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가 있었지라고 기억해주면 고마울 것"...말로 보는 삶

"구봉서가 있었지라고 기억해주면 고마울 것"...말로 보는 삶

2016.08.28. 오전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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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별세한 구봉서 씨는 1960~1980년대를 풍미한 1세대 코미디언입니다.

당시 인기는 엄청났지만, 따뜻한 마음과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늘 간직했던 우리 코미디계의 진정한 큰 어른이었습니다.

구봉서 씨가 남긴 말들을 통해 지난 삶을 되돌아 보겠습니다.

40∼50년 전 우리 사회는 매우 보수적이었고 연예인에 대한 인식도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구봉서 씨는 대중적인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구봉서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공연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 유리창이 깨지고, 선생님과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고 공연을 보러 왔었다"

구봉서 씨는 5분짜리 짧은 라디오 프로도 했는데 거기서 이런 유행어를 낳았습니다.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

생각을 전할 수단이라야 편지나 엽서가 전부였던 시절, 위트 있는 팬 레터도 받곤 했으니 그의 말 한마디,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게 됩니다.

본업인 코미디 프로그램을 할 땐 에피소드가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코너를 할 때는 70자가 넘는 이름을 죽 읊어야 했는데 배삼룡, 양석천 씨는 억지로라도 웃음을 잘 참았지만, 서영춘 씨는 온갖 인상을 써 끝내 웃음이 터졌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남을 웃기는 자신의 직업, 코미디언을 구봉서 씨는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특히 배고프고 힘든 시절, 국민에게 웃음을 줘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코미디는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큰 인기도 얻었고 코미디계의 대부로까지 불렸지만 구봉서 씨의 바람은 소박했습니다.

원망이나 후회도 없이 여느 노인들처럼 사람들이 그저 한 번쯤 자신을 기억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

6년 전 평생의 콤비였던 배삼룡 씨가 먼저 세상을 떴을 때 구봉서 씨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고 하죠.

그리고 그 말대로 배삼룡 씨가 떠나고 6년이 지난 어제 친구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사람들에게 웃음뿐 아니라 큰 울림을 줬던 구봉서 씨.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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