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카자흐스탄의 별' 데니스 텐...애도 물결 넘쳐나

떠나는 '카자흐스탄의 별' 데니스 텐...애도 물결 넘쳐나

2018.07.22. 오후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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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욱 / 카자흐스탄 알마티 고려문화원장

[앵커]
카자흐스탄 스포츠 영웅이자 또 의병장의 후손인 데니스 텐의 장례식에는 한인뿐 아니라 수많은 카자흐스탄인들도 찾아가 애도했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현지의 고려문화원 운영을 맡고 계신 김상욱 원장 연결해서 데니스 텐과 관련한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여기는 알마티입니다.

[앵커]
오늘 연결 감사드립니다. 먼저 장례식 장소가 알마티 시내 스포츠 센터라고 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인터뷰]
발라샥 경기장은 작년에 거기서 동계 유니버시아드 경기가 열린 곳이고 또 12년도에는 동계아시안게임이 열렸던 곳이고. 또 무엇보다도 고인이 된 데니스 선수가 금메달의 꿈, 또 피겨스타의 꿈을 키웠던 곳입니다.

지금도 많은 데니스의 후배들이 거기서 연습을 하면서 구슬땀을 흘리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카자흐스탄의 피겨인, 또 빙상인들은 정말 그 장소를 잊을 수가 없죠. 그래서 이번 장례식은 바로 그 발라샥 실내체육관, 아이스링크가 있는 실내체육관에서 열리게 됐습니다.

[앵커]
데니스 텐 선수가 평소에 연습을 하던 곳이다, 의미가 참 깊은 곳인데 오늘 장례식이 카자흐스탄 문화관광부 그리고 알마티 시민장으로 치러졌다고 들었습니다.
장례식 분위기는 어땠나요?

[인터뷰]
한마디로 말하면 추모객들이 너무 많이 와서 원래 9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습니다마는 훨씬 그 전부터 알마티 시민, 우리 고려인 동포, 많은 분들이 발라샥 경기장, 장례식이 엄수된 그곳으로 모였습니다.

그래서 알마티 시내는 꽃집에 꽃이 떨어져서 조문객들이 꽃을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많은 분들이 장례식장에 오셨고 또 애도해 주셨습니다. 조문객들이 약 2만 명이 넘는 많은 조문객들이. 근래 최근 몇 년 동안 카자흐스탄에서 보기 어려운 많은 조문객들이 장례식장에 와주었습니다.

[앵커]
데니스 텐 선수가 그만큼 평소에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평소에도 카자흐스탄의 별이다 이렇게 불려왔다고 들었습니다. 데니스 텐 선수, 카자흐스탄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었는지 그리고 특히 동포 사회에는 어떤 존재였는지 궁금한데요.

[인터뷰]
데니스 선수는 사고 소식을 접한 많은 시민들 그리고 우리 동포, 고려인들의 SNS나 인터넷 상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데니스 선수는 우리 카자흐스탄 모든 시민들의 영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데니스 선수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많이 따고 꼭 그것뿐 아니라 정말 우리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자존심 그리고 피겨, 구소련이 해체되고 난 뒤에 카자흐스탄이 독립하고 난 뒤에 그들의 마음속에서 짓밟혔던 자존심 이런 것들을 데니스는 피겨 분야에서 정말 세계적인 국제적인 실력을 갖춘 선수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또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또 그 뒤에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그럼으로 인해서 우리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자존심을 세워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 스타를 떠나서 우리들의 영웅이다라고 고인을 추모하는 많은 팬들이 그렇게 말할 정도로 정말 대부분의 카자흐스탄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고려인 동포 사회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정말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누구냐면 고려일보 전 극장장을 지내셨던 겐나지 선생님 같은 경우는 장례식을 참석하시고 난 뒤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데니스와 같은 영웅은 앞으로 당분간 우리 곁에 다시 다가오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량으로, 실력으로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인품과 끈기와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런 부분들은 과거 우리의 부모 세대가 1937년 여기 강제이주 당했을 때 중앙아시아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 근면, 성실성들을 데니스는 우리에게 보여줬기 때문에 정말로 그는 우리의 영웅이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말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고려인 동포 사회는 정말 큰 애통, 또 비탄에 빠졌습니다.

[앵커]
원장님, 그렇다면 평소에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데니스 텐 선수의 모습은 어땠는지 이것도 궁금한데요.

[인터뷰]
데니스 텐 선수와 저는 개인적으로 벌써 10여 년 동안 여러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데요. 데니스 선수는 정말 빙상장을 벗어나면 우리와 똑같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해맑은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데니스 선수는 단순히 해맑은 청년이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민긍호 선생, 한일 의병장이었던 민긍호 선생의 원주에 있는 산소를 다녀와서는 산소에서 조그마한 돌을 주워왔어요.

그 돌을 항상 자기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기에 임하고 또 연습할 때 자기는 꼭 할아버지 산소에서 주워온 조그만 돌을 만지작거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도 다스리고 또 나는 항일 의병장의 손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대범하게 더 담담하게 더 잘해야 된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도 하고 또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기도 하고 또 그 돌을 만지면서 자신은 늘 항일 독립운동의 후예라는 그런 자긍심을 늘 가지고 있었던 그런 청년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자기는 할머니가 끓여준 미역국이 제일 맛있다고 그렇게 말할 정도로 정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우리의 20대, 또 우리의 20대와 같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모습도 많지만 할머니가 끓여주는 그 미역국을 꼭 먹고 또 그게 가장 맛있다고 말하는 그런 해맑은 청년이었습니다.

[앵커]
이런 데니스 텐 선수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면서 카자흐스탄 현지 한인사회도 참 마음 아파하시고 있을 텐데 지금 한인사회 규모는 어느 정도고 또 위상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인터뷰]
카자흐스탄에 있는 한인사회는 크게 1947년도에 스탈린에 의해서 강제이주해서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렸던 고려인 동포사회가 있고 그리고 또 하나는 한-카, 한-소. 소련과 수교가 되고 소련의 해체와 함께 한국에서 현지에 건너온 많은 우리 교민, 흔히 교민이라고 하죠. 내국인 그리고 한인들이 있습니다.

그 한인들의 규모는 지금 현재 약 1000명 정도 규모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고려인 동포는 3만 명 정도가 알마티 중심으로 살고 있고요. 교민이라 불리는 한인은 1000명정도밖에 아직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기업들이 많이 진출했고 또 그 기업에 우리 고려인 동포들이 기업을 위해서 일하고 있고 그 기업들이 34개 정도 우리 한국의 기업들이 진출해서 활발히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요.

또 여기에는 한인식당, 식품점, 여행사 많은 한인 개인 사업자들이 여기서 사업을 하고 있고 또 그러면서 우리 고려인 동포 사회와 함께 카자흐스탄과 한국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데 우리 한인들도 굉장히 많은 일조를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까 고려인들에 대한 현지에서의 위상이나 평은 높고 좋기로 유명한데 카자흐스탄과 한국이 국교 수립하고 난 뒤에 이 땅에 들어온, 이제 7, 8년 됐죠, 이제. 우리 한인들도 카자흐스탄 내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위상이 높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데니스 텐 선수에 대해서 고려문화원의 김상욱 원장과 함께 얘기 나눠봤습니다. 원장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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