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찍었죠" 세상을 울린 '난곡동 베이비 박스'

"울면서 찍었죠" 세상을 울린 '난곡동 베이비 박스'

2016.05.16. 오후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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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락 / 서울 난곡동 ’베이비 박스’ 운영 목사

[앵커]
서울의 한 교회가 버려지는 아기들을 위해서 몇 년째 지금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미국 대학생들이 이 베이비박스를 소재로 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고 미국에서만 500만명, 전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는 얘기입니다.

이종락 목사님을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앵커]
전화연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어떻게 베이비박스라는 걸 설치해서 운영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신 건가요?

[인터뷰]
처음에는 우리 대문 앞에 버려진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대문 앞에 버려지는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앵커]
대문 앞에 아기를 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죠, 만드시기 전에도요?

[인터뷰]
네, 가끔 있었습니다.

[앵커]
처음이 언제였습니까?

[인터뷰]
2009년에 만들어졌고요. 그걸 생각하게 된 때는 2007년입니다.

[앵커]
처음에 2007년에 버려진 아이를 보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인터뷰]
그때 2007년에 버려진 아이는 저체온이 왔었고요. 태어난 지 바로 안 된 아이었었고요.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었죠. 그 뒤에는 고양이가 살고 있었고.

그래서 그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자칫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안전하게 갖다 놓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야 되겠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앵커]
그러면 900여 명의 아기를 베이비박스를 통해서 거두신 다음에는 어떻게 하십니까?

[인터뷰]
지금 952명이 들어왔는데요. 지금은 9층에서 아이 인수를 해갑니다. 그래서 보육원으로 가게 됩니다.

[앵커]
목사님이 직접 키우시는 아기들도 있다면서요?

[인터뷰]
네.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이들 중에서 키우는 아이들도 있고 찾아갈 때까지 키워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졸업할 때까지 키워주십시오, 취직할 때까지만 키워달라는 그 미혼모들의 부탁에 따라서 키워주는 아이들도 있고 그리고 50가정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8가족을 찾아가서 아이를 찾아가서 키우고 있고요. 보육원에서 찾아간 아이들이 140가족이 찾아갔습니다. 많이 찾아갔죠. 그게 저희들한테 보람이 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다시 부모가 찾아가면서 주로 엄마겠지만, 무슨 이야기들을 하던가요, 어떤 말을 하던가요?

[인터뷰]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요. 그리고 찾아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키우면서도 이렇게 찾아가서 키우니까 너무 행복하다고, 고맙다고 하는 인사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앵커]
목사님이 직접 기르시는 아기들은 몇 명입니까?

[인터뷰]
장애 아동들 20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앵커]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이, 아기들이 주로 버려진다면서요?

[인터뷰]
아니죠, 요즘은 장애 있는 아이들이 별로 안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낙태를 당하죠. 그래서 거의 건강한 아기가 지금 들어오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어떻게 보면 더 슬픈 소식입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버려진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데 1명을 기르는 일도 어려운 일인데 그걸 해내실 수 있습니까?

[인터뷰]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주사랑공동체 생명살리기운동과 함께 마음을 같이 하는 분들의 기도 후원, 봉사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앵커]
이 소식을 어떻게 알고서 미국 대학생들이 알고 와서 촬영을 하고 다큐영화를 만들게 됐습니까?

[인터뷰]
LA타임스의 기자가 직접 왔었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쓰고 감독이 기사를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 되겠다고 하는 결심을 한 것 같습니다.

[앵커]
처음에는 20분짜리 정도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와서 오랫동안 취재를 하고 계속 촬영을 하면서 영화로 만들어야 되겠다라고 했다면서요?

[인터뷰]
네, 처음에 졸업작품을 만들러 왔었는데요. 영화를 찍다 보니까 그 사람의 콘셉트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촬영을 했습니다. 그렇게 140분 분량의 영화가 촬영이 되었습니다.

[앵커]
찍으러 왔었던 미국 대학생들이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인터뷰]
정말 이럴 줄 몰랐다. 이렇게 현실이 비참하고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이것을 세상에 좀 알려서 생명들을 살리는 일에 자기들이 기여를 하겠다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앵커]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미국에서 500만 명이 보고 하면서 목사님이 운영을 하는 데 현실적으로 도움이 됩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에 왔다가 베이비박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한 달에 한 7, 80명 많을 때는 100명 이상 넘게 오고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후원도 하고 같이 또 봉사를 하고 가는 일이 지금도 계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한데요. 목사님의 바람은 어떤 것입니까?

[인터뷰]
부끄러움이 아니고 현실인데요. 우리 체면 문화는 생명을 살리지 못 합니다. 이제는 베이비박스가 없는 나라가 돼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행정적으로 조금 더 보완이 돼서 태어날 태아의 생명도, 태어난 생명도, 미혼모들도 안전한 보호를 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이비박스에서 하고 있는 유기를 사전에 막고 또 미혼모들의 도피처가 되고 장애아이들을 낙태하지 않고 태어나게 해서 안일하게 보호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종락 목사님에게 들었습니다. 목사님 전화연결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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