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52] "유언장을 쓰고 입관, 얼굴은 눈물범벅" 임종체험 해보니

[해보니 시리즈 52] "유언장을 쓰고 입관, 얼굴은 눈물범벅" 임종체험 해보니

2018.10.20.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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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52] "유언장을 쓰고 입관, 얼굴은 눈물범벅" 임종체험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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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고 딱딱한 관 안에 들어가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족족 차갑게 식어버렸다. 슬며시 눈을 떠봤지만 관 속에는 어둠만이 존재했다. "아 이제 정말 죽는구나… 아니 나는 이미 죽어버렸구나"

피하고 싶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 머나먼 미래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일. 나에게 죽음이 주는 인상이다. 여전히 낯선 그 마지막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 임종체험에 참여해봤다. 죽음이라는 손님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를 의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걸까"
임종체험을 위해 센터를 방문했던 날 현장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80대 노인부터 20대 청춘남녀까지 모두 33명이 모였다.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은 남녀노소 세대 불문인 이곳에 잘 어울리는 표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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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한 이후 영정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뽀샤시하게 찍어주세요" "어디까지 나옵니까?" "혹시 눈 안 감았나요?" 사진을 찍는 내내 질문이 쏟아졌다. 사진사님은 편안하게 활짝 미소지으라며 분위기를 풀어주셨다. 슬픔이 가득한 장례식장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밝고 행복한 영정사진이 낫다는 조언이었다.

나의 마지막 순간을 배웅해줄 이들에게 기억될 단 하나의 사진이라고 생각하니 떨리고 어색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동안 찍어온 수많은 증명사진이 무언가 '시작'을 위한 것이었다면, 영정사진은 '끝'을 위한 사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런 걸 왜 하느냐"
"남은 삶이 하루든 십 년이든 마음 편히 그리고 가치 있게 살기 위한 과정입니다" 영정사진 촬영이 끝나고 이어진 죽음 강의, 임종체험의 의미를 묻는 이에게 이날 강의를 맡은 정용문 센터장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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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가량 진행된 강의에서는 죽음과 관련한 다양한 내용이 이어졌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안 죽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데 다들 죽음에 대해서는 잘 얘기하지 않아요" 짧은 다큐멘터리와 함께 죽음이란 무엇인지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여보, 고마워! 사랑해! 해보신 적 있으세요?" 질문을 받은 70대 노인은 "별로 없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표현이 서투른 사람도 표현해야 하는 순간, 따뜻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죽음을 앞둔 우리는 그렇게 사랑, 화해, 용서를 더 많이 못 한 것에 안타까워했다.

"1시간 후에 저희는 다 같이 죽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웃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원 없이 박장대소하는 시간. 마음껏 웃다 보니 긴장됐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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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끝나니 앞서 촬영했던 영정사진이 눈앞에 놓였다. 장례식장에서나 보던 검은 띠가 둘린 영정사진. 그 안에서 환하게 웃는 나의 얼굴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강남 노인종합복지회관에서 단체로 방문하신 어르신들도 서로 사진을 구경하기 바빴다.

"어머 나처럼 안 보여. 어색하다 얘" "어휴 이 정도면 곱게 잘 나오셨네" 서로의 마지막 순간을 번갈아 보며 덕담이 오고 갔다.

"이렇게 죽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입관체험을 위해 이동한 다른 층에는 수많은 관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관 위에는 수의가 놓여있었고 자리마다 전자 촛불과 휴지, 펜이 함께 있었다. 관의 크기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는데, 180cm 이상이거나 체격이 크면 더 넓게 제작된 '특관'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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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는 작은 대화나 웃음소리도 듣기 어려울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가 공간을 메웠다.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는 순간을 앞두고 잠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눈을 감자 그동안 행복했던 일, 후회스러웠던 일, 내가 받았던 사랑과 하지 못한 사과들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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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짧은 명상 뒤 본격적으로 유언장을 작성했다. 망설임으로 잠시 펜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내 담담하게 내용을 적어갔다.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삶을 살아왔는지,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은 무엇인지,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답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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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유언장을 작성하던 중 사람들의 환한 미소가 담겨있는 영정사진이 늘어선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었지만 눈물샘은 고장이라도 난 듯 계속해서 눈물을 쏟아냈다.

유언장 작성이 끝나고 여덟 명 정도가 자신의 유언장을 낭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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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신 게 너희한테 너무나 미안하다. 엄마는 이제 너희 아빠를 만나러 가려고 한다"

"엄마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살아오면서 제일 고마운 사람은 엄마였어. 항상 나한테 힘이 되어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 한 게 너무 아쉬워"

"여보, 당신은 정말 나무뿌리 같은 사람이었어. 여보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 힘든 삶을 살았을 거야. 평생 고맙고 사랑해"

"사랑하는 딸아. 천국에서는 더욱 너그러운 아빠가 되어주마. 아빠의 장기 중 눈, 간, 콩팥 등 좋은 상태의 장기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혹 연명치료가 필요한 경우 인간답게 품위 있게 가고 싶은 아빠의 심정을 헤아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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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낭독하는 순간, 목이 메어 중간중간 낭독을 멈추는 이들도 많았다. 흐느끼며 유언장을 낭독하는 사이 여기저기서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나 역시 유언 낭독을 들으며 터져 나온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구나"
유언 낭독을 마치고 수의를 입었다. 주머니가 없는 수의를 입은 순간, '공수래공수거'라는 흔한 말이 피부로 온전히 느껴졌다.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안경이 다 무슨 소용일까. 안경을 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관 전 안경을 책상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기조차 어려운 관에 들어가 누워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여러분은 죽습니다. 장기의 기능이 하나둘 멈추고 숨도 멎고 죽을 것입니다. 가슴은 답답하고 죽음이 느껴져요. 숨이 멎었습니다. 죽었습니다. 죽은 여러분의 시신을 장례를 치르겠습니다. 관 뚜껑을 닫고 화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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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뚜껑이 닫히고 뚜껑을 내리치는 망치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과 결별하는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죽음이란 참으로 무섭고 두렵고 슬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지며 슬픔이 몰려왔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씩 평온함이 찾아왔다. 겨자씨만 했던 평화는 마음속에서 조금씩 커졌다.

약 10분간의 입관체험이 끝나고 관뚜껑이 열렸다.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고작 10분일 뿐이었다.

[해보니 시리즈 52] "유언장을 쓰고 입관, 얼굴은 눈물범벅" 임종체험 해보니

"전환점"
이날 임종체험을 한 김영희(33·여) 씨는 "임종체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죽음을 겪고 나니 더 마음이 차분해진 것 같다"며 "지금부터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차근차근 마지막을 준비해 나가고 싶다"고 소회를 전했다.

홍정수(29·여) 씨 또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정말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에 가면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아빠를 한 번 더 안아주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임종체험은 기껏해야 2시간이었지만 삶의 전환점이 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죽음을 들여다볼수록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작은 단서를 구할 수 있었다.

지난해 한국에서 사망한 사람은 28만 5천여 명. 새로 태어난 사람은 35만여 명이다. 우리는 모두 누구나 시한부, 유한한 인생을 살아간다. 죽음은 삶과 붙어있어 벗어날 수도 없다. 마지막 순간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는 방법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다음은 임종체험을 진행하는 효원힐링센터 정용문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Q.보통 어떤 분들이 주로 임종체험을 찾아오시나요?.
A.중학생부터 노인까지 세대에는 구분이 없습니다. 최근 가장 많이 찾아오는 연령대는 20대로 전체 체험자의 약 50% 정도입니다. 20대에 진입하고 인생의 진정한 출발선에 서게 되며, 어떤 가치관을 지닌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은 시기라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떤 시대보다 높은 것 같아요.

Q.현재까지 임종체험을 한 사람은 총 몇 명 정도 되나요?
A.현재까지 총 504회의 임종체험을 진행했고, 참가인원은 약 19,0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2018년 10월 16일 기준)

Q.기억에 남은 참가자가 있다면?
A.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40대 여성이었는데 삶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하고 찾아오신 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 전에 죽음이 얼마나 두려운지 체험하러 오셨는데 상담 과정 중에 1억 원이 넘는 빚이 있어 고통스러워하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유언장을 작성하며 남겨질 아이들에 대한 생각하시고, 다행히 극단적인 선택은 내리지 않기로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로 가족들과 찾아오신 분도 계셨습니다. 실제 죽음을 앞두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워하셔서 가족들과 관계가 너무나 나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체험을 하며 가족들도 자신만큼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족들에게 사과하며 관계가 회복된 사례도 있습니다.

Q.임종체험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단지 죽음을 준비하고 체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앞으로의 삶을 잘살자는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면 마지막 순간에도 후회가 적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무엇이든 나중에 하려고 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돈을 번 뒤에, 무언가 갖춰진 뒤에 하려는 것이죠. 하지만 그때 가면 그런 기회 자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며 지금, 이 순간을 더 충실히 살아가자는 것이 이 체험의 목적입니다.

Q.죽음이란 무엇일까요?
A.죽음은 마지막이고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죽음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지금부터 잘해야겠다, 잘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위한 시작점인 거죠. 그리고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죽음 이후에는 또 다른 삶이 시작될 테니… 죽음은 앞뒤로 시작 아닐까요?(웃음)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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