넴초프 오늘 장례식...푸틴에 맞선 정치인·기자 줄줄이 의문사

넴초프 오늘 장례식...푸틴에 맞선 정치인·기자 줄줄이 의문사

2015.03.03. 오후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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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인터뷰:안나 두리츠카야, 넴초프 애인]
"보리스 넴초프는 다리 위에서 살해당했어요. 총격이 등 뒤에서 가해졌기 때문에 범인이 어디서 나왔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밤 여자친구와 함께 다리 위를 걷다 괴한에게 피살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의 장례식이 오늘 열렸습니다.

1990년대 부총리로 재직했던 넴초프는 부총리에서 물러난 뒤 거리 시위와 관료 부패 사건 폭로를 주도했습니다.

2000년 푸틴 대통령 당선 이후 야권 지도자로 변신해 푸틴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해 왔습니다.

넴초프는 피살 직전 인터뷰에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인터뷰:보리스 넴초프, 피격 직전 인터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해 광적이고 공세적인 전쟁을 시작해 러시아에도 위기를 몰고 왔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한 러시아 야권은 넴초프의 피살이 '정치적 보복'이라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습니다.

사건 직후 '끔찍한 범죄'라는 성명을 낸 푸틴 대통령은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푸틴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인터뷰:드미트리 구드코프, 러시아 야권 정치인]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테러입니다. 정치적 살해이고, 테러 공격으로 진상 조사에 나서야 합니다."

[인터뷰: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넴초프는 러시아 무장세력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공개할 예정이었습니다."

넴초프의 피살 사건에 대해 각국의 비난과 애도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넴초프의 죽음을 '비열한 살인'이라고 비난하며 푸틴 대통령을 향해 '이번 암살과 가해자를 확실히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넴초프를 '인권 수호자'로 칭송하며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인터뷰: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충분한 수사와 독립적인 수사를 촉구합니다. 러시아에서 언론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정보의 자유, 기본적인 시민권과 시민의 자유가 4~5년 전, 심지어 10년 전보다 나빠졌습니다."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에서 푸틴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적인 넴초프 전 부총리가 무참히 살해되면서 러시아 사회는 극심한 공포에 뒤덮이고 있습니다.

[인터뷰:빅토리아 마주르, 모스크바 시민]
"너무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러시아가 이제 파시즘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게 확실해졌습니다."

[인터뷰:마리아 립먼, 프리랜서 분석가]
"보리스 넴초프 암살 이후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더 나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요."

충격이 컸던 걸까요?

넴초프가 암살당할 때 유일한 목격자였던 여자친구 안나 두리츠카야는 침묵 끝에 간신히 입을 열었는데요.

넴초프가 뒤에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범인이나 차량 번호판을 보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안나 두리츠카야, 넴초프 애인]
"범인을 보지 못했어요. 총격 후 뒤를 돌아봤을 땐 밝은색 승용차만 봤고 도망가는 차량 번호나 모델은 보지 못했어요. 진짜예요. 옆에 있던 제설 차량 운전자에게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고 그 운전자가 경찰서 번호를 알려줬어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 두리츠카야는 넴초프와 3년 전 휴가지 터키에서 만나 바로 연인이 된 사이입니다.

넴초프의 암살을 두고 정치적 살인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둘의 나이 차이가 32살이나 나는 만큼 치정극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총알 6발 이상을 난사 당한 넴초프 옆에 있으면서도 단 한 발도 스치지 않은 점을 들어 현지 언론은 두리츠카야의 연루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민족주의 정치인은 의회에서 "넴초프의 젊은 연인은 처음이 아니다. 자주 파트너가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두리츠카야의 엄마는 딸이 순수한 사랑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이나 두리츠카야, 넴초프 연인의 어머니]
"어린 나이에 사랑에 빠진 제 딸 아이가 평생을 갈 사랑이라고 여길 만큼 크고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넴초프가 사람으로서 좋았고 넴초프가 딸을 대하는 태도도 좋았습니다. 저는 넴초프에 대해 그 어떤 나쁜 말도 할 수가 없어요."

넴초프 피살로 그동안 의문사한 푸틴 대통령의 '정적'과 언론인들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04년 7월, 경제지 포브스 러시아판 편집장이던 러시아계 미국인 폴 클레브니코프가 피살됐습니다.

부패한 정부를 고발했던 그는 러시아 '100대 갑부 명단'을 발표한 뒤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반정부 성향의 신문 기자이던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도 2006년 10월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서 총에 맞아 살해됐는데요.

안나는 체첸인들에 대한 러시아군의 인권 유린과 부패 관료에 관한 기사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KGB 요원 출신으로 영국에 망명한 뒤 푸틴을 강도 높게 비판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도 2006년 급사했습니다.

이른바 '홍차 살인'으로 알려진 의문의 죽음이었는데요.

전직 정보요원들에 따르면 당시 누군가가 호텔에서 리트비넨코가 마시던 차에 방사성 물질을 몰래 넣었다고 합니다.

리트비넨코는 생전 푸틴 대통령이 부패했다고 거듭 비난했고, 푸틴이 '소아성애자'라고 주장했습니다.

2009년 1월엔 인권 변호사 스타니슬라프 마르겔로프와 기자 아나스타샤 바부로바가 함께 피살되기도 했는데요.

모스크바 시내에서 인권 문제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끝내고 지하철을 타러 가던 중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인권단체들의 항의 시위를 촉발하며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09년 7월에는 러시아 대표적 여성 인권 운동가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가 살해됐습니다.

7월 체첸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납치된 에스테미로바는 이후 머리에 총상을 입고 도로 옆에 버려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푸틴의 눈 밖에 나면 누구라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죽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스탈린식 공포 정치는 끝나지 않은 걸까요?

푸틴의 정적이 하나둘씩 사라지면서 러시아의 긴장감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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