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50주년...매력적인 음색 가수 '문주란'

데뷔 50주년...매력적인 음색 가수 '문주란'

2016.02.05. 오후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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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주란, 가수

[앵커]
15살 천재 소녀 가수가 어느새 데뷔 50주년,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설날 앞두고 저희가 오늘 문주란 씨를 초대했습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셨어요.

[앵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하시고요?

[인터뷰]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앵커]
3년 전에 저희 프로그램에서 한번 초대했었는데 그때보다 더 젊어지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제가 봤을 때 오히려 더 좋아지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초대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앵커]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어떻게 지내십니까, 요즘?

[인터뷰]
그냥 제가 노래하는 가수이니까 열심히 노래하는 길만이 최선을 다하는 길이겠죠. 특히 제 자신도 사실 잊고 있었어요. 제가 어느날 갑자기 팬분이 문주란 씨 이제 50년 됐죠, 노래하신 지? 그래서 계산을 하니까 아, 맞다. 제가 3월달 되면 딱 50년이에요.

그래서 아, 맞다. 세월이 참 너무 빨리 간다. 내가 벌써 노래한 지 50년이 됐구나, 자신을 보고 놀랐었어요.

[앵커]
강산이 10년이면 변한다고 하는데 5번이 변하고 대한민국이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이 변했습니까. 그 50년 돌이켜보시면 주마등처럼 쭉 떠오르시겠는데요?

[인터뷰]
많은 일들이 떠오르죠. 그리고 한 살, 두 살 나이가 먹다 보니까 후회스러운 것도 많고 또 요즘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남은 시간을 후회 없는, 자선이랄까, 마음이라도 베품을 많이 가져야 되겠다, 그런 것을 많이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앵커]
지금 화면에 저게 몇 살 때 정도인가요?

[인터뷰]
저게 제가 1966년에 동숙의 노래로 데뷔를 했는데 저때가 나이가 15살 때예요.

[앵커]
저게 데뷔 때입니까?

[인터뷰]
동숙의 노래가 히트하고 난 뒤에 무대에서 노래할 때인가 봐요. 그런데 저 모습은 히트 이후인 것 같은데.

[앵커]
68년쯤이라고 하네요, 지금.

[인터뷰]
67, 68년도겠죠. 제가 68년도에 동숙의 노래로 나왔으니까. 그런데 제가 원래 14살 때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죠. 시민회관 무대에서 첫 무대를 서고 그다음에 지구레코드의 백영호 선생님께 픽업이 돼서 66년에 동숙의 노래가 나왔었죠.

[앵커]
노래 한번 들어볼까요? 정말 아름다우신데요.

[인터뷰]
저때는 솔직한 얘기로 나이가 어리니까 뭐가 뭔지도 모르고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대로만 노래를 할 때니까 감정이 오버되는지 그것도 몰랐을 때예요.

[앵커]
저렇게 앳된 얼굴에서 저렇게 아주 매력적인 중저음이, 아주 성숙해 보이는 음색이 저렇게 나오네요.

[인터뷰]
그때 나이 어린 아이가 목소리가 너무 굵으니까. 물론 제가 목소리가 조금 특이하니까 어필이 되었겠죠, 첫째는. 그리고 또 그당시에는 라디오 전파를 많이 타고 TV가 많이 보급이 안 됐기 때문에 목소리만 듣고는 남자일 것이다, 또는 굉장히 체구도 크고 그런 사람일 것이다 하는 그런 말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어요.

[앵커]
깜짝 놀랐겠는데요, 저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인터뷰]
아름답다기보다 철 없는 아이니까. 저때는 화장도 할 줄도 몰랐어요. 지금은 시대가 분장도 다 해 주시는 분도 계시고 코디 해 주시는 분이 계시지만 옛날에는 그런 게 없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화장할 때는 선배들이 그려 주세요.

그러면 선배분들이 자기의 화장에 맞는 기법을 쓰기 때문에 어떤 때는 눈썹이 막 날아가도록 그리기도 하고.

[앵커]
자기 마음대로군요?

[인터뷰]
그렇죠. 그렇게 선배들한테 의존하고 그랬을 때예요. 옷도 스스로가 사서 입어야 되고.

[앵커]
15살 때 데뷔하는 게 그때로서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을 텐데 요즘에 오디션 프로그램들 보면 15살, 16살. 심지어 12살도 나오고 그러거든요. 어떤 생각 드십니까, 그런 후배들 보면?

[인터뷰]
요즘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참 좋은 시대다. 저는 어렸을 때, 제 고향이 부산이에요. 부산에서 모 방송국의 신인 콩쿠르 무대가 있었어요. 제가 그당시에 나갔었어요.

나가서 불렀던 노래가 라노비아라든지 토니 달라라의. 또는 대니 보이, 현미 씨의 보고 싶은 얼굴, 그런 것을 했었어요. 그런데 조그마한 아이가 목소리 톤이 굵으니까 그 당시 때에도 콩쿠르에서도 화젯거리였어요.

그런데 제가 너무 어린 미성년자니까 전국에서 그당시에 7주 연속 1등을 하면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죠, 옛날 시민회관에 7주 연속자를 전부 1등을 모아서 거기서 1, 2, 3등을 뽑는 그런 때였어요. 그런데 저는 아예 탈락이 됐었어요.

[앵커]
어려서?

[인터뷰]
미성년이니까 무대에 설 수 없다고 해서 못 나갔었어요. 그리고 제가 이후 동숙의 노래로 데뷔를 해서 나왔을 때도 미성년이라고 해서 레코드 방송에서 해 줬는데도 굉장히 애를 많이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앵커]
그런 것에 비하면 요즘은 자유롭게.

[인터뷰]
자유롭죠. 요즘은 마음껏 자기가 정말 예술 끼가 있으면 발산할 수 있으면 다 할 수 있다는 그게 얼마나 좋은지 저는 정말, 나 좀 늦게 태어날걸,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너무 일찍 태어났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앵커]
요즘 후배들 보면서 마음에 가는 친구. 아, 이 친구 참 괜찮다. 이런 후배가 있나요?

[인터뷰]
태연이라는 가수.

[앵커]
소녀시대 태연이요?

[인터뷰]
네. 조금 목소리가 그렇고. 그 후배하고는 한번 주어지는 시간이 있다면 함께 무대 한번 서서 노래하고 싶다, 그런 생각을 가끔씩 해요.

[앵커]
태연하고요? 어떤 노래를 하면 좋을까요?

[인터뷰]
글쎄, 그때는 맞춰봐야 되겠죠. 옛날노래는 할 수 없고 예를 들어서 요즘과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노래. 또는 멋진 팝 같은 것, 그런 노래도 좋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도 한번 하고 싶고. 단 제가 젊음이 없기 때문에 많은 좋은 모습을 옷도 훌렁 다 벗고 나와서 이렇게 나와서 그 모습만 못 보여주는 게 아쉬울 것 같아요.

[앵커]
젊고 아름다운 시절을 오래 보내셨지 않습니까? 저렇게 아름다우셨는데.

[인터뷰]
너무 그때는 제지를 참 많이 받았던 시대였어요.

[앵커]
이런저런 제약들이 많았죠.

[인터뷰]
네, 한마디로 얘기해서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옷도 많이 가슴 드러내면 안 된다, 이런 게 제지받는 시대였어요. 그러니까 마음껏 못 풀어봤죠, 자신을.

[앵커]
이 노래는.

[인터뷰]
이 노래가 동숙의 노래인데 지금 저 사진은 돌아가신, 옛날 문화공보부 장관 홍종철 씨가 문화공보부에서 주시는 상을 받았던. 그분은 돌아가셨죠.

[앵커]
대표곡이 동숙의 노래 말고 백치 아다다도 있지 않습니까? 백치 아다다도 한번 들어볼까요? 듣고 싶어하시는, 향수에 젖고 깊으신 분들.

[인터뷰]
백치 아다다 노래는 제가 참 좋아해요. 곡도 좋고 가사도 좋고. 그런데 제가 1985년도에 이 노래를 제가 리바이벌했거든요. 그런데 역시 멋진 곡은 세월이 몇 십년이 가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앵커]
리바이벌을 한 게 85년이군요?

[인터뷰]
그런데 원래는 나애심 선배님께서 영화 주제가로 부르시고 주인공도 하시고 그리고 원래 리듬도 왈츠 리듬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노래가 어렸을 때 어렴풋이 언니들이 하셨기 때문에 들었던 적이 있어서 이 노래 한번 내가 편곡해서 부르면 참 좋겠다 해서 슬로우 락으로 만들어서 불렀는데 사랑을 받게 됐거든요.

[앵커]
그러니까 리메이크를 1985년에 하셨군요, 원래 있던 곡을?

[인터뷰]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래도 워낙 좋은 곡이다 보니까 잊혀지지 않고 사랑을 받았지 그때 이 노래를 발표하고 아쉬운 게 있었다면 매스컴을 중간 도중에 하차가 됐었어요, 이 노래가. 왜냐하면 대학가에서 데모가에서 가사를 바꿔서 부르는 바람에 도중하차했었던 그런 적이 있었는데. 역시 그래도 좋은 곡은 알려지더라고요.

[앵커]
저는 공항의 이별 좋거든요.

[인터뷰]
그 노래가 82년도인가. 갑자기 생각이...

[앵커]
공항의 이별이 72년도에 발표를 하신 것 같습니다.

[인터뷰]
72년도예요?

[앵커]
공항의 이별도 잠깐 들어봐야죠. 오랜만에 선생님 뵈니까 공항의 별, 듣고 싶습니다. 보시죠. 이것은 뮤직비디오가 또 있습니다.

[인터뷰]
아, 그래요?

[앵커]
공항이 나오죠. 저것을 김포공항에서 찍으셨나 봐요.

[인터뷰]
네, 그때 박춘석 선생님께서 이 노래를 알리기 위해서 카메라맨하고 같이 뮤직비디오를 김포공항 가서 찍었어요.

[앵커]
72년도에 뮤직비디오는 흔치 않을 때잖아요.

[인터뷰]
찍었는데 진짜 공항, 저거 보니까 진짜 저때 공항은 슬픈 공항이었어요.

[앵커]
무슨 공항이요?

[인터뷰]
슬픈 공항. 왜냐하면 저 당시에는 외국으로 이민 떠나시는 분, 이런 분들이 많이 계셨고.

[앵커]
일하러 나가시고.

[인터뷰]
네, 그랬기 때문에 한번 가면 공항에서 울고 그런 모습을 많이 봤었어요.

[앵커]
지금은 놀러가는 장소이지만 그때는...

[인터뷰]
그렇죠. 지금은 아주 행복하잖아요. 연인들끼리 외국 여행 자유롭고. 그때는 외국여행도 자유롭지 못했고 예를 들어서 일본을 가려고 해도 굉장히 까다롭게 비자를 받고 그때 그랬을 때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참 슬펐죠.

[앵커]
그런 정서 같은, 애상 같은 것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표정이나 전반적인 분위기에. 72년도,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의 비디오입니다. 아까 라노비아라는, 15살 때 불렀다는 노래. 그 노래 어떤 노래입니까?

[앵커]
잘 어울리시는데요, 이런 노래요.

[인터뷰]
그 이후에 제가 문주란이 된 이후에 저한테 칸초네 이런 것을 많이 불러라. 옛날에 DJ하셨던 이종환 선생님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셔서. [앵커] 이탈리아 가곡을 불러라?

[인터뷰]
많이 저에게 그런 노래를 추천해 주셨어요.

[앵커]
생각나시는 곡 있습니까, 칸초네 중에?

[인터뷰]
다 잊어버렸어요. 그때 당시에는 많이 연습을 했었고 또 그 당시 때 카사비앙카라는 노래가 있었어요. 화이트하우스라는 노래가. 갑자기 부르니까 다 잊어버렸는데. 이종환 씨가 역사를 하셔서 제가 하얀 사랑의 집이라고 해서. 아주 눈이 많이 내리는 그게 68년도인지 69년도인지 그때 발표를 했었어요.

[앵커]
지금도 어디서 찾으면 찾아서 들을 수 있겠군요?

[인터뷰]
그런데 참 찾기가 힘이 들어요, 제 자신도 잊고 있는 노래, 잊고 있는 레코드들이 많이 있어요, 기억 못하는 것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내년 3월이면 내가 노래 부른 지 벌써 50주년이 됐구나 이것을 잊고 살았거든요.

[앵커]
올해 3월이죠. 이제 한 달 남은 거죠?

[인터뷰]
한 달 남았는데 그것을 사랑해 주시는 팬분들이 기억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주실 때 아, 하는 식으로 많이 잊어버려요. 그리고 노래라는 것은 무대 위에 섰을 때 전신을 거기에 저를 전부 불태워버리니까 내가 몇 년 째 하고 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했다. 이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앵커]
무아지경이군요?

[인터뷰]
네, 무아지경이죠. 오로지 무대 위에 딱 섰을 때는 내 혼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내 자신도 몰라요.

[앵커]
그런 경지에서 노래를 하시는군요?

[인터뷰]
그런데 한두 곡은 목소리가 안 나오는데 시간이 경과가 되고 하면 할수록 힘이 더 나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보면 나의 운명은 노래를 꼭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운명이구나 하는 것을 제 자신이 그런 것을 느낄 때가 참 많이 있어요.

특히 제가 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동심초라는 노래가 있어요. 풀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하는.

[앵커]
조금만 더 해 주시겠어요? 너무 좋은데요.

[인터뷰]
이게 가곡 김성태 선생님이 만든 것으로 기억하는데.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만날 길은 아득하다. 기약이 없네. 맺지 못하고... 하는 이런 좋은 노래가 있어요.

[앵커]
역시 중저음이 제일 매력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그래서 이 노래를 한번 제가 편곡을 해서 백치 아다다를 선보이듯이 다시 한 번 부르고 싶다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올해는 내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앵커]
다음 달에 50주년인데 특별한 계획이 아직은 없으신 건가요?

[인터뷰]
아직은 잊고 있었으니까 계획은 없고. 한 달에 한 번씩제가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니까, 창평이라는 곳에서 하니까 50주년이고 또 그 다음 설 때가 51주년이 되겠죠. 그러니까 그때그때 할 때마다 노래를 할 때마다 나는 영원한 가수다 하는 이런 마음으로 하는 거죠.

[앵커]
오늘 뵙고 말씀 듣고 또 노래 들으면서 정말 영원한 가수구나, 노래를 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분이구나 하는 것을 저도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까 후회되는 것들이 있다고 하셨었는데요. 돌아가실 수 있다면 어디로 돌아가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해 보고 싶으신지.

[인터뷰]
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좀더 공부를 많이 했으면. 공부를 많이많이 해서... 옛날에는 외국에 유학간다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거든요. 정말 많은 외국어도 공부하고. 마음껏 성인의 시간도 가져보고 동심의 세계가 아닌 성인의 마음으로 가져보고 그랬더라면. 그런 게 하고 싶어요.

[앵커]
알겠습니다. 저보다 어른이신데요. 제가 오히려 에너지, 기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요. 아마 보시는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도 그러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명절 앞두고 시청자 여러분들께 명절 선물이 된 것 같습니다.

[인터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앵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인터뷰]
오늘 초대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앵커]
또 뵙겠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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