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토크] 시인 고은

[공감토크] 시인 고은

2015.10.05. 오후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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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 인생 57년 대한민국 대표 시인, 고은 선생님이 지금 제 옆에 나와 계십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도 선생님께서 중절모를 쓰고 나오셨는데 평소에 즐겨 쓰시나요?

[인터뷰]
잘 때는 쓰지 않죠. 집에 있을 때도 쓰지 않죠. 대문에 나와서부터 쓰기 시작합니다.

[앵커]
선생님의 패션 코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또 가을 분위기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인터뷰]
아뇨, 난 옛날에는 시골에서 논과 밭에서 쓰는 챙이 아주 넓은 밀짚모자, 그게 나하고 참 잘 맞았습니다.

[앵커]
선생님께서 모자의 역사도 있으시지만 시도 그야말로 역사입니다. 57년째 시를 쓰고 계신데요. 제가 인터뷰를 좀 찾아보니까 나에게는 종결이 없다,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인터뷰]
나뿐이 아니겠죠. 어떤 나무도, 길가에 있는 어떤 나무도 종결이 없겠죠. 나는 그런 나무 옆에서 살기 때문에 나도 따라서 종결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내가 시작이 없다는 의미하고 똑같죠. 우리는 그냥 살 뿐이고 과정이지, 처음에 기원이 있고, 어디 끝에 결과가 있고 이런 가운데서 노예로 살지는 않다고 생각하죠. 나는 옛날 어디서 시작했는지 모르겠고 앞으로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고, 난 그런 거 전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종결이 없기도 하고.

또 나는 내 천직으로서의 시 행위가(내) 숨이 져서(끝나는 것이) 그것이 시와 함께 숨이 진다(끝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내 시가 더, 앞으로 나를 더 이어줄지 모르죠. 종결... 나는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앵커]
선생님의 시도 흐르고 변화해 왔을 텐데요. 50년 전의 선생님의 시와 지금의 시를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내가 57년 동안, 시를 써오는 동안 실로 가장 황홀한 시대가 있었고 또 구석에 몰릴 때도 있었지만 늘 시의 생명은 유지시켜서 나 같은 사람도 몇 십년동안 이 생활을 하게 되고 이 시라는 인간 영혼의 표현 형식은 우리들 당대로 끝나지 않고 지구가 종말을 할 때, 인류가 다른 생명체에게 지구를 넘겨주고 사라져 버릴 때, 그 이후 또 지구 자체 태양계 자체가 없어졌을 때, 우주의 어딘가에 파동으로서의 시는 늘 있을 거예요.

나는 시는 책에 있는 것에 제한되지 않고 세계 도처에 시가 있다, 그 시를 나는 호용해서 여기에 조금 적어놓을 뿐이다 라고 생각할 때 나의 57년이라고 하는 것은 시의 아주 짧은 기간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앵커]
제가 사실 오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어젯밤에 책을 읽다가 잠에 들지 못 했습니다. 제가 어제 읽었던 책을 갖고 왔어요. 이게 바로 상화 시편입니다. 이게 제가 보니까 선생님께서 아내에게 바친 연시집, 문학 인생에서 처음으로 쓰신 연시집이라고 제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읽고 있는데 많은 글귀들이 있었고요.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을 잠시 제가 읽어보면 아직도 처음이다. 아직도 파릇파릇 떤다. 아직도 가슴 콩닥콩닥 뛰논다. 이런 가슴 설레는 문구들도 있고요. 다른 선생님의 시집과는 다른 사랑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데요. 어떤 의미의 시집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인터뷰]
대개 이성간의 사랑은 연애로서만 얘기하지 않습니까. 많은 연애시들이 전부 연애할 때의 시입니다. 그리고 연애할 때가 아니면 연애가 끝났을 때 상실한 사랑을 노래하고 이런 것인데 우리 김소월도 그렇고 서양의 여러 시인들이 그런 건데요. 이 시는 그런 연애가 아니라 함께 산 삶을 통해서 삶의 역정을 통해서 사랑을 노래한 것이 다르죠.

이것은 부부로서의 시인데요. 나는 부부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연애가 따로 있고 결혼은 연애의 무덤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동안에 사랑은 늘 끊임없이 샘솟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왕에 살 바에는 그렇지 연애할 때의 사랑과 결혼할 때의 부부 유지의 생활 이것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면 나는 둘 다 의심스러워요.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사랑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꺼내서 불러놓은 이것이 이 시집일 거예요.

그래도 외국에서도 소문이 났던지 지금 번역 중입니다. 외국에서도 이게 나갈 것 같습니다.

[앵커]
선생님과 아내분의 사랑에 대해서 많은 분이 공감을 하고 그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인터뷰에서 아내 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던데요. 아내분은 선생님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인터뷰]
내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내에 의해서 존재하죠. 아내가 없었으면 이 세상에 있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또 아내가 아니면 나의 대부분의 문학의 업적이라고 할까... 이런 것이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런 점에서 아내가 나의 운명의 거의 다를 차지하지요.

[앵커]
선생님의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아내분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들어보니까 또 다른 큰 부분중 하나가 바로,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술이라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약주를 좋아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아내를 술과 견주어서 얘기하고 싶지 않고 술 역시도 내 아내하고 견주어서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나는 술에 사로잡혀 본 적은 없습니다. 이를 테면 술에 빠져있거나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그런 것이 없고 특히 집에서는 아내와 둘이 점심을 먹을 때 반주 한 잔은 포도주를 서로 하지만 일체 술이 없습니다. 서재에서는, 그리고 나와서 친구를 오래간만에 만났을 때 그 친구가 바로 술과 동의어가 되지요.

[앵커]
선생님의 시 인생이 57년입니다. 시간이 그간 여러 흐름에 따라서 흘러왔을 거고요. 선생님께서 과거에 젊은 시절에 많은 아픔을 겪으신 것으로 저희가 알고 있는데요. 과거에 선생님의 인생을 쭉 돌아봤을 때 꼭 여쭤보고 싶은 게 내 인생을 뉴스를 꼽자면 어떤 것인지 먼저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은 선생님의 뉴스, 1945년 8월 15일이네요. 이날이 광복절인 것 같은데요.

[인터뷰]
1945년 8월 15일우리 한반도가 외세의 식민지 체제에서 해방된 날이죠. 그래서 그건 내 운명에서 최대의 뉴스입니다. 이런 걸 생각할 때는 아주 소름이 끼치는 아슬아슬한 존재 의식을 갖게 되는데요.

첫째 우리 말을 찾았고 우리 문자 한글을 찾았고 또 하나는 내 이름도 옛날에는 다른 나라 식 이름이었어요. 그 이름도 다시 찾았고 내 존재를 시작한 날입니다. 그래서 그런 존재의 원점이 되는 이 날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게 내 생애의 최대 뉴스가 됐고 그리고 그 언어로 그때 찾은 모국어로 지금 내가 모국의 시인이 되어서 몇 십 년을 사는 것이죠. 그래서 1945년 8월 15일이라고 하는 이날에 생긴 위대한 사건이야말로 내가 숨을 마칠 때까지 내 가슴에 품어야 할 뉴스입니다.

[앵커]
대한민국의 역사의 가슴에 안고 정말 희노애락을 지나서 많은 젊은이들 또 많은 분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시를 계속해서 전해 주시고 계시고 앞으로도 더 긴 시간, 그런 시를 저희가 접했으면 하는 제 개인적인 바람도 큰데요.

요즘 청년들이 취업도 안 되고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실직해서 큰 절망에 빠지신 분들도 계시고요. 선생님께서 시를 통해서 희망을 전하신다면 어떤 시를 혹시 전하고 싶으신지요.

[인터뷰]
시가 아주 긴 시도 있습니다. 일주일이 걸려야 끝나는 시도 있고 두어줄 짜리 한 줄짜리 시도 있는데 그런데 나는 이런 시를 하나도 외우지 못합니다. 내가 쓴 것을요. 나는 다른 사람의 시도 외우지 못하고 그런데 짧은 거니까 하나 생각나는 게 있는데 내가 1960년대 수원에 원천호수라는 곳에 놀러갔어요. 친구들이 외국에 떠날 때인데 환송회를 하기 위해서 원천호수까지 가서 거기서 술을 같이 먹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물이 있으니까 물가에 작은 배 있지 않습니까. 노 젓는 배고기 잡이 하는 배가 있기에 그걸 타고 최초로 노를 저어 봤어요. 그런데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어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그때 쓴 시가 있어요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앵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바라보았다.

[인터뷰]
그러니까 아마 노를 놓치지 않았으면 노를 젓고 가는 그것만 바라봤을 거예요. 노를 놓쳐서 이거 어떡해 하면서 보니까 넓은 물이 바라보였어요. 세계를 만났죠. 자아의 위기 이런 걸 통해서 세계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낡은 방식으로 설명을 하면 이렇게 되겠죠.

[앵커]
지금까지 대한민국 대표 시인 고은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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