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국악인 김영임

대한민국 대표 국악인 김영임

2016.05.02.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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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임 / 국악인

[앵커]
5월은 가정의 달이죠.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겨보는 한 달인데요. 1년 가운데 이달 만큼은 효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수십 년 동안 5월이 되면 부모의 은혜를 되새기고 또 효를 다짐하는 자리를 마련해 온 분이 계십니다. 대한민국 대표 국악인 김영임 씨를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가 별명을 어르신들의 아이돌이라고 잡아봤는데요. 보통 이렇게 5월이 되면 효 공연을 하신다고요?

[인터뷰]
벌써 한 2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제가 소리한 지는 45년이라는 그런 세월이 흘렀고 효 공연을 본격적으로 한 거는 지금 한 22년 정도된 것 같아요.

[앵커]
해마다 빠지지 않고 하셨다고요?

[인터뷰]
생각해 보니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 해를 걸렀을 때는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것 외에는 정말 매년 한 번도 빠짐 없이 공연을 해 왔습니다.

[앵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김영임 씨의 데뷔곡이면서 또 이 효공연의 뼈대가 회심곡 아닙니까? 저희가 이 자리에서 잠시 청해봐도 될까요?

[인터뷰]
지금 해 드릴까요. 회심곡은 부모님께서 자식을 길러주시는 그런 대목인데요. 정말 다 하면 2시간 정도를 해야 되는데 여러분들에게 잠깐 들려드리겠습니다.

[앵커]
그러면 잠깐 청해 듣겠습니다.

[인터뷰]
일심으로. 극락세계. 그 부모가 우리를 길러낼 때 어떤. 진 자리는 인자하신 어머님이 누구신고. . 기른 정을 사람마다 생각하면 태산이라도 무겁지 않겠습니다. 나아하아아하아. 오늘 여기 오신 분들 회심곡을 들으시고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일을 합시다.

[앵커]
이야... 정말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이렇게 뉴스 스튜디오에서 노래 부르신 적은 처음이시죠?

[인터뷰]
네, 처음인데 이렇게 들려드릴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앵커]
저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렇게 노래를 청해서 너무 죄송하지만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잘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앵커]
회심곡을 처음 부르셨던 게 20대셨는데 지금은 50대가 되셨잖아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앵커]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인터뷰]
50대 좀 넘었습니다.

[앵커]
그러세요?

[인터뷰]
지금 60초반이에요.

[앵커]
그렇게 안 보이십니다.

[인터뷰]
제가 하고 있는 분야가 서울 경기소리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이 장르가 판소리도 있고 서도소리도 있고 경기 소리도 있는데 김영임이가 맡아서 하는 분야가 경기 소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아리랑, 한오백년, 창부타령 이런 노래들이 구성이 돼 있고요. 그 외의 레퍼토리가 회심곡이에요.

[앵커]
그 가사를 조금만 소개해 주실까요, 어떤 내용인가요?

[인터뷰]
회심곡은 정말 인생에 있어서 어머니 배 안에 열 달 동안 우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늙어 죽어서 그 사후까지, 그러니까 사람의 일대기가 다 들어있는 그런 소리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가 학교에서 도덕을 배우고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만 회심곡을 전체 한번 아이들이 읽어보면 부모님이 나를 어떻게 낳아주셨고 그다음에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가 정말 남에게 죄짓지 않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된다라는 그런 메시지가 들어 있어서 어떻게 보면 참 교훈이 되는 그런 노래입니다.

[앵커]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 목적으로도 들려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었습니다.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김영임 선생님 데뷔 40주년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국악을 시작하신 게 다른 분들에 비해서는 조금 늦으셨던 것 같아요. 19살 때 시작하셨다고요?

[인터뷰]
이게 보면 정말 우리나라 예술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신동이 태어났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참 어려서 거울 보기를 좋아했고 노래하기를 좋아했었어요. 그러니까 옛날 에는 부모님들이 노래하고 춤추면 너무 싫어했잖아요.

정말 시집 잘해서 좋은 남편 만나고 그렇게 풀어나갔죠, 옛날에는. 그런데 거울 보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이러다 보니 집에서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반대하고 이런 과정이 상당히 저에게는 오랜 시간이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정말 엄마, 형제들에게 다시 한 번 우리의 예술을 하는 데 절대적으로 저는 다른 마음 먹지 않고 열심히 우리 소리를 위해서 내가 도전을 하겠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그런 제가 약속을 받았죠.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지금 40년이 넘으셨는데요. 어떠세요. 지금 소감은 정말 잘했다 이런 생각이 드십니까?

[인터뷰]
저는 소리 하기를 잘했고요. 그리고 제가 적절한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지금 또 아들딸, 손녀까지 제가 있기 때문에요. 그렇게 내가 세상 살아가는 이 스토리가 정말 그야말로 우리의 소리가 저의 멘토가 됐고 제가 힘들 때 어려울 때 회심곡이 저를 정말 은인으로서 저를 지켜줬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후회 안 하고 너무 참 우리 소리를 하기를 잘했다. 그리고 제가 소리를 하면서 제가 정말 많은 팬 여러분들에게 받는 성원은요. 제가 어떻게 다 갚아드릴 수 있을지 열심히 소리를 해야 되겠습니다. 너무 너무 모두 감사합니다.

[앵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남편분이 코미디언 이상해 씨인데요. 실제로 30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38년 차.

[앵커]
38년째. 거의 효의 표본이 되셨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인터뷰]
그런데 제가 결혼을 하면서 막내로 자라서 많은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어요. 그래서 결혼을 해 보니까 남편한테 정말 배울 점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그래서 아무리 대궐 같은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는 것보다 직접 우리가 손수 한집에서 정말 같이 살을 맞대면서 같이 사는 것이, 그것이 정말 부모님을 모시는 길이다. 그래서 남편한테 그런 조언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앵커]
그렇군요. 정말 효를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데요. 요즘 김영임 선생님하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들한테도 굉장히 인기더라고요. 최근에 종편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힙합을 선보이셨던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인터뷰]
저는 힘든 것은 물론 힘들죠.장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힙합에 도전한 의미는요, 10대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김영임이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지 존재감을 알리고 싶었고요. 그다음에 힙합과 우리의 국악을 접목시켰을 때 정말 이렇게 잘 매치가 되는구나라는 것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청소년들에게 우리 국악이란 어떤 것인가 좀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서 시도를 했는데요.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이 자리에서 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힙합 랩을 잠깐 청해 들어볼까요.

[인터뷰]
제가 이게 우리나라의 우리 전통 소리 같으면 4시간도 외우는데요. 힙합은 외울 수가 없어서 조금 제가 적어왔어요. 그래서 그 랩에도 빨리하고 더 빨리 하는 속사포랩이 있는데 그 대목을 제가 해 보겠습니다. 음악이 없는데.

[앵커]
음악이 없는 와중에...

[인터뷰]
어쩌고 저쩌고 너네가 뭘 해도 상관 안 해. 마음대로 탄탄대로네. 으르렁으르렁대. 잘했는지를 모르겠어요.

[앵커]
지금 으르렁을 소화하신 거죠?

[인터뷰]
네. 그래서 그 미션이, 프로그램이 두 달 정도 하는데 매번 이제 바뀝니다. 레퍼토리가 바뀌어야 되는데.

[앵커]
미션이 매번 바뀌는 군요.

[인터뷰]
그래서 이 으르렁은 엑소의 으르렁을 가지고 제 파트너 딘딘이 제가 새롭게 할 수 있도록 편곡을 해서 했어요.

[앵커]
약간 국악 느낌도 나면서요.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 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사실은 으르렁을 가지고 제가 경합에서 1등을 한 거거든요.

[앵커]
어떠세요, 국악에 담겨 있는 한의 정서, 힙합에 담겨 있는 정서가 맞닿아있다는 생각도 드시는 거죠?

[인터뷰]
네. 저는 분야만 다르다 뿐이지 이 힙합에서 우리의 정서 그다음에 우리의 한, 우리의 흥겨움.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장르만 다른 것이죠. 똑같은 것 같습니다.

[앵커]
참 많은 경쟁자들 속에서도 소리꾼답게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계신데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렇게 경합하는 거 어렵지 않으세요?

[인터뷰]
저는 너무 에너지를 얻었어요.그리고 정말 대표적인 우리 효 공연을 보면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고 싶었도 굉장히 자제하시는 그런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이 힙합의 민족에서 공연을 할 때 보면 젊은 친구들이 그 젊음의 발산을 못 해서 걱정이더라고요. 그래서 뛰고 같이 울고 웃고 이러다 보니까 정말 내가 이번에 올해 참 잘한 것 같다. 너무 좋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매회 도전을 하면서 좀 보람도 나실 것 같습니다.

[인터뷰]
매번 사실 레퍼토리가 바뀌니까 새롭게 또 받아들여야 되고 그런데 그 과정이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이고 이게 어떻든 예능프로그램이지만 경합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1등을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또 1등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사실 생겨가지고요.

어떨 때는 밤에 잠도 못 자고 가사를 외우느라고. 빨리해야 되고 내가 평소에 했던 가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게 또 완벽하게 제대로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그러한 시간들이 상당히 많이 걸린다는 것.

[앵커]
그렇군요.

[인터뷰]
그래서 굉장히 노력하는 데는 어떤 의미가 있고 참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5월을 맞아 저희 국악인 김영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악인으로서 앞으로 또 도전해야 될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잠깐 밝혀주시죠.

[인터뷰]
저는 정말 우리나라에 계시는 우리 부모님들에게 제 공연을 못 보신 분들도 상당히 많이 계실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그리고 20년 동안 공연을 했지만 그늘진 곳에서 못 오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그분들을 찾아가서 봉사를 하고 있고요.

더 이제 소중한 것은 우리 청소년 국악인들이 정말 이 세상 밖에 나와서 우리의 어려운 소리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 친구들에게 많은 박수를 보내주시고 많은 지원과... 예를 들면 아이돌 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외국에 나가서 애국자인 그런 많은 수입도 벌어들이고. 우리 국악이 앞으로 그런 쪽으로 많이 진보가 됐으면 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앵커]
국악의 한류를 이루겠다라는 거대한 포부를 밝혀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표 국악인 김영임 씨와 함께 말씀을 나누어봤습니다. 오늘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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