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가야금에 한평생...황병기 선생 별세

창작 가야금에 한평생...황병기 선생 별세

2018.01.31. 오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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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이 오늘 새벽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가야금 연주자이자 창작 가야금 음악의 창시자, 현대 국악 영역을 넓혀온 우리 음악계의 별이 졌습니다.

김정회 기자입니다.

[기자]
고령에도 명인의 연주는 정갈하고 여운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연을 끝으로 황병기 선생은 다시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석 달 뒤 뇌졸중 수술을 받게 됐고 뒤이어 발병한 폐렴 합병증을 이기지 못한 겁니다.

황병기 선생이 처음 가야금을 접한 건 피란 시절이던 1951년.

15살 소년은 첫사랑처럼 가야금에 빠졌고 곧바로 재능을 드러내며 이름을 알려갔습니다.

집안의 반대로 대학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는데 졸업 후부터 교수와 연주자로 본격적인 음악의 길을 걸었습니다.

1990년에는 평양에서도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황 명인의 업적은 창작 가야금 곡, 현대화된 국악을 시작하고 대중화에 힘썼다는 점입니다.

[황병기 / 국악인 : 새로운 것이 계속 만들어져야지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 옛날 것만 연주하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라 골동품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62년부터 가야금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침향' '비단길' '미궁' 등 명곡들을 낳았고 국내외 음악계는 물론 타 장르 예술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황 명인의 현대적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난 곡이 '미궁'이라면 1974년 만든 '침향무'는 음악 세계의 전환점이자 대중적 인기까지 안겨 준, 고인이 생전에 특별히 여긴 곡이었습니다.

[황병기 / 국악인 : 전혀 새로운 곡을 써야겠다 생각해서 조선조의 전통을 떠나서 신라 시대 때 음악으로 돌아가 보자 해서 쓴 게 '침향무'입니다.]

70년 가까이 매일 가야금을 타며 현대화된 우리 소리 알리기에 나섰던 황병기 명인.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2월 2일입니다.

YTN 김정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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