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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 전 죽을 만큼 꿈을 피우겠네" 나훈아의 귀환
    "죽기 전 죽을 만큼 꿈을 피우겠네" 나훈아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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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현주 /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

    앵커

    트로트 황제 나훈아 씨가 11년 만에 컴백했습니다. 빅스타의 컴백에 오랜 팬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전문가 모셨습니다. 백현주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11년 만에 그가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트로트 황태자 나훈아 씨 얘기를 지금부터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세 가지 키워드로 짚어볼 텐데요. 먼저 첫 번째 키워드 보시죠. 남자의 인생, 타이틀곡 제목이죠.

    [인터뷰]
    많은 게 느껴집니다. 나훈아 씨가 11년 동안 얼마나 꿈을 찾아서 방황했었나가 느껴지기도 하고 보통 우리가 가장들의 지친 어깨를 보면 내가 남자인가, 남자 인생을 생각할 여유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면서 사셨을 텐데 나훈아 씨를 보니까 11년간 많은 방황을 했었고 이제는 정말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남자의 인생을 감히 얘기할 만하다고 앨범을 들고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노래 들어보셨죠?

    [인터뷰]
    들어봤죠.

    앵커

    어떻던가요?

    [인터뷰]
    저는 처음에 클릭을 하면서 되게 떨렸어요. 왜냐하면 나훈아 씨를 둘러싼 많은 루머들이 있었잖아요. 목소리를 잃었다라는 루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체 이상설뿐만 아니라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됐대라는 설까지 있었어서 거기다 아마 기억하실 거예요. 지난해 이혼 때문에 법정을 왔다갔다할 때도 기자분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정말 무슨 목소리에 이상이 있나 이런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딱 클릭해서 듣는 순간 건재하구나.

    앵커

    나훈아가 살아 돌아왔다.

    [인터뷰]
    그래서 굉장히 반가웠고 일단 어떤 분들이든 가수분들도 그렇고 스타일을 바꿔야 된다는 집착 같은 것,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데 나훈아 씨는 나훈아 씨답게 돌아왔어요. 그래서 반가웠습니다.

    앵커

    다시 꿈을 찾겠다는 나훈아 씨의 타이틀 곡, 남자의 인생인데요. 어떤 노래인지 함께 들어보시죠. 남자의 인생 잠시 저희가 들어봤는데요. 나훈아스럽다 이런 평가가 많더라고요.

    [인터뷰]
    나훈아스럽다. 트로트 원래 자신의 풍대로 돌아왔고요. 알려진 바로는 50곡 정도를 직접 썼다가 그 안에서 발췌를 해서 모으고 모아서 이번에 나왔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가사를 쭉 보면 광화문사거리에서 봉천동까지 전철 두 번을 갈아타고 간다고 했잖아요. 제가 한창 그때 신체 훼손설이 있을 때 취재를 하러 다녔을 때 나훈아 씨가 한밤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쓰고 나간다는 목격담을 들었었거든요. 이게 혹시라도 이분이 마스크 쓰고 모자 쓰고 직접 봉천동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썼던 경험담의 가사가 아닐까라는 것이 문득 떠오르면서 짠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앵커

    노래 듣고 술 한잔 생각난다는 남성분들의 반응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인터뷰]
    많은 것 같아요. 여성분들도 그렇고요.

    앵커

    나훈아 씨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해요. 죽기 전에 죽을 만큼 꿈을 피우겠다. 이게 얼마나 절박하게 와닿기도 하고요. 어떤 의미일까요, 나훈아 씨께?

    [인터뷰]
    어떻게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관념, 가정이라든지 이런 굴레에 대한 관념보다도 자기의 아티스트적인 기질이 굉장히 강했던 분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사실 꿈을 쉬지 않는 사람은 늘 발전한다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상 예술하시는 분들, 나훈아 씨 정도의 경지에 올라가신 분들 같은 경우에는 꿈이 멈추게 된다거나 꿈을 상실하게 되면 노래에 대한 목적성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훈아 씨로서는 큰 상실감에 빠졌었겠다라는 어느 정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지금 11년 만에 꿈을 갖고 돌아왔다라고 한다면 나훈아 씨가 그동안 여러 곳을 다니면서 목격담도 많이 있었잖아요. 어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목격담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나는 누구인가, 가수로서 누구인가를 찾아서 그 노래로 다 만들어서 돌아온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앵커

    어머님들에게는 아직도 나훈아 오빠잖아요. 70세에도 이런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상당히 신기하게도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나훈아 씨가 남자의 인생 말고도 앨범 안에 담긴 곡들이 상당히 다양하다고 그래요.

    [인터뷰]
    내 청춘이라는 노래도 있거든요. 그만큼 청춘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것 같아요. 청춘이라고 하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20대까지만 생각을 하는데 이제 100세 인생에서 청춘의 지점을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 자신의 느낌을 담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프롤로그 자체가 또 꿈이에요. 피아노 선율이 느껴지는 그런 곡인데 아무래도 꿈은 무엇이었고 나는 어떤 것을 찾았는지를 다 집결한 노래기 때문에 이 음반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크고요.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뮤직비디오도 보셨고 많은 분들이 들어봤어? 나는 들어봤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앵커

    70세 왕년의 스타가 다시 꿈을 키워간다는 것 또 많은 분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두 번째 키워드 어떤 건지 살펴보시죠. 공백이 길었습니다. 11년의 공백이에요.

    [인터뷰]
    너무 길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굉장히 취재 일선에 있을 때 나훈아 씨를 둘러싼 너무나도 많은 루머들, 특히 2006년 연말 공연 이후에 2007년에 갑자기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캔슬하면서 잠적을 하다시피 했잖아요. 그 이후에 계속 걷잡을 수 없는 그런 루머들이 있었습니다. 간통설, 어디 조폭 연루설 등등. 그것을 취재하기 위해서 정말 부단히 다녔었고요. 이분처럼 지난 11년간 가정적으로나 혹은 연예인으로서나 그렇게 부침을 많이 겪은 분이 흔치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너무 너무 당당하고 무사하게 귀환을 해서 가왕이구나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잠행부터 컴백까지 저희가 쭉 정리를 해 보면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데뷔 40주년 공연 이후 칩거한 거고요. 그리고 정말 루머 많았잖아요. 조금 전에는 목소리 잃었다 이런 루머도 있었고 신체 훼손 이런 것도 있었고요.

    [인터뷰]
    그런 것도 있었고요. 지금 실명을 밝혀도 됩니다. 그때 기자회견에서 아니다라고 적극 해명을 했기 때문에 김선아 씨라든지 김혜수 씨라든지 여배우와의 간통설도 있었고 기자회견을 열고서 신체부위 절단설 일축을 했지만 그 이후에 절대 활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루머는 더 큰 루머를 낳았었거든요.

    거기다 이혼까지 두 차례에 걸쳐서 아내분이 불복을 하고 다시 한 번 이혼소송을 걸면서 지난해 재산분할로 마무리될 때까지 정말 많은 부침을 겪었는데 중간에 컴백설이 두 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45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한다더라. 한 방송사의 악단과 같이 구체적인 기획을 한다더라가 있었는데 그때 무산이 됐었고요. 지난해 초에도 컴백 준비를 한다, 50주년 준비를 한다고 했으나 제가 그때 당시 취재를 했을 때 이혼이 마무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지금 준비하고 있지 않다라는 이야기가 돌아왔었습니다.

    앵커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는 지난 2008년 1월 나훈아 씨 기자회견이 아마 나훈아 씨를 방송에서 본 마지막 기억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는데 당시 기자회견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다시 한 번 좀 들어보시죠.

    [나훈아 / 가수 (2008년 1월) : 그렇게 꿈을 담는 겁니다, 가슴에. 가슴은 마르면 안 되니까요. 꿈이 가득할 때 좋은 가사 말도 쓰고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 꿈입니다. 자, 여러분들 중에서 대표로 얘기해주세요. 제가 내려서 5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

    앵커

    연예계에 지금까지 중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 당시 얘기를 다시 한 번 보니까 나는 꿈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요. 11년간 꿈을 어떻게 다시 찾은 걸까요?

    [인터뷰]
    자신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가수로서,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인기를 얻는 연예인으로서가 아니라 나는 가수다. 그러니까 곡을 만드는 사람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 어떻게 앞으로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될지를 굉장히 크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고요. 사실 이런 분들 같은 경우에 주변에 가족들이 힘든 경우가 있고 기자회견 앞서 보셨지만 아내분의 말에 따르면 기자회견을 할 때까지도 가족들은 몰랐다고 그러거든요. TV를 통해서 봤다라고 전해졌었습니다. 그 정도로 나훈아 씨 스스로는 굉장히 죽을 만큼 힘든 터널을 통과해 왔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앵커

    요양원 얘기도 나오던데요?

    [인터뷰]
    그래서 저도 그때 당시에 취재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 조금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있고 하다 보니 건강이 잠시 주춤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기는 해요. 하지만 그 이후에 돌아왔을 때 혹은 매니저 결혼식, 딸 결혼식인가요. 그때 나왔을 때도 건재한 모습으로 왔었기 때문에 잠깐 어디인가 아팠던 모양이다 정도로 그냥 마무리가 됐었고 제일 중요했던 것 신체 훼손설이라든지 목소리 이상설. 그런데 일단 다 건재한 것이 이제 입증이 됐으니까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실지가 궁금한 거죠.

    앵커

    어쨌든 팬들에게 그간 실망을 끼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돌아온 황태자 나훈아 씨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마지막 키워드 확인해 보시죠. 나훈아 씨 돌아오니까 남진 씨가 떠오르더라고요.

    [인터뷰]
    당연하죠. 이분들은 숙명의 라이벌입니다. 왜냐하면 남진 씨가 65년에 데뷔를 했고요. 남진 씨가 68년에 해병대에 입대를 합니다. 그때 나훈아 씨가 데뷔를 했어요. 그리고 남진 씨가 제대를 하고 나니까 나훈아 씨가 인기가 차고 올라간 상태잖아요. 그때부터 한 2, 3년간 치열하게 경합을 했죠.

    그리고 나서 또 나훈아 씨는 다시 입대를 합니다, 공군으로 비밀리에 입대를 해요. 그 이후에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부침을 겪었죠. 김지미 씨하고 결혼하면서 사실상은 활동이 단절이 됩니다. 그동안 또 남진 씨는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랬다 81년에 또 김지미 씨하고 헤어지고 돌아왔죠. 그 이후에 또 가수로서 왕성한 시기를 보여주면서 남진 씨하고 다시 라이벌 구도로 가느냐 했을 때 또 남진 씨는 잠시 주춤한 상황이 됐었고. 아무튼 남진 씨하고 나훈아 씨는 서로에게 그때 당시에 정말 치열하게 싫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보면 서로에게 에너지가 됐던 존재가 아니었나, 정말 운명의 라이벌이 아닌가 생각을 해 봅니다.

    앵커

    서로가 있었기에 존재했던 그런 인연이 아닌가 싶은데요. 나훈아 씨의 컴백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분이 바로 남진 씨입니다. 남진 씨가 뉴스나이트에 출연했을 때 나훈아 씨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그때 영상 다시 한 번 보시죠.

    [남진 / 가수 (김선영의 뉴스나이트 '공감토크' 2015년 12월) : (영원한 라이벌이 나훈아 씨인데요.) 그럼요. 사회적으로, 대중적으로 라이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들의 전성기가 있었고 또 많은 팬들이 더 생겼고 더 뜨거운 열성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 분이 언젠가 같이 공연하는 모습을 꼭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깐요. 그렇게 해서 그때 60년대, 7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들이) 팬들 앞에서 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싶어요. 그분들하고 함께 추억을 꼭 갖고 싶습니다.]

    앵커

    남진 씨 입장을 저희가 다시 한 번 전화로 여쭤봤는데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지역, 정치성향 다 뛰어넘어서 함께 무대에 서는 최고의 무대를 갖고 싶다. 그리고 다시 활동하게 되어서 누구보다 기쁘다라는 게 남진 씨 입장이라고 그래요.

    [인터뷰]
    그런데 한 무대에 서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게 나훈아 씨하고 서로에 영향을 주는 그런 라이벌은 맞지만 너무너무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남진 씨는 요즘에 서글서글한 스타일이고 대중 친화적인 분이라면 나훈아 씨 같은 경우에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 같은 기질이 굉장히 강하고 나만의 음악 세계가 강한 분이어서 조금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두 분이 그렇게 특히 남진 씨가 염원을 한다면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앵커

    어떤 분들은 가수가 앨범 내는데 왜 그렇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되느냐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나훈아 씨가 나이 칠십이 돼서 다시 앨범을 낸 것, 대중문화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인터뷰]
    굉장히 큰 의미가 있죠. 왜냐하면 일단 70세에 신곡을 발표한다, 사실 엄두가 잘 안 나는 게 사실이고요. 특히 이분 같은 경우에 물론 재력이 받쳐주기는 하지만 투자자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곡을 만든다라는 건 더더욱 엄두가 안 나고요. 시장 자체에서 만약에 원만하게 소비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단 나훈아 씨는 저력이 여전하다는 걸 보여주면서 주변에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분들을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형성을 해 준다는 것도 있고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은 변화를 굳이 주지 않더라도 기성 가수도 다시 같은 스타일로 나와도 될 수 있다, 주목받을 수 있다라는 점에서도 우리가 많은 것들을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이런 대목을 짚어보고 싶습니다.

    앵커

    어쨌든 남진, 나훈아 씨가 한 무대에 선다면 정말 많은 분들이 설레는 최고의 무대가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 보겠습니다.

    [인터뷰]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이.

    앵커

    지금까지 백현주 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