 하시더라도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되시니까 후배들을 도와주십시오. 이왕표 선배님, 파이팅."

[이봉주, 마라톤 선수]
"40여 년간 레슬링을 이끌어오신 이왕표 큰형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으로 꾸준히 한길만을 걸어오신 큰형님은 분명 우리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셨습니다."

[김병만, 개그맨]
"우리 이왕표 총재님께 제가 격기도를 배웠거든요. 그리고 또 저 어렸을 때 이왕표 총재님의 멋진 레슬링을 보면서 자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총재님."

[앵커]
참 보람있으시겠습니다.

[인터뷰]
과분한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훌륭하신 분들이 좋은 말씀을 해 주시니까. 또 지금도 보니까 가슴이 찡합니다.

[앵커]
이제부터는 어떻게 보면 제2의 인생, 또 새로 시작하는 인생인데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마지막으로 듣겠습니다.

[인터뷰]
어쨌든 저는 레슬링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인연이기 때문에 제가 은퇴를 했지만 아시아연맹의 제가 이번에 회장직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한국프로레슬링을 반석 위에 올려놔야 되겠다. 또 제가 떠나지만 제가 뒤에서 할 일 또 후배들을 끌어주고 또 후진양성을 해서 새로운 스타. 또 저의 명실상부한 후계자를 만들어 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동안 오랜 세월 동안 국민들을 기쁘게 해 주시고 또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시고 새로운 도전해 주신 것에 대해서 제가 국민 대표는 아니지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겠습니다.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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