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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상징에서 히틀러?...두 얼굴의 '아웅산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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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7-09-15 14:39
지금 미얀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마을 전체를 불태워 사람이 죽고, 목숨을 걸고 미얀마를 탈출하는 난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는 시위 현장에서 '히틀러'에 빗대어지고 있습니다.

로힝야족 거주지인 라카인주에서 일어난 이번 탄압으로 UN 추산 1,000명이 사망했고요, 4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불교국가 미얀마에서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이 수난을 겪은 건 '해묵은 문제'입니다.

표면적으론 종교 문제로 보이지만, 세계사 속에서 깊은 적대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 통치할 때 미얀마의 독립을 막기 위해 이 로힝야족을 이용한 전력이 있습니다.

원래 방글라데시에 살던 로힝야족을 일부러 미얀마로 이주시켜 많은 혜택을 줬고요. 이런 과정에 로힝야족이 미얀마 불교도를 학살하는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1948년 미얀마가 독립한 이후, 로힝야족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했고요.

불법 체류자가 된 로힝야족은 계속해서 미얀마 내에서 박해받아 왔습니다.

군부 정권이 지배하던 미얀마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권력을 쥐게 되면서 2015년부터 군부 독재가 종식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는 '인권의 아이콘'입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가이자 국부인 아웅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여사는 원래 유학 중 만난 영국인과 결혼해 살림하는 평범한 전업 주부였습니다.

1988년 우연한 기회에 군사 통치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해 감동적인 연설을 펼치면서,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됐습니다.

이후 수차례 투옥과 가택 연금을 반복하면서도 비폭력으로 일관하며,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끌었습니다.

이런 평화로운 인권 투쟁의 산물로 1991년 노벨 평화상도 수상했지요.

이때도 가택에 연금돼 남편과 두 아들이 대신 상을 받는 장면은 화제가 됐습니다.

수치 여사는 외국인 배우자를 두고 있어서 법에 따라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가 고문 겸 외무 장관을 맡으며 사실상 미얀마의 막후 실세로 활동 중입니다.

인권의 아이콘 통치 아래 '인종 청소'에 준하는 인권 탄압이라…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죠.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 수치 여사는 방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수치 여사에 대해 "군부 잔재가 남아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과 심지어 "정권을 잡고 나니, 군부와 결탁했다."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비난도 큽니다.

수치 여사의 '노벨 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서명에 42만 명이 동참했고요.

'노벨 평화상'을 받은 동료의 비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984년 평화상 수상자인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최고위직에 오른 정치적 대가가 침묵이라면 너무나 잔혹하다." 라고 비판했고요.

프란치스코 교황도 "로힝야족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유엔은 이번 로힝야족 탄압 사태를 '인종청소'로 규정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 유엔 총장 : (인종청소라고 보는 건가요?) 다른 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죠. 로힝야 족의 3분의 1이 나라를 떠나야 했어요.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수치 여사의 첫 공식 발언은 이번 로힝야족 사태는 '가짜 뉴스'라는 것이었습니다.

코너에 몰리자 오는 19일 TV 연설에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는데요.

수치 여사의 입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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