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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불화했던 '즐거운 사라', 故 마광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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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7-09-06 14:23
마광수.

이름 석 자만으로도 그 정체성이 강렬했지요.

90년대 초 논란의 중심에 섰던 '즐거운 사라' 저자, 소설가이자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였던 마광수 교수가 어제 세상과 이별했습니다.

발견 당시 상태와 유서가 있었던 점으로 미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입니다.

대중에겐 마 교수의 '외설' 논란이 더 익숙할 테지만 마광수 교수는 20대 천재 교수, 윤동주 박사 1호로 추앙받던 인물이었습니다.

1951년생인 마광수 교수는 26살에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28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처음 강단에 섰으니, '천재 교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습니다.

83년에는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요.

윤동주의 시 하면 떠오르는 정서인 '부끄러움'도 마 교수의 연구 결과였습니다.

마 교수는 윤동주 시인에 대해 "잘난 체하지 않는 쉬운 문장으로, 지금 읽어도 이해되는 문학"이라고 평했는데요.

"나와 윤동주 모두 솔직한 시인"이라고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걸까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 논란에 휩싸이면서 그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요.

이 소설은 동시에 마 교수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1989년 발표한 시 '가자 장미여관으로,' 그리고 소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부터 구설에 오른 마 교수.

급기야 성에 대한 솔직한 표현을 담은 92년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는 대학교수가 쓴 음란 소설이라는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던 중 긴급 체포됐습니다.

음란물제작 유포 혐의였습니다.

구속 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며 교수직도 박탈당했고요.

1998년 사면, 복권돼 강단으로 돌아왔지만 이제는 '변태 교수', '음란 작가'라는 꼬리표가 마 교수를 따라다녔습니다.

당시 금서가 된 '즐거운 사라'는 지금도 재출판이 되지 않는 책이 됐습니다.

정서적 고통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퇴임 소감문에 마 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늘이 원망스럽다. 위선으로 뭉친 지식인과 작가 사이에서 고통받는 것이 너무나 억울해지는 요즘이다."

보수 학계에서는 품위가 없다며 지탄받았지만 일각에선 혼자 만의 방식으로 고고한 척하는 세상과 맞짱을 떴다고 마 교수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마광수 / 소설가 (2013년 인터뷰) : 구소련이 왜 망했느냐? 마르크스가 놓치고 있었던 게 뭐냐면 개인이 갖는 쾌락 욕구에요. 평등만 따졌단 말이야.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 이런 뜻에서 미성년자를 (나이를 15세로) 확 낮춰야 한다.]

정년 퇴임을 한 후에는 실제로 우울증에, 생활고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너무 이르게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그래서 아슬아슬했던 마광수 교수의 삶은 이렇게 쓸쓸하게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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